[ 제주는 언제나 나를 품는다_episode_30]
7/31(금) - DAY 5_3
#74
우리 또래라면 적어도 이름은 들어봤을 공전의 명작, 드래곤볼에는 정신과 시간의 방이라는 요소가 등장한다. 정신과 시간의 방은 하늘 위에 떠있는 신의 궁전 속 다른 차원의 공간으로, 시간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흐르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 공간에서의 1년은 바깥세상에서의 하루와 같아 보통 전례 없는 악당이 지구에 나타났을 때 수련의 용도로 사용된다. 주로 2인 1조로 공간에 입장하는 만화의 선역들은 바깥세상을 기준으로 하루 만에 엄청난 파워업을 이루어내는데 이는 영화 인터스텔라의 주인공 조셉 쿠퍼(Joseph Cooper)가 극 중에서 미션을 망쳐 절망에 빠지는 곳인 밀러 행성과는 대조적인 개념이다. 강력한 중력으로 인해 시간이 급속도로 느리게 흐르는 밀러 행성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보내버린 쿠퍼 일행이 죽음의 위기를 벗어나 행성을 탈출했을 때 바깥세상은 이미 23년이 흐른 뒤였다. 밀러 행성에서의 3시간 만에 꼬마였던 딸이 원숙한 성인이 된 것을 알아버렸을 때 쿠퍼는 눈물을 흘리며 좌절하고 만다.
드래곤볼의 정신과 시간의 방, 그리고 인터스텔라의 밀러 행성. 그 두 공간에서의 기회, 그리고 좌절은 상반되는 감성이다. 한쪽은 시간을 급진적으로 늘리는 데 성공하고, 한쪽은 허공에 뿌려진 23년이라는 시간 앞에 좌절하고 만다. 하루를 1년만큼 산 드래곤볼의 손오천과 트랭크스는 극강의 적인 마인부우를 압살 하는 파워와 전투 운영 능력을 터득하지만, 산으로 착각할 만큼 높고 거대한 파도를 예상치 못하게 만난 쿠퍼 일행은 그 당혹스러움을 적절히 해소하지 못한 채 팀원 1명 사망이라는 참혹한 결과표를 받아 들고야 만다.
인터스텔라를 연출한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또 하나의 명작인 '인셉션'에도 비슷한 시간 놀음이 있다. 이 영화는 '무의식의 뇌 활동은 깨어있을 때보다 훨씬 빨라 꿈에서는 시간이 훨씬 더 느리게 느껴진다.'라는 중요한 설정을 가지고 있는데 주인공 일당은 이 개념을 이용하여 '라이벌 회사의 상속자가 가업을 물려받지 않게 해 달라'라는 의뢰를 해결하게 된다. 표적의 꿈속으로 잠입하여 더 많아진 시간을 활용해 무의식 속에 특정한 생각을 주입시키는 프로젝트. 그것이 바로 영화의 제목인 인셉션(INCEPTION)이다. 주인공 일당은 표적의 더 순도 높은 무의식에 접근하기 위해 꿈속의 꿈속의 꿈속으로 들어가는 계획을 설계하고 마침내 3단계의 꿈속에서 표적의 인생 자체를 바꿔버리는 중요한 메시지를 심는 데 성공한다. 계속해서 꿈속으로 들어가는 본질적인 목적은 더 기저의 무의식에 접근하기 위함이지만 그 진입 때마다 시간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것은 미션 수행을 더 용이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게 된다.
#75
어떤 일의 성패는 시간의 양을 어떻게 늘리는가에 달려있고는 한다. 하지만 현실세계에는 정신과 시간의 방 같은 특이점이 존재하지 않으며 영화 인셉션에서 꿈을 공유할 수 있게 해 준 기계, 드림머신은 영화 속 공상과학의 산물일 뿐이다. 시간을 독차지하는 그런 식의 방법은 현실세계에선 찾을 수 없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는 이 우주 도처에 떠돌고 있는 시간의 조각을 한 데 응축시키는 방법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수도 없이 책을 읽는 어떤 사람은, 그 많은 책의 저자들이 그 책을 쓰며 소비한 시간을 자신의 자신의 시간대로 계속해서 끌어모으는 일을 하는 것이다. 또한 그 책의 저자들조차 그 책을 쓰기 위해 참고문헌을 살피고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으로부터 영감을 얻고 때로는 자연물에서도 지식을 얻었을 테니 그렇게 책의 근원에 근원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한 사람이 책을 읽는 행동에 뭉쳐진 시간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그것은 주로 과거의 어떤 사람에 의해 뭉쳐진 시간을 소환하는 일이다.
희대의 팝스타 마이클 잭슨과 같은 연예인, 혹은 예술가들은 조금 더 수평적으로 시간을 끌어모은다. 그들은 대중의 시간을 얼마만큼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는가로 성공을 평가받는다. 그리고 스트리밍 서비스의 시대는 그렇게 한 엔터테이너가 수집한 대중들의 시간을 객관적인 수치로 나타내는 시스템을 창조하였다. 음원 사재기라는 정당치 못한 수법을 동원해서까지 소속 아티스트의 음원을 상위권에 노출시키기 위해 애를 쓰는 기획사들의 세태를 볼 때면 이토록 치열하게 빚어진 음원 유통 시스템에서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이 느껴진다. 2000년대 초반 방영되었던 TV 드라마 '네 멋대로 해라'의 주인공 전경은 그런 대사를 던진 적이 있다. '우리가 만드는 음악을 아무도 듣지 않는다면, 나는 음악을 하고 있는 건가?' 예술가에게 대중의 관심은 절대적이다.
자본가는 어떨까. 예술가들이 대중의 시간을 자신의 것으로 속박시키며 유명세를 얻고 이를 통해 부를 축적한다면 자본가들은 이미 축적된 자본으로 다른 사람의 시간을 직접 구매하는 방식을 취한다. 회사 혹은 기업이라는 이름의 물리적, 정신적, 개념적, 공간 속에 돈을 주고 구입한 타인의 시간을 응축시켜 넣은 후 비유기체인 자원을 적절한 리듬으로 적재적소에 투입하면 2차 생산물들이 창조된다. 그리고 그 창조물의 유통이 만들어내는 2차적인 부를 회수하면서 시간 수집의 사이클을 완성시킨다. 그리고 그 사이클을 복제하거나 크기를 늘리거나 혹은 양 쪽 모두를 추구하면서 부를 기하급수적으로 늘린다.
반대로 자본가에게 고용된 사람은 자기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의 시간을 정당한 권한 아래 적절하게 모아 팀이라는 이름의 성과를 만들어가며 자신의 지위를 드높이게 된다. 그리고 높아지는 지위만큼 다른 사람의 시간을 수집할 수 있는 권한도 점차 더 늘려가게 된다. 현존하는, 살아있는 시간을 끌어모으는 방식이다.
그들이 만들어내는 서비스는 이제 대놓고 시간을 모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얼마 전 자동차 보험을 교체했는데 주행거리에 비례하는 월별 보험료 책정이라는 합리적인 모델로 광고를 하고 있는 이 보험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차량에 운행거리를 측정할 수 있는 작은 기기를 장착해야 한다. 아마도 그들은 쓴 만큼 낸다는 합리적인 요금 정책을 소비자에게 어필하면서 뒤로는 그 소비자들이 만들어내는 데이터를 무상으로 수집하는 것으로 새로운 수익구조와 산업 모델을 만들어 갈 것이다. 그것의 본질 또한 타인의 시간을 한 데 모으는 일이다. 플랫폼 전쟁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전쟁에서 승리한 구글, 넷플릭스, 카카오톡 등의 기업을 유심히 바라보면 서버스의 카테고리는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은 대중에게 매일같이 주어지는 24시간이라는 유한한 자원을 얼마만큼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었는가가 그들의 성공을 말해주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76
시간이란 무엇일까. 한 개인에게 시간이란 엄마의 뱃속에서 빠져나온 순간부터 죽는 날까지 이어지는, 수평선에서 한 없이 앞으로만 전진하는 1차원의 무엇일 테지만 그렇게 시간의 흐름을 함께하는 존재가 이 세상 속에 수도 없이 존재한다는 의미에서는 시간은 거의 무한대로 존재하는 다차원의 것일 수 있다. 바닷속 미생물에게도 시간이 있고 토성의 위성에도 시간이 있다. 관건은 그렇게 다른 차원에 존재하는 시간의 조각을 어떻게 나의 차원으로 흘러들어오게 만드는지에 달려있다.
이 우주 도처의 널려 있는 시간을 어떻게 내 주변으로 끌어 모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각자에게 맞는 본능적 방식이 있을 것이다. 애석하게도 난 살면서 거의 모든 종류의 '장' 활동에서 힘겨움을 느껴왔다. 그 호칭에는 구성원의 시간의 조각을 정당한 방식으로 한 데 모으는 권한이 내포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혼자 허덕이는 신세를 면치 못했다. 타인의 시간을 직접 끌어모으는 데에는 잼병인 구석이 있는 것. 때로는 그런 거부할 수 없는 자기 자신의 속성이 삶을 참 막막하게 만들 때도 있다.
오롯이 나 혼자만 존재하는 시간에 목을 매는 것은 어쩌면 그런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다른 차원의 시간의 조각을 모으는 데 재능이 없으니 나에게 주어진 한정된 시간을 지키는 게 중요한 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인지, 나는 개인 시간을 뺏기는 것을 유난히 싫어한다. 타인의 시간을 긍정적인 기운으로 끌어 담는 사람들은 그 차고 넘치는 풍요로운 시간의 양 속에서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을까. 전세방 한 귀퉁이에 하루가 1년이 되는 정신과 시간의 방이 있으면 좋겠다. 퇴근 후 온전히 나에게 쓸 수 있는 두세 시간이 그 안에서는 한 달이 넘는 시간으로 불어날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