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지나는 차가 많지 않았던 것은 다행이었다. 메인스탠드를 이용해 스쿠터를 도로 우측 가장자리에 세우고 일이십 미터 후방 스마트폰이 낙하한 지점으로 걸어갔다. 사실 이 스마트폰을 구매한 이후인 약 2년 동안 비슷한 상황을 연출한 적이 제법 있었다. 그 장면들은 주로 자전거를 탈 때였다. 왕복 50km의 거리를 자전거로 출퇴근하던 시절, 불규칙한 바닥에서 속도를 줄이지 않다가 똑같이 거치대에서 스마트폰이 튕겨져 나간 적이 있다. 그 장면이 아마 이 스마트폰을 구매한 이후 처음으로 바닥에 패대기질을 한 장면으로 기억하는데 베젤 근처가 조금 까진 것 외에는 생각보다 별 타격이 없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바닥에 떨어질 때의 충격으로 인해 전자식 펜이 본체에서 튀어나와 어딘가로 사라져 버린 데 있었다. 8시가 넘어가는 시간 때에 이미 해가 져서 플래시를 켜도 펜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기억이 난다.
스마트폰이 튕겨져 나갈 꺼라고는 예상을 하지 못했지만 여하간 그런 몇 번의 경험 덕에 고장이나 파손에 대한 걱정은 크게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엎어진 스마트폰을 주워 이리저리 살펴보고 작동시켜봐도 별 일이 없었던 듯이 보였다. 중복된 경험이긴 하지만 제조업체인 S사의 기술력에 대해 새삼스런 경탄의 마음이 들었다. 도대체 얼만큼의 공력과 인력을 어떤 프로세스와 메커니즘에 투여하면 인공물이 이 정도의 내구성을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인지. 다 떠나서 그 기술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기업이지 않나 싶다.
#72
스쿠터를 타는 것에는 바퀴가 4개 달린 차량을 운전할 때와는 다른 이런저런 묘미가 있는데 그중 하나는 주차와 관련된 것이다. 서울 시내를 차량으로 자주 이동하는 사람들은 아마 알 지도 모르겠다.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부터 나에게 굉장한 효용을 제공했던 이 차량이란 것은 순식간에 짐짝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물론 이 사실은 주차공간이 잘 마련되어 있는 아파트, 혹은 마당이 딸린 전원주택과 방대한 지하주차장을 보유하고 있는 거대 빌딩만을 오가는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하지만 세계적으로도 꽤 상위 클래스의 인구밀도를 자랑하는 서울이라는 도시에서 주차문제는 여전히 답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보행자의 편의를 위해 6개월이 넘는 기간 동안 보수공사를 마친 정돈된 인도 위에 보란 듯이 주차를 한 차량들을 보면 이게 다 뭔 짓인지 싶다.
스쿠터가 차량에 비해 우위를 점하는 순간은 바로 그 찰나다. 스쿠터는 주차와 관련한 문제로 골머리를 앓을 일이 거의 없다. 그저 적당한 곳에 적당히 세워두면 그만이다. 보행에 불편을 주거나 차량 이동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스쿠터 한 필 세워둘 만한 공간은 언제 어디서나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제주절물자연휴양림의 입구에는 주차장과 그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차단기가 보였다. 그 차단기 앞으로는 입장을 위해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차량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나는 그 대열을 피해 차단기의 빈틈을 통과한 후 적당한 곳에 적당하게 스쿠터를 주차시켰다.
반대로 주차 후에는 스쿠터를 탔기 때문에 해결해야 할 문제를 만나야 한다. 헬멧을 어떻게 할지에 관한 문제다. 스쿠터에 그냥 걸어두고 가자니 찜찜하고 가져가자니 불편하다. 다행히도 매표소에 문의한 결과 휴양림을 둘러보는 동안 보관해주겠다는 답변을 얻었다. 제주절물휴량림의 입장료는 단 돈 천 원이었는데 헬멧을 보관한 것만으로도 이미 그 값어치를 다 한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저렴한 비용이었다.
#73
제주절물자연휴양림은 전체 면적이 300만㎡에 이르는 거대한 숲이었다. 매표소 주변은 여러 가지 인간이 조형한 흔적들이 있어 문명의 냄새가 났지만 오름 입구를 지나 숲길로 돌입할수록 주변은 더 새파래졌다. 그 야생으로서의 깊이는 보행객을 자꾸만 성가시게 하는 날벌레들의 존재로 점점 더 입증이 되어갔다. 가뜩이나 마스크를 차고 걷느라 숨이 더 차오르는 와중이었던지라 불청객 같은 날벌레의 동행은 불쾌감을 높였다.
삼림이라는 단어에서 '삼'자의 뜻이 나무 빽빽함(森, 나무 빽빽할 삼)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숲 속은 온 세상이 초록으로 뒤덮여있었다. 사람이 지나다니며 자연스럽게 길의 지위를 얻은 것 같은 흙길을 걸을 때도, '이곳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으로서는 인간이 영위하기 곤란하다'는 판단으로 나무 데크로 계단을 만들어 둔 것 같은 인공의 길 위에서도 주변은 한결같이 모두 우거진 나무들이었다. 길이 스스로 자신이 길임을 규정하는지, 아니면 숲의 공백으로 그 길이 규정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미 진입한 숲 속의 길은 여행객을 빨아드리는 듯했다. 그런 길 위에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는 적당한 이유가 없다. 길은 누군가가 그 위를 걷고 있을 때 비로소 길로써 존재하기에 굽은 숲 속의 길을 계속해서 걸었다.
길 위에서는 때로 다른 여행객들도 마주했다. 누군가는 반대편에서부터 걸어와 스치듯 마주치며 지나가 버렸고 누군가는 한숨을 돌리려 엉덩이를 깔고 바닥에서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다. 누군가를 마주쳤다는 사실 말고는 그 누군가에 대해서 아무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가벼웠던 그 짧은 만남을 몇 차례 반복했을 때 내 앞에는 알림판을 대동한 또 다른 길 하나가 불현듯 나타났다. 그 길은 총 11.1km에 육박하는 터라 오후 2시 이후에는 출입을 거절하고 있었다. 장생의 숲길이라는 거창한 이름은 만화 드래곤볼의 정신과 시간의 방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왠지 모르게 그 길을 다 걷고 나면 시간이 몇 곱절로 늘어날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