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으로

[ 제주는 언제나 나를 품는다_episode_28]

by 글객
7/31(금) - DAY 5_1


#68


7월 31일 금요일. 여행의 다섯 번째 날이 시작됐다. 일주일의 여행에서 이제 3일 정도가 남은 시점이었지만 실질적인 여행의 종료는 하루 이틀 앞으로 다가왔다. 여행의 마지막 날 다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이 오전 7시 5분이었기 때문이다. 새벽 같은 비행기 시간에 의해 출발 전날 밤은 제주공항의 아주 인근에서 잠을 청해야 했고 이동시간까지 포함한다면 남은 시간은 하루하고도 반나절 정도로 축약돼 느껴지고 있었다. 세 번째 숙소는 이전 숙소들과 마찬가지로 인터넷으로 예약을 해둔 상태였다. '여행 복귀 전날, 공항의 지근거리에서 잠만 청할 곳'이라는 미션에 걸맞게 딱 잠만 잘 정도의 크기를 가진, 그리고 별 다른 기능을 갖추지 않은 저렴하고도 캐주얼한(?) 숙소를 결제했었다.


여행 전체 기간 중에서 미리 어디로 갈지 정해둔 관광지는 그 시점에서 단 한 곳을 남겨두고 있었다. 그곳은 이번 여행을 앞두고 가보기로 결정한 곳은 아니었고 앞서 언급한 바가 있는 그 취소된 여행. 그러니까 고등학교 친구들과 2박 3일 동안 자전거 여행을 하고, 친구들이 먼저 돌아간 후에는 며칠 동안 혼자서 제주에 머물고, 마지막 이틀은 여자 친구가 제주로 와 또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했던 그 여행. 그 여행 중 혼자서 제주를 거니려고 했던 그 중간 기간에 방문하려고 했던 관광지였다.


역세권을 넘어 숲세권이라는 단어가 등장하고 있는 시대. 우리나라 국민들이 그동안 먹고사는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느라 그것의 중요함을 잘 느끼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하는 이 '숲세권'이라는 단어는 '맥세권'이라는 또 다른 신조어와 비슷한 시기에 우리를 찾아왔다. 사는 공간 주변, 얼마큼 가까운 거리에 맥도날드가 있는가라는 질문이 또 얼마큼 가까운 거리에 산림이 존재하는가와 비슷한 무게감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은 쾌적한 환경이라는 가치 상당한 수준으로 우리의 일상적 필요로 다가왔음을 말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어딘가로 여행을 떠날 때면 무의식적으로 그 지역 내 숲을 찾고는 했다. 그건 일상에서 숲을 만나지 못하고 산다는 사실의 반증이 아니었을까. 어쩌면 제주도는 섬 전체가 어떤 커다란 숲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 많은 산림 중에서 가보기로 청한 것은 숙소가 있는 조천읍에 위치한 제주절물자연휴양림이었다.



#69


제주절물자연휴양림은 숙소인 제주 스위스마을에서 차로 30분 정도 거리였다. 숙소보다 좀 더 한라산 인근에 위치하고 있어 더 높은 고도로 이동해야 했다. 이동 수단은 여전히 125cc의 스쿠터였지만 짐을 잔뜻 매고 있던 전날과 달리 배낭을 멜 필요가 없고 필요한 물품 몇 가지만 챙기면 되니 비교적 덜 부담스러운 이동이 예상되었다.

하지만 다시금 제법 큰 도로를 질주해야 하는 상황만큼은 조금 부담스러웠다. 가는 길이 온통 그랬던 것은 아니지만 때때로 왕복 6차선의 넓은 도로를 거쳐야 했다. 가장 우측 차선에서 주행을 하다가 좌회전을 위해 1차선으로 이동을 할라치면 사이드미러로 보이는 뒷 차량들의 육중한 질주가 사뭇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그럴 때면 굉음을 내는 한 필의 스쿠터가 황야의 혈혈단신처럼 느껴지곤 했다.


높은 고도와 텅 빈 하늘에 그대로 노출되어서 더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거센 바람을 맞고 있으면 여행 전날 짐을 줄이기 위해 포기했던 바람막이가 생각이 났다. 외투 격으로 입고 있던 옷은 2019년 연변 출장 시 연길시 시내에서 100위안을 주고 구매한 폴리에스테르 소재의 7부 줄무늬 셔츠. 단독 사이즈로 박시한 디자인인 연길의 줄무늬 셔츠는 바람에 날려 세차게 펄럭였다. 반면 가져오기를 포기했던 2018년 유럽 자전거 여행의 전리품,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데카트론에서 30유로를 주고 구매한 바람막이는 지퍼를 잠그면 몸에 딱 달라붙는 사이즈였고 달려 있는 후드는 뒤집어쓰면 고 무한도전의 쫄쫄이 복장이 떠오를 정도로 완전히 밀착되는 패션을 제공했다. 가끔 그 후드를 뒤집어써야만 할 상황을 맞이할 때면 서양인의 머리란 도대체 얼만큼이나 작은 것인지를 생각해보게 됐다.



#70


숙소에서 제주절물휴양림으로 가는 길은 1136번 도로를 시작으로 1118번 도로를 거쳐 1112번으로 이어지는 여정이었다. 그중에서도 정 가운데의 1118번 도로가 약 7km로 가장 오랫동안 달려야 하는 길이었다. 거치대에 장착한 스마트폰 화면에는 내비게이션이 바쁘게 작동되고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스쿠터의 속도만큼 빠르게 바뀌는 GPS 위치정보를 실시간으로 시각화해서 표현하느라 AP(스마트폰의 CPU)가 분주하게 떨리고 있었을 것이다. 그 내면만큼이나 스마트폰의 외부도 격렬하게 떨리고 있었다. 주행 중인 노면의 크고 작은 굴곡과 스쿠터 엔진의 떨림을 그대로 읽고 있는 듯 보였다.


스마트폰은 거치대에 장착되어 있었지만 렌털 샵에서 남자 직원이 설명해준 고무줄은 감싸지 않은 상태였다. 장력이 강한 두꺼운 고무줄을 매번 풀었다 감았다 하기가 불편했고 화면을 이리저리 가로지르는 통에 터치하기가 불편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마트폰 거치대 팔의 완력이 충분히 강하여 주행 중이라 할지라도 고무줄 없이도 크게 상관없...



" 탱! "



" 터덩! 텅! 터덩! "



을 줄 알았던 것은 심각한 오판이었다. 거치대를 탈출한 스마트폰은 몸 어딘가에 튕긴 뒤 도로를 데굴데굴 굴렀다. 급하게 스쿠터를 정차시킨 후 뒤를 바라보니 몇 바퀴를 굴렀을지 모를 스마트폰이 땅바닥 위에 애처롭게 엎어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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