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겁의 시간

[ 제주는 언제나 나를 품는다_episode_31]

by 글객
7/31(금) - DAY 5_4


#77


인간은 자연 앞에서 한 없이 작아진다는 말은 뻔한 클리셰이지만 11km에 달하는 장생의 숲길을 걷자니 그 생각이 아니 들 수가 없었다. 비단 그 길 뿐만이 아니라 제주 절물 자연 휴양림이라는 숲 전체가 그랬다. 인간에 의해 휴양림이라고 지칭되어 인위적인 경계를 가지게 된 이 공간에 존재하는 식물의 개체 수는 도대체 얼마만큼이나 될까. 그 모든 개체들이 지금의 존재가 되기 위해 힘써온 시간의 양을 생각해본다면 이 자연을 휴양림이라는 인류 입장의 이름으로 부르기 위해 했던 인류 본인의 행위는 실로 약소하게 느껴졌다. 길을 내고 표지판을 심는 정도의 노력으로 이 자연의 산물을 무엇인가로 정의하고 지칭할 권리를 가질 수 있다니. 그 사실이 새삼 온당치 못한 인간의 특권처럼 느껴졌다.


불교 용어에는 영겁의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겁이라는 한자는 이 세상이 한 번 이루어졌다가 없어지는 긴 시간을 말한다. 그런데 그것이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 바로 영겁의 시간이다. 세상이 한 번 이루어지는 시간 조차 무한하게 느껴지는데 그것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시간이란 과연 얼마만큼이란 이야기일까. 그런 압도적인 것을 두고 우린 보통 '상상할 수 도 없는' 이란 칭호를 붙인다. 헤아릴 수만 있다면 그 샘의 끝은 특정한 숫자로 귀결되겠지만, 천지가 초록으로 둘러싸인 그 숲에서 식물이라는 이름으로 묶일 수 있는 모든 존재들이 품고 있는 시간의 양은 거의 무한한 것처럼 느껴졌다.


물고기들이 가득한 아쿠아리움에서 거대한 고래를 눈 앞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경이로움을 느끼듯이 경험하지 못한 압도적인 크기나 수도 없는 개체의 양은 그 자체로 인간을 겸손하게 만든다. 그 이름이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은 장생의 숲길을 품고 있는 조천읍의 거대한 숲, 제주 절물 자연 휴양림은 걸으면 걸을수록 천 원이라는 입장료가 계속해서 무색해져 가는, 사이즈에 압도되는 그런 거대한 수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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