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이 변수인 게 좋을까, 소득이 변 수 인게 좋을까.

by 글객

수학에서 방정식은 변수와 상수로 구분된다. x, y 등 미지수로 표기되어있는 것이 변수, 숫자로 표기되어있는 것이 상수다. 학창 시절 수학을 배우다 보면 이 미지수가 많아질수록 문제를 풀기란 더 어려워진다. 더 정확히 말하면 미지수가 많아질수록 그 문제를 정면으로 맞서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겠지만 수학이란 과목은 논리적인 사고에 이르기 전에 그런 두려움을 어떻게 감내하고 다루는가가 관건인 학문이라고 생각한다. 공대를 졸업한 사람으로서 이야기하자면 반도체 공학 같은 이해하기 어려운 과목의 수업을 듣다 보면 형언하기 어려운 학문의 난이도 앞에 정신적으로 피폐해지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한다. 덧붙이면 지금은 공학은커녕 중고등학교 수준의 수학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우리 내 인생이란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를 눈 앞에 둔 수험생의 모습 그 자체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시험은 마치 10여 년 전 수학능력시험의 수리영역이 학습 범위에 따라 가형과 나형으로 나뉘었던 것처럼 응시자가 선택할 수 있는 두 가지 갈래로 나뉘는 것 같다. 바로 급여 노동자의 길과 그 반대의 길이다. 잘은 모르지만 그 반대의 길이란 사업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살아가는 등, 자신의 일을 스스로 규정하는 형태의 인생이라 생각한다. 그 두 가지 갈래는 마치 거울에 비친 사물과 원래의 사물의 관계처럼 정확히 대칭의 관계를 가지게 되는데 그 선택은 무엇을 변수로 두고 무엇을 상수로 둘 것인지의 가치관에 기반한 응시자의 주체적인 선택이 된다.


급여 노동자로서 사회와 계약을 한다는 것은 소득을 상수로 못 박는 선택이다. 직장의 규모와 산업이 다름에 따라 월급날 통장에 기록되는 수치는 천차만별이라고도 할 수 있지만 여하간 급여 노동자로 일하겠다고 합의한 이상 큰 틀에서 그 값은 어떤 상수로 고정된다. 그렇게 소득을 상수인 상태로 두는 결정을 우리는 안정적이라고 표현한다. 그 계약에 의해, 우리는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삶이 행복하거나 불행하거나와 상관없이 일정액의 소득을 보장받는다. 물론 조직이 와해되거나 비자발적으로 퇴단의 조치를 당하지 않는 일반적인 상황을 가정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소득을 상수로 취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그 이외의 모든 것들은 변수로 고정된다. 그래서 급여 노동자는 본질적으로 일을 스스로 규정하지 못한다.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 지에 대한 방법은 저마다 다를 테지만 결국 그 일이란 부여받기 마련이다. 그것은 해가 눈에 보이는 시간에 대한 통제권과 재량권을 상실하는 것이며 한 인간의 안정적인 정신 흐름과 생물학적 리듬에 불쾌하고 불규칙적인 외부 작용을 맞이해야만 하는 것이다. 소득을 상수로 한다는 것은 그 이외의 많은 것들을 불확실성의 구렁텅이로 집어넣어야만 담보할 수 있는 고달프고도 또 고달픈 많은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이고 인생이다.


반면에 그 반대의 길은 변수와 상수가 뒤바뀐다. 사업을 한다는 것은 급여 노동자와는 정반대로 일을 상수로 두는 선택으로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에 따라 개인의 소득은 변수의 구렁텅이로 내몰리게 되지만 대신 어떤 일을 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권을 확보하게 된다. 즉,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나 자신이 가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시간에 대한 통제권을 스스로 갖는다는 것은 계약한 조건하에 시간이 지나면 어련히 급여가 보장되는 시급의 개념은 상실되는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사업을 하거나 프리랜서의 삶을 살아본 적은 없다. 하지만 어떤 과업을 설정 함에 있어서 가장 가치 있다고 판단되는 방향을 내 생각대로 설정할 수 없거나 특정의 과업을 수행함에 얼마큼의 물적 시간적 자원을 투여할지 를 내 의지대로 결정할 수 없는 조직이라는 현실을 마주할 때면 그들의 삶이 부럽게 느껴진다. 2014년 방영됐던 드라마 미생에서는 퇴직해 피자집을 운영하던 김선배의 대사를 통해 '회사가 전쟁터라면, 밖은 지옥이다.'라고 표현했지만 때로는 자유의지에 대한 갈망이 너무도 높아져 가시 밭길이라도 이 굴레를 벗어던지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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