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냅스는 알고 있다.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는 걸.
김상욱 교수의 '떨림과 울림'을 읽으며 - 2
인간의 뇌는 뉴런이라는 세포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뉴런은 전기 신호를 입력받아 다시 전기 신호로 출력하는 하나의 단위다. 마치 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하나의 코드가 입력을 받으면 정해진 절차에 따라 출력을 내놓는 것처럼 뉴런도 전기신호를 말단에서 말단으로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다만 그 신호를 주고받는 말단이 수천 개에 달한다는 점은 코드와는 조금 다른 점이다.
뉴런과 뉴런의 사이를 부르는 말은 시냅스다. 고로 뉴런은 시냅스로부터 입력값을 받고 시냅스로 출력을 내놓는다. 시냅스로 내놓은 출력은 다른 시냅스의 입력이 된다. 뉴런 내부적으로는 전기신호가 전달되지만 시냅스에서는 화학신호가 전달된다. 신호가 시냅스에서는 화학적인 형태로, 뉴런에서는 전기적인 형태로 다차원의 방향으로 오고 가는 것이 우리 뇌에서 일어나는 일이라고 볼 수 있겠다.
여기서 시냅스 신호의 크기는 강해질 수 있는데 김상욱 교수는 이것이 기억, 더 나아가 학습이라고 설명한다. 이를테면 자전거를 처음 탈 때는 다리 근육의 움직임을 일일이 신경 써야 하지만 익숙해진 후에는 자전거를 탄다는 행위 속에 특별히 신경 쓰지 않더라도 다리가 저절로 움직이는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시냅스를 사이로 한 뉴런들의 연결이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특정의 의식과 행동이 반복되면 그것에 관여하는 시냅스의 신호가 점차 강해져 나중에는 작은 자극에도 강화된 뉴런들이 일제히 강하게 반응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타는 데 있어서 별다른 정신적인 에너지가 소모되지 않는다면 뉴런이 강화되어 아주 조금만 '신경'을 '써도' 자전거를 운용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배움에는 왕도가 없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전통의 말들이 있다. 그것들이 내포하는 의미는 무엇일까. 김상욱 교수는 시냅스와 뉴런의 상호작용에는 논리적 문법이 없다고 했다. 이를 테면 '자전거타기'라는 행동을 학습하기 위해서 시냅스의 세기가 '강약 중강 약'과 같은 정해진 패턴으로 반복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결국 이것은 자전거를 잘 타기 위해서는 자전거를 계속 타는 것 외에는 방도가 없음을 뜻한다. 방식에 따라 효율의 차이는 존재할지 모르겠으나 결국 같은 사건을 계속해서 반복하면 시냅스의 세기는 점차 더 강해지고 그 강해진 시냅스의 세기로 인해 관여하는 뉴런들이 마치 하나의 몸체처럼 반응한다는 것이다. 문단 앞에서 말한 우리 전통의 두 가지 격언은 어떤 경지에 도달함에 있어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한 방법이 아닌 몰입의 정도와 시도의 횟수라는 것을 내포하고 있는 과학적인 근거의 비과학적 표현이 아닐까 싶다.
조직에서 한 사람의 역할이란 과연 무엇일까라는 조금 철학적인 질문이 머릿속에 떠 오를 때가 있다. 대답은 무엇일까. 그건 마치 프로그램 속 하나의 코드가 입력값을 부여받아 출력 값을 내놓는 것처럼 자원을 부여받고 결과물을 내놓는 일이라 생각이 든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결과물을 내놓는다는 표현이다. 그 문장 속에 과정은 없다. 과정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정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중요하지 않다는 것보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이야기다.
어떤 일을 수행할 때 세세한 방법까지 지시받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배움에 왕도가 없는 것처럼 일을 수행하고 결과물을 내놓는 것에도 다양한 방법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다양함은 사람의 다양함이다. 주어진 시간 동안 요청된 작업에 대해 원하는 결과물을 내놓는다면 그 과업을 요구한 사람에게 있어 그 일을 담당한 사람의 방식이라는 것은 별로 중요한 것이 아니지 않을까.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 선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 반대로 과업을 부여받은 사람에게 있어 그 과정이란 자아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절대적인 부분일 수 있다. 한 사람을 규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과거, 즉 해온 일이다. 선거 때 후보자의 말보다 그 사람의 이력을 봐야한다고 말하는 이유다.
자전거를 가르쳐 주는 사람이 자전거를 배우는 사람에게 할 일이란 마치 '놀면뭐하니'에서 유재석이 당근 거래인에게 자전거를 가르쳐주었던 그 명장면처럼 큰 콘셉트를 설명해주고 크게 넘어지지 않는지를 지켜봐 주며 용기를 독려하는 일일 뿐이지 않을까 싶다. 수분 수초 페달을 밟아라, 핸들을 꺾어라 지시하는 것은 학습의 과정에 있는 사람에게 혼돈을 제공할 뿐이며 자기 자신의 리듬과 자연스러움을 빼앗아 가 버리는 일이라 생각이 든다. 일에 관한 것도 마찬가지로 사용 가능 한 시간 자원과 물적 자원을 인지시키는 것까지가 조직이 할 일이며 그 사이를 채워나가는 방식은 과업 수행자의 몫이라 생각한다. 목표를 제시하고 과정을 일임하는 것이 조직과 개인의 아름다운 균형을 만드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이 드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