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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Nov 12. 2023

그저 글쓰기

책을 읽어야 그나마 쓸 수 있음을 느낀다. 책을 읽지 않으면 마치 혈관이 좁아져 동맥경화가 일어나는 듯이 생각이라는 지성의 혈류가 마르는 것이 느껴진다. 책이라는 언어의 덩어리는 생각의 피를 돌게 한다. 펌프질을 해야만이 수도가 끌어올려지고 주둥이를 통해 물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쓴다는 건 결국 흘러져 나오게 하는 것이다. 물이 마르거나 구멍이 막히면 흘러나올 수 없다. 쓰기 위해서는 읽어야 한다.


허지웅은 쓰지 않으면 생각과 생각이 연결되지 않는다고 했다. 읽는 것은 지식의 자원을 확보하는 것이고 쓰는 것은 그 자원을 연결하는 행위다. 연결시켜서 하나의 맥락을 만들고 세상을 보는 하나의 관점을 형성해 나가는 것이다. 읽고 쓰고 읽고 쓰는 과정의 반복 속에서 고유한 생각이 만들어진다. 견해가 생긴다.


읽는다는 것은 무엇일까. 활자라고 해봐야 무엇인가가 인쇄된 흔적일 뿐이다. 언어라는 약속의 기호를 통해 그 잉크의 다발 속에서 무엇인가를 얻는다는 것은 참 기묘한 일이다. 물질이나 에너지가 직접 전달되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뇌를 자극하고 신호를 발생시켜 정보의 씨앗이 자리 잡게 한다. 글을 쓰는 행위는 그 정보를 연결시켜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하게 한다. 네트워크를 이룬다.


야구를 두고 그깟 공놀이라 표현하고는 한다. 드라마 미생에서는 그저 바둑 한판이라고 했다. 아무것도 아닌 그저 바둑 한 판, 바둑 한 판 잘 둔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 그저 그냥 바둑 한 판. 글쓰기도 그런 측면이 있다. 그저 종이를 가득 채울 뿐이다. 하나 아무 생각도 없이 종이를 가득 채우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책을 읽어야 하고 그래야 그나마 뭐라도 적을 수 있다.


23.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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