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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Nov 12. 2023

떠나야 할 때

떠나야 할 때란 언제일까. 이동진 평론가의 경험담이 떠오른다. 10년의 직장 생활 뒤의 어느 날, 사무실로 들어가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지 못하고 다시 1층으로 돌아내려갔던 그날, 그는 회사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날 그의 기분을 표현하는 문장은 "망가져도 좋아"였다. 이대로 직장을 떠났을 때 혹여나 그것이 나를 망가트리더라도 직장에 존재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순간적인 인상. 그 인상은 실제로 그를 직장에서 떠나게 만들었다. 벌판에 혼자 선 그는 이후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영화평론가가 되었다.


직장을 떠나는 것에는 두 가지 케이스가 있다고도 전했다. 직장 내부의 것이 나를 밀어내는 척력으로 인한 것과 외부의 것이 나를 끌어당기는 인력으로 인한 것. 자신은 척력의 케이스란 말도 덧붙였다. 내부의 어떤 요소들의 힘이 그를 그 영역밖으로 내보내려 한 것의 결과물이었다.


외부의 인력에 의해서 자신의 자리를 떠나는 것은 안정성이 있다. 명확한 방향성과 목표지점이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내부의 척력에 의해서 떠나는 것은 단지 들판으로 던져지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계획이 없다.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고 또 어떤 것이 나를 끌어당길지도 모른다. 그것은 불확실하고 임의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떠나게 되는 것의 단 한 가지의 이유는 그 불확실성이 더 나을 정도로 기존의 곳이 나를 옥죄기 때문이다. 나를 파괴하기 때문이다. 파괴되는 것보다 들판으로 떨어질 판단을 하는 것이다.


운명처럼 느껴진다. 척력에 의해서 자신의 자리를 떠날지 인력에 의해서 자신의 자리를 떠날지는 그곳이 나를 떠밀기 이전에 나를 당기는 그 무엇인가를 만났느냐 만나지 못했느냐에 따른 결과물이지 않을까. 운명의 순간까지 나를 당기는 무엇인가를 만나지 못한다면 벌판으로라도 뛰어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23.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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