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처분

by 글객

아는 것이 많아질수록 무엇인가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어려워지는 측면이 잇다. 아는 것이 많아져도 시간은 우리에게 똑같이 주어진다. 그래서 그 모든 것을 풀어놓을 수 없다. 그래서 그것을 압축하거나 취사 선택해야 하는 필요성이 발생한다. 무엇을 버릴 것인가. 어떻게 압축할 것인가. 모든 순간에 모든 지식이 필요하지 않다. 안 입는 옷들도 버리기가 어렵듯 필요 없는 지식도 정보도 버리기 어려운 것은 매한가지다. 하지만 승부는 거기서 결정된다. 고수, 베테랑, 뛰어난 사람은 그것을 안다. 채우는 것이 아니라 버리는 것에서 결판이 난다는 것을 안다. 상실의 언덕을 넘어야 자연스러움이 찾아온다.


우아해 보이는 백조가 수면 아래에서는 세차게 발길질을 하고 있듯이 표면적으로 보이는 간결함 아래에는 그것을 취사선택하기 이전의 복잡함과 난잡함이 숨어있다. 짧고 강력한 한 마디의 말 이면에는 그것보다 수배에 달하는 언어적 신호가 머릿속의 사고 회로를 가득 채운다. 심플해서 심플하게 보이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을 버렸기에 심플함으로 귀결될 뿐이다. One of them에서 one만이 포착될 뿐이다.


과해지는 것은 위험하다. 과한 것은 불필요한 것이 섞여 들어가 있음을 뜻한다. 아는 것이 많다는 것은 과해질 위험에 처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경계해야 할 필요가 있다. 때로는 그래서 무엇인가를 더 이상 알고 싶지 않기도 하다. 그것을 압축하고 헤아릴 능력과 여유가 없는 상태에서의 앎이란 기준 없이 물건을 가득 채워둔 창고처럼 쓸모없는 것으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인가를 알게 된다는 것은 어쩌면 나의 소관이 아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맞이해야만 하는 운명처럼 작용하기도 한다. 그래서 끊임없이 지식과 앎의 창고를 정리하고 비우고 버려야 한다. 인식의 범위를 넘는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은 자기 자신을 짓누를 뿐이다. 버려야만 간결해지고 명료해진다.


2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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