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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무슨 뜻이에요?

[3일 차] 레온 - 레온 대성당 앞

by 글객

새벽 4시, 전 날의 이른 취침으로 인해 일찍이 눈이 떠졌다. 5시쯤이 되자 일찍 준비를 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도미토리를 채우기 시작했다. 어제저녁 널어 둔 빨래를 챙겨서 나도 이제 순례길을 나설 채비를 했다. 빨래를 너는 테라스로 나서는 문이 자동으로 잠기는 지를 몰라서 하마터면 그곳에 갇힐 뻔했다. 다행히 노크를 하자 역시 일찍 채비를 하고 있던 한 남자가 잠긴 문을 열어줬다. 자세히 보니 문 옆에 설명이 쓰여 있었다.


순례길은 바닥에 표시되어 있는 노란 화살표 내지 조개껍데기 모양을 따라가면 된다고 알고는 왔으나 직접 체험해 보기 전까지는 막연한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알베르게를 나오자 바로 앞에서부터 노란 화살표가 보이기 시작했고 생각보다 그 안내를 따라 걸어가는 게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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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쾌한 새벽공기를 마시며 걷는 것은 순례길을 걷는 것을 넘어 그 자체에 굉장한 낭만과 설렘이 있었다. 레온 도심을 통과하면서 걷는 동안 해가 뜨고 있어 곳곳에서 명장면들이 연출됐다. 도시 이곳저곳이 아름다움으로 가득했다.


순례길은 레온의 명소들을 지나치게 되어있어 어제 들렀던 레온 대성당을 자연스럽게 다시 방문하게 됐다. 당시 성당의 사진만을 찍고 내가 나온 사진을 찍지 못한 아쉬움이 못내 남아있었는데 이른 아침이라 마땅히 사진을 찍어줄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 is that shoe yours? "


레온 대성당으로 걸어오던 한 남자가 별안간 말을 걸었다. 누가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LEON이라고 크게 써져 있는 텍스트 구조물 위에 등산화 하나가 올려져 있었는데 그게 내 것이냐고 묻는 것이었다.


"No. it's not mine"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 남자는 내게 순례자인지 물어왔다. 한 번에 알아듣지 못한 나는 다시 되물은 뒤에야 질문을 이해했고 순례자라고 대답을 해줬다.(yes camino) 그 즘에 레온 대성당 오른편으로 아침 해가 떠오르고 있었고 몹시도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해주고 있었다.


" It's very nice landscape isn't it?


" yeah. Sunrise is very beautiful. actually it's just beginning for me "


" really? from reon? Why?"


" entire path is too long for me. Because my holidays are not enough. So I started from this city leon"


" Oh I see. What is your name? Do you have any european name? "


" Oh I Don't have any european name. My name is MINGON "


" Oh MINGON. What does your name mean? "


이 이역만리에서 그것도 방금 만난 한 서양의 남자가 내 이름의 뜻을 물어볼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옥돌민에 샘솟을 곤. 민곤. 되는대로, 생각나는 대로 그 남자에게 이름 뜻풀이를 해주기 시작했다.


" MIN means jam or jewal like diamond and gon is... I can't imagine proper english word. It's like water..."


샘솟다는 뜻을 가진 단어가 도무지 생각이 안 나 분수에서 물이 뿜어져 나오는 형상을 바디랭귀지로 표현하자 남자는 그제야 대략 알아듣는 눈치였다. 단순히 이름을 물어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뜻까지 물어봐주는 태도는 어딘가 모르게 감동적이었다.


이름이란 참으로 중요하다. 이름엔 삶의 정체성이 담겨있다. 이름의 뜻을 삶에 투영해 사고한다. 사실 나는 서른이 되기 직전 이름의 한자 뜻을 바꾼 적이 있다. 가을하늘 민에 땅 곤. 하늘과 땅. 그 이름에서 나는 언제나 공허함이나 허망함, 망망대해와 같은 위태로움을 느끼곤 했다. 하늘과 땅 어쩌면 세상 모든 곳을 의미하는 것에서 나는 도대체 어디에 속하는 것인지 어떤 방향성을 가지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 느낌처럼 인생은 언제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어머니의 제안으로 나는 이름의 한자뜻을 바꿨다. 그래서 옥돌처럼 귀한 것이 솟아오른다라는 아름다운 뜻을 가진 이름을 갖게 됐다. 철학관의 권유로 나는 그 한자를 펜으로 만 번을 적었다. 스스로의 이름을 인식 속에 각인시키기 위한 과정이었고 나는 이 이름을 여전히 꽤나 만족해한다.


어딘가 모르게 친절하고 마음이 건강해 보이는 남자와의 대화에 쌓였던 긴장이 풀어지는 듯했다. 마음이 안정되자 짧기는 하나 어느 정도 표현이 가능한 자연스러운 영어가 입 밖으로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투명한 물에 잉크 한 방울을 떨어뜨리는 것처럼 마음속에서 밝은 기운이 점차 퍼져나감이 느껴졌다. 흑백의 영상이 컬러로 그러데이션을 만들며 변화하듯. 닫혀있던 마음이 열리는 듯했다.


내가 원했던 대로 남자는 레온 성당 앞에서 나의 사진을 찍어주었다. 나도 그에게 사진을 찍어줬다. 그리고 떠나는 그는 나에게 한 마디를 던졌다.


" so that, see you on the road! "

" nice to meet you "


남자와의 대화는 얼어있던 마음을 녹여주었고 순례길을 걷는 여정은 그때부터 진정 시작이 됐다. 어쩌면 걷는 행위보다 중요할 수 있는 마음의 문제를 같은 순례자인 한 남자가 풀어주었다. 당황한 나머지 나는 내 이름만 알려주고 그 남자의 이름을 물어보지 못했다. 그대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은 나의 불찰을 너그러이 용서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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