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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May 27. 2024

젊은이는 가능하면 2층을 이용해 주세요.

[4일 차] 아스토르가 - Peregrinos 공립알베르게

알베르게는 순례자들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를 칭하는 이름으로 대부분 도미토리를 운영한다. 많은 사람들이 도미토리에서 숙박을 하는데 오전 시간을 이용하여 순례길을 걷고 난 후 오후에 알베르게에 도착하면 호스트에게 자리를 배정받고 안내를 받으면서 꼭 듣는 이야기가 있었다.


" 젊은 분들은 나이 든 분들을 위해 되도록이면 2층을 이용해 주세요 "


나이 든 사람들이 사다리를 통해 침대 2층을 오가는 것이 어려우니 젊은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2층을 써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용해 보니 2층은 굉장히 불편하긴 했다. 1층처럼 걸터앉아 의자처럼 사용할 수도 없거니와 새벽같이 나갈라치면 방 안이 칠흑같이 어두워서 1층으로 내려가는 걸 시도하는 것조차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아스토르가의 초입에 위치한 공립 알베르게인 Peregrinos de Astorga도 마찬가지였다. 리셉션 데스크에서 간단한 체크인 절차를 밟은 후 전반적인 시설의 위치를 설명해  50대 정도로 보이는 호스트 여자분은 마지막으로 방을 열어주며 2층을 사용해 주길 요청했다. 단순히 2층 자리를 찔러주는 것이 아니라 웃으며 친절히 양해를 구했다. "You are young man"이라며 너스레를 떨며 허리를 살짝 쓰다듬어 주는 손길은 그날 하루의 트랙킹의 피로를 순간 가시게 만들어주는 따뜻함이었다.


사실 전날 숙박을 했던 비야르 데 마사리페의 Jesus 알베르게 호스트분도 똑같은 이유로 2층을 권했었다. 구글 후기를 보니 누군가 그녀를 두고 '쿨내 진동'이라는 표현을 했었는데 그녀는 그 말 그대로 리셉션에서부터 시설과 방 안내까지 모든 과정이 쏘 쿨 그 자체였다. 마치 안전조교를 만난 것 같은 투박함과 간결함. 사실 그때만 해도 아직 레온에서의 첫날의 그 감정, 그 하강하는 감정이 남아있던 터라 호스트에게 일말의 친절을 바랐었는데 그래서인지 그 쿨함이 나에게는 쿨함이 아닌 약간의 냉정함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하지만 여정을 겪어가며 점차 그런 생각은 버리기로 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보면 이 양반들에게는 단순한 생업일 뿐일 수도 있고 나는 내 갈길 가고 본인들은 본인들 일할 것 일할 뿐인데 뭘 그렇게 큰 친절을 바라고 있나 생각이 들었다. 몇 년 전에 비해 그 가격이 많이 오른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10유로 내외에 하루를 머무를 수 있는데 이마저도 감지덕지이지 아닌가. 모르긴 몰라도 나 같은 순례자를 매일같이 수십 명을 받는다고 생각하면 정신이 있으래야 있을 수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거의 선두권으로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2층에 자리를 배정해 준 게 못내 미안했었는지 그녀는 수 시간 후 다시 방에 돌아와 1층에 차리가 남거나 나이 든 사람이 없으면 굳이 꼭 2층을 쓰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기도 했다.


Peregrinos de Astorga 알베르게는 심지어 공립이어 그 가격이 7유로에 불과했다. 객실은 오래되어 그 노후함이 느껴지긴 했지만 주방이나 식당이 잘 마련되어 있고 무엇보다 그 경치가 굉장히 아름다웠다. 2층이란 게 불편하긴 해도 7유로에 이 정도면 더 이상 무엇인가를 바라면 안 되지 않지 않은가. 그런 연유로 알베르게 사장님들에게 더 이상 친절을 바라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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