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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May 26. 2024

글쓰기란 서더리를 포기하는 것

[4일 차] 비야르 데 마사리페 -> 아스토르가


횟집에서 생선을 한 마리 골라 주인에게 회를 떠달라 요청하면 처음에 보았던 그 크기감과 다르게 양이 적어 보이는 경우가 더러 있다. 특히 작은 고기는 그 경우가 더 심하여 낚시꾼들은 작은 고기를 잡았을 때는 그 고기를 다시 바다에 던져주고는 한다. 그럴 때 하는 말이 있다.


" 떠 봐야 몇 점 안 나온다. "


이제 막 눈을 뜬 작은 생명체를 굳이 살생하여 식사용으로 삼는 것에 대한 도덕적 양심이 느껴져서도 있겠지만 그 작은 고기의 회를 뜨는데 드는 고생이라는 비효율을 감안하면 잡아먹기가 매우 수고롭기에 살생을 포기하는 것이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순례길의 리듬감 있는 트래킹은 다양한 생각과 영감을 제공하고 그런 것들이 머릿속에서 계곡물처럼 흐르는 것만 해도 굉장한 황홀감이지만 그 많은 생각들을 전부 글로 담을 수는 없다. 때로는 잔챙이 같은 생각이 낚아져 그대로 흘려보내야 하기도 하고 제법 횟감이 될 것 같은 생각을 낚아도 글로 남기려 하면 살 점이 별로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하지만 오히려 그 군더더기를 덜어내는 것 자체가 글쓰기라고도 볼 수 있는 것 같다. 회를 치고 남은 뼈나 내장들, 즉 매운탕 거리를 서더리라고 하는데 보통은 이 서더리를 매운탕으로 같이 상에 올려주거나 포장해서 고객에게 그 수고를 전가시킨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회치기란 최대한 살점에 손해를 가하지 않는 전제로 생선이라는 객체에서 이 서더리를 제거하는 게 목적이고 서더리를 가지고 2차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것은 부가적인이고 부수적인 것에 불과하다. 서더리는 이 본질적 목적 자체만 놓고 본다면 버려야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을 더하는 것보다 어떤 것을 빼는 게 더 중요할 때가 많다. 생각에도 서더리가 존재하고 글쓰기란 그 서더리를 포기하는 행위다. 더욱이 나같이 본업이 아닌 작가에게는 매운탕 끓여먹을 시간도 별로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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