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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객 May 29. 2024

도네이션 알베르게

[5일 차] 폰세바돈 - 도네이션 알베르게

우리 알베르게에서 숙박하려는 겁니까?


알베르게의 문 앞에 다가가자 입구에 앉아있던 한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나보다 먼저 도착한 듯 보이는 몇몇 사람이 입구 쪽에 앉아있었는데 그중 한 사람이 이 알베르게의 호스트였던 것이다. 호스트는 문을 열어 작은 리셉션 공간으로 나를 안내했고 이미 줄지어 세워져 있는 배낭들을 옆으로 내 배낭을 내려두라고 말해주었다. 알베르게의 공식적인 체크인은 오후 2시였다. 한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기에 배낭을 내려 둔 나는 그대로 알베르게를 빠져나와 인근의 한 바에서 파스타를 시켜 먹었다. 맛은 평범한 케첩 맛이었다. 국수의 형태일 줄 알고 시켰는데 받아놓고 보니 아니었다. 오감자의 동그란 형태라고 볼 수 있는 '펜네'라는 파스타였는데 이름은 나중에 찾아보고야 알았다. 참 생소한 이름이다.


생각보다 2시가 더 빨리 다가와 먹는 속도를 재촉하여 식사를 마친 후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리셉션 장소에서 거실로 보이는 듯한 공간으로 향하는 문이 열려있었고 게스트들이 이제 막 그 공간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호스트는 신발장에 신발을 넣은 후 배낭을 들고 안으로 들어오라고 말했다.


" 우리 숙소에 대해서 먼저 영어로 설명하고 그다음 스페인어로 설명을 하겠습니다. 우리 숙소는, 도네이션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공짜라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데스크에 모금함이 있으니 각자 비용을 내주시기 바랍니다. 저녁식사는 7시에 진행됩니다. 이에 앞서 참여자 수를 확인해야 하니 식사를 원하는 분들은 5시에 거실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숙소의 저녁식사는 식사를 하는 사람들끼리 역할을 나누어 함께 준비합니다.


방으로 들어가면 젊은 분들은 나이 많은 분들을 위해 가능하면 2층을 사용해 주기 바랍니다. 배게 시트는 아직 말리고 있는 중이니 나중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


연설과도 같은 안내를 듣고 나서 사람들은 해산했다. 뒤늦게 들어갔던 나는 아직 순례자 여권에 도장을 받지 못해 다음 타임 안내가 시작되기 전 호스트에게 도장을 받고 도미토리로 들어갔다.


사실 이 도미토리는 그 자체로 교회였다. 숙소에 대한 안내가 연설과도 같은 느낌이 났던 이유도 이 호스트분이 목사님이기 때문이었다. 어딘지 모르게 강단 있어 뵈는 이 목사님은 시간이 뜨기만 하면 건물 앞의 돌부리에 앉아 책을 읽었다. 목사님이니 아마도 성경책일 것이니 생각을 했다. 칠부바지에 위에는 파란 집업 재킷을 입고 있었고 수염과 머리는 은색 빛이 나는, 유형으로 따지면 쾌남 과에 속하는 사내였다. 거실에서 도미토리를 통과하여 또 다른 문으로 나가면 예배당이 있었고 이 예배당에서 밖으로 나와 오른편으로 돌면 건물 뒤편으로 이어져 빨래를 널 수 있었다. 빨랫줄에는 아까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직 마르지 않는 베개 커버들이 빨래집게로 집혀 바람에 휘날리고 있었다.

비판하고자 하는 마음은 아니고 단순히 경험을 공유하자는 차원에서 이 알베르게의 도미토리 컨디션을 말해보자면 상당히 열악하고 남루한 축에 속했다. 우선 열악하다는 것은 좁은 공간에 2층 침대를 넣을 수 있는 만큼 넣은 상태라 이동공간이 비좁고 침대가 다닥다닥 붙어있어 개인의 활동반경이 극히 제한된다는 것이었고 남루하다는 것은 그 컨디션이 이루 말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촌스러운 파란색을 띠고 있는 매트리스는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으나 습기를 흠뻑 머금어 상당히 축축한 상태였고 심지어 내가 고른 자리는 매트리스 커버 한 구석이 찢어져 있어 그 속살이 노란색이라는 사실을 알기 싫어도 알 수가 있는 상태였다.

 2층으로 올라가는 사다리는 나사나 못 등으로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상단의 걸개 부분을 이용해 2층에 단지 걸쳐놓는 형태라 만지거나 오르내릴 때마다 쇠뭉치끼리 부딪히는 그 시끄럽고 청아한 소리가 발생했다. 2층을 사용하는 것도 불편한 일인데 그 불편한 곳으로 올라가고 싶으면 통과의례와도 같은 쇳소리를 들어야 했다. 희한하게도 실내 온도는 시원한 것을 넘어 동굴 못지않게 서늘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 해가 쨍쨍한 밖에서는 반팔로 돌아다니고 실내로 들어와서는 바람막이를 입고 있는 기 현상이 발생했다. 물론 산꼭대기 특유의 거친 바람이 계속해서 불었기 때문에 바깥공간에 오랫동안 있어야 할 때는 역시 바람막이를 입어야 했다.


이 날 이 알베르게에서는 총 십여 명이 숙박을 했는데 미국인으로 보이는 몇몇 여성들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들어오자마자 깔깔대고 웃으며 떠들기 시작했다. 반면 왠지 동유럽 권에서 왔을 것 같은 연배가 있어 보이는 몇몇 남성들은 일찍이 자리를 깔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그중 내 바로 오른편 침대의 1층을 쓰는 남성은 엄청난 위력의 코골이를 선보이기 시작했다.


리셉션 공간에서 바로 이어지는 샤워장은 거의 딱 한 사람의 체형만 한 공간이어서 그 안에서 옷을 벗고 갈아입는데 상단 한 집중력이 필요했다. "It's very small" 나보다 먼저 샤워를 마치고 나오는 중년의 한 남자분이 웃통을 벗은 채 웃으면서 전한 딱 한마디였다. 다행스럽게도 따뜻한 물은 제법 잘 나와 온몸의 피로를 샤워로 달래주었다. 샤워를 마친 후에는 이제는 익숙한 듯이 빨래를 했다.


레온에서의 알베르게의 분위기가 나름 깔끔하고 잘 정돈된 신식 내무반 같았다면 이곳은 그야말로 임시 대피소를 방불케 했다. 5시가 되니 저녁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재료를 준비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식사를 할 때는 목사님의 주도로 찬송가를 불렀다. 음식 냄새와 노랫소리가 여과 없이 도미토리로 흘러들어오는 상황 속에서 몇몇 남자들은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인 듯 무심한 표정으로 각 자리에서 스마트폰을 했다.


사실 급하게 찾아 먹은 파스타가 양이 부족했던지 그 때즘은 나도 허기가 느껴지긴 했었다. 무얼 끓여 먹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음식이 향긋한 냄새를 풍겨 코를 자극했다. 하지만 외향인들의 텃밭일 것만 같은 저 공기 속에서 함께 어울려 식사를 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 어차피 1일 1식을 해보기로 했으니 공복의 상태에 익숙해지자는 마음으로 나도 일찍이 침대에 누웠다.


좁은 공간에 십여 명이 모여 잠을 잔다는 것은 문명인으로서의 결계를 모두 풀어헤치고 생명체가 발산하는 다양한 종류의 생리현상을 공유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쪽에서 코를 골면 저쪽에서 방귀소리가 들렸고 침대가 오래돼서 뒤척거릴 때 나는 삐걱삐걱 소리가 간간이 공간을 채웠다. 낮부터 심한 코골이를 하며 잠을 청하던 그 중년의 남성은 자신의 호흡으로 곡예를 넘는 듯한 패턴을 이어가며 여전히 코를 골았다. 본인의 코골이 데시벨을 앎에도 불구하고 최대 20여 명이 잘 수 있는 도미토리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는 그 마인드가 정말이지 대단하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날 나는 순례길에 오른 이후 처음으로 잠을 설쳤다. 하루 2~30km를 걷는 후에 찾아오는 신체의 노곤함은 숙면이라는 타이틀매치에서 코골이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 폰세바돈은 전 날과는 다르게 사방이 안개로 뒤덮여 있었고 거의 습기에 가까울 정도로 가볍기가 그지없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건물 뒤편의 빨랫줄에는 내가 널어둔 빨래만이 남아 있었고 이슬 때문인지 빗물 때문인지 물기를 흠뻑 머금어 축축해져 있었다. 약간 덜 마른 전날 빨래까지 함께 널어두었었는데 그것까지 봉땅 젖어버려서 빨래를 안 하니만 못한 꼴이 되었다. 잠을 설친 것도 처음이었고 빨래를 망친 것도 그날이 처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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