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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객 May 30. 2024

소통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6일 차] 폰세바돈 출발

폰세바돈의 아침은 전 날과 완전히 다른 날씨를 보였다. 수북이 쌓인 안개에 부슬비가 내렸다. 그 비는 민들레씨가 완전히 분해되어 허공을 떠돌듯이 입자가 너무나도 작고 가벼워 서리인지 안개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였다.

도네이션 알베르게에서는 아침으로 빵과 차를 제공했다. 하지만 자리에 앉아 맘 편히 음미할 여유가 없어 잘라진 빵 한 조각을 집어서 덥석 물고는 재빨리 씹어 삼킨 후 짐을 챙겨 다시 순례길에 올랐다.


처음에는 정말이지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은 날씨가 계속됐었다. 그러나 산 정상을 서서히 내려오면서 날씨는 점차 안정을 찾아갔고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내리던 비도 그쳐있었다. 공기는 차갑고 무거웠다.


처음 이 순례길에 오르려 했을 때 나는 낯선 곳으로의 이동. 많은 종류의 개입과 간섭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꿨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사람과의 거리를 유지하려고 했다. 나만의 독자적인 시간을 위해서. 사색을 위해서. 영감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고 살아가는 환경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 되도록 사람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고 싶었다. 사람들을 향해 수동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하지만 그게 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그게 의미 있는 짓일까. 무거운 공기 속에서 갑자기 무거운 생각이 들었다. 이 길에서 이렇게 누군가와 소통하지 않고 돌아가면 과연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었다.


어쩌면 이 길은 무엇인가를 상징하있다. 인생의 축소판이라고도 볼 수도 있다. 이 여행이 내 인생에서 하나의 구덩이처럼 따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마치 프렉탈의 한 조각처럼 전체를 닮은 하나의 부분일 뿐이라면 특별해 보이는 이 길은 그리 특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잠깐의 시간 동안 이상을 꿈꾸고 실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금방 사라져 버릴 것을. 오히려 이건 이건 인생이라는 본 경기를 예습하는 스파링, 수능을 보기 전에 치르는 모의고사 같은 개념이 아닐까. 사람과의 간격을 억지로 유지하기만 했을 때 나는 이 여행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드니 기회가 되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누군가와 소통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던 순간 운치 있어 보이는 한 카페가 눈앞에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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