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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Jun 01. 2024

Mr.Switzerland

[6일 차] 폰세바돈 - 트럭카페

감성 카페라는 말을 자주 한다. 음료를 파는 공간을 넘어 감성을 자아내는 실내 분위기를 연출하는 카페를 말한다. 하지만 감성 카페가 카페 안에 감성이 숨어있는 것을 뜻한다면 이 트럭카페는 대자연의 감성 속에 카페가 살아 숨 쉬는 경우였. 운치 끝판왕, 3,000 퍼센트의 감성이 살아 숨 쉬는  카페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겼다.

안 그래도 여유 있게 커피를 한 잔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맴돌았었는데 분위기며 날씨며 따뜻한 커피를 마시기에는 최상의 조건이었다. 주인분은 우유가 들어간 것과 들어가지 않은 커피 중 어떤 걸 원하냐고 물었고 조금을 고민하다가 우유를 넣어달라고 말했다. 처음엔 자리가 없어 바깥에 앉았다가 실내에 자리가 나서 곧 빈자리로 옮겨 커피를 마셨다. 바나나와 참치가 들어갔다고 하는 샌드위치 느낌의 간식도 함께주문하였다.

카페에는 순례자들이 계속 오고 갔다. 자리를 채우고 또 자리를 비우고. 그렇게 오고 가는 순례자들의 몸을 분위기 있는 벽난로가 데워주었다. 비가 오는 덕에 몸이 조금은 얼어있었다.


나는 카페의 가장 안 쪽에 앉아서 커피를 마셨다. 그러다 한 남자가 내 옆 테이블로 다가와 자리에 앉았는데 그 인상이 왕년의 격투기선수 돈프라이와 같았다. 묵직한 체형에 50대 정도로 보이는 남자와 나는 나란히 앉아 같은 방향으로 얼마 동안 벽난로를 바라보았다. 남자는 곧 화두를 던졌다.


" 멋진 벽난로 군요 "


" 네. 분위기가 너무 좋네요. 오늘 폰세바돈에서 출발했나요? "


" 네 맞아요 "


" 어떤 알베르게에서 묵었어요? "


" 글쎄요. 벌써 이름을 잊어먹었네요. 어느 나라에서 왔나요?"


" 아 한국에서 왔습니다. "


" 오 그렇군요. 순례길에 한국 사람이 정말 많더군요. "


" 아 그런가요. 어느 나라에서 오셨나요? "


" 스위스요 "


" 아. 2018년에 유럽 자전거 여행을 했었는데 스위스에도 갔었어요. 취리히로 들어가서 바젤까지 갔었죠. "


" 아 프랑스, 독일, 스위스 국경이 만나는 곳 말이군요. 근데 거기 뭐 볼만한 게 있나요? "


" 아 사실 자전거여행이라 크게 상관은 없었어요 "


" 그렇군요. 순례길은 어디서부터 시작했나요? "


" 아 저는 레온에서부터 걸었습니다. "


" 오. 저도 지난번에 걸을 때는 레온에서부터 걸었어요. 아주 좋았죠. "


" 아 그럼 이번이 두번째겠네요. "


" 첫 번째이자 두 번째예요. 레온에서부터 걷는 건 두 번째 상장부터 레온까지는  번째, 무슨 뜻인지 알죠? 당신은 운이 좋아요(lucky guy) 날씨가 이렇게 괜찮잖아요. "


" 아 좋은 건가요? 사실 아침부터 비가 오고 있어서 조금 긴장했어요. "


" 하하. 상장에서 스페인으로 넘어올 때는 거의 비가 오지 않은 날이 없었어요. 아주 힘들었죠. "


" 아 그렇군요. 제가 운이 좋은 건지 몰랐네요. "


풍채 좋은 스위스 아저씨는 그 몸집만큼 왠지 마음도 넓어 보였다. 스몰토크라고 하긴 길고 롱토크라고 하긴 짧은 그 와의 미들토크는 정감 있고 온화했다. 나란히 앉아 한쪽방향을 보고 나누는 공평하고 균등한 대화는 천천히 이야기를 주고받기에 최적의 상황이었다.


커피를 다 마시고 샌드위치도 다 먹은 후 나는 다시 갈 채비를 했다. 자리가 많지 않은 이 카페를 방문하는 또 다른 순례자에게 나의 자리를 넘겨야 할 듯했다. 대화를 나눈 스위스 아저씨에게 짧은 인사를 남기며 다시 순례길에 올랐다,


" 갈 시간이 된 것 같네요. 부엔 까미노!(좋은 길) "


" 부엔 까미노! "


생각해 보니 나도 모르게 샌드위치를 먹어버렸다. 일일일식을 하기로 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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