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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May 28. 2024

폰세바돈, 알베르게를 찾아라

[5일 차] 폰세바돈

'라바날 델 까미노'를 떠나 폰세바돈으로 향하는 과정은 실로 험난했다. 그 고개를 넘어가는 심정이란 뭐랄까 성도를 차지하기 위해 촉으로 향하는 유비의 마음이랄까. 삼국지의 세나라 중 하나인 촉은 우리가 자주 볼 수 있는 지도에서는 엄청난 면적을 자랑하지만 그 영토의 대부분은 사람의 발이 닿기 힘든 생 자연이었다고 한다. 대부분의 영토가 험준한 고산지대여 사람이 정주하여 사는 땅은 극히 일부였다고 하는 이 땅, 쳐들어가긴 어렵지만 일단 점령하고 나면 수세하기는 굉장히 용이한 이 땅, 이 땅을 차지하여 세력을 키워 다른 두 나라와 경쟁하는 것이 제갈량이 유비에게 제시한 천하삼분지계였다고 한다.


산 넘고 물 건넌다는 말이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인가 싶을 정도로 폰세바돈으로 향하는 마지막 길은 녹록지 않았다. 경사가 가파르고 산세는 요란했다. 나중에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폰세바돈은 산 꼭대기에 존재하는 조그마한 마을이었다. 정말이지 순례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면 그 존재를 알게 될 이유가 없고 와볼 이유란 더더욱 없을 것 같은 신묘하고도 아름답기 그지없는 하늘과 닿아 있는 마을이었다. 해는 쨍쨍하지만 바람은 매섭게 불어 그 바람에 따라 체감온도가 실시간으로 왔다 갔다 했다. 하지만 그 풍경은 예술이었다.



'라바날 델 까미노'를 뒤로하고 원래의 계획대로 당도한 이 마을이 굉장히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사실은 실로 다행스러운 일이었지만 그 순간 가장 급선무는 알베르게를 잡는 일이었다. 미리 알아본 평이 좋은 한 알베르게에 들어가 숙박이 가능한지 문의했다.


하지만 라바날 델 까미노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번 알베르게도 이미 예약이 다 차 있었다. 보통 알베르게는 예약을 받지 않고 도착한 순서대로 배낭을 줄 세워 선착순으로 침대를 배정한다고 알고 있었는데 그러한 운영은 보통 공립 알베르게에서 많이 하는 듯했고 사립 알베르게들은 예약 서비스를 많이 운영하고 실제로 예약으로 방을 잡는 사람들이 많은 듯했다.


이 알베르게를 고르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가 않았던 것이 공식 홈페이지와 '부엔 까미노' 앱이 지역별로 제공하는 알베르게 정보가 서로 조금씩 달랐고 또 자료가 업데이트되지 않아 가격이 달라져 있는 경우가 많았다. 더불어 좀 더 정확한 평가를 보기 위해서는 구글맵 후기를 확인해야 했는데 이 세 가지에서 종합적으로 정보를 확보하여 해상도를 높이는 과정이 복잡하고 지치는 경우가 많았으며 격오지로 갈수록 인터넷 환경도 좋지 않아 확신이 드는 선택을 하기가 좀처럼 쉽지가 않았다. 스페인어 명칭의 알베르게 이름들은 잘 외워지지도 않아서 서치를 할 때 이름이 나와 있는 화면을 몇 번이고 되돌려 봐야 했다.


전날 아스토르가의 알베르게에서 점심을 차려먹고 아침에 머핀 하나와 요구르트 하나를 먹은 후로 아직 아무것도 먹지 않은 상태에다가 산 꼭대기까지 오르느라 체력도 많이 써버려 허기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어디든 알베르게를 잡고 들어가야 했다. 하지만 조그마한 마을에 알베르게가 몇 개 되지 않아 아까 방문했던 그곳처럼 왠지 예약이 다 차있을 것 같았다. 그런 와중에 부엔까미노 앱에서 예약을 따로 받지 않고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은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 한 알베르게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고 상대적으로 빨리 마을에 도착한 내가 방을 잡기 더 유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오늘 밤은 이곳에서 숙박을 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웬걸 구글 지도에 이름을 입력해도 검색이 되질 않았다.


스마트폰 배터리는 남아있는 용량이 20프로를 넘어 15프로를 향해갔다. 차선으로 값비싼 알베르게나 호텔로 선택지를 옮겨야 할까. 더 이상 고민할 힘도 별로 없는 상황에서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오른편으로 돌리니 구글맵에서는 검색도 안 되는 그 알베르게의 이름이 떡하니 보이기 시작했다. 지쳐서 철퍼덕 앉아 알베르게를 알아보던 그 자리가 도네이션으로 운영되는 바로 그 알베르게였다.


더 이상 고민할 여유는 없었다. 내려두었던 배낭을 들쳐 매고 그 알베르게의 현관으로 향해 걸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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