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라야 카스텔라는 레온부터 따지면 이번 순례길의 여덟 번째 정착지였다. 폰세바돈이나 오 세브레이로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이 마을도 그 규모가 굉장히 작은 편에 속했다. 따로 중심이라고 할 만한 곳이 없고 한 줄로 길게 뻗은 동네였는데 내가 묵을 알베르게는 마을의 끝에 위치해 있었다. 순례길 방향을 기준으로 마을 초입의 정 반대에 위치해 있어서 마을을 빠져나가기 직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다음날 다시 순례길을 출발하기에는 좋은 위치였다.
이 알베르게는 10.8유로로 사립치고는 굉장히 저렴한 알베르게였는데 며칠 전 폰페라다에 있을 때 이메일로 예약을 미리 해두었었다. 주고받는 이메일에서 호스트의 친절함을 많이 느낄 수 있었는데 실제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체크인을 하고 시설을 설명받는 과정에서도 그 친절함이 그대로 느껴졌다. 굉장히 오래된 것 같은 건물의 실내를 개조하여 알베르게로 사용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 덕에 여러 공간들에서 엔틱함이 묻어났다. 예전부터였을 것 같은 목재바닥은 간혹 위치에 따라 바닥을 밟으면 특유의 나무 비트러 지는 소리가 나긴 했지만 그 자체로 굉장히 매력적이었다. 역시나 목재로 되어있는 신발장도 굉장히 감성적이었다. 두 개 층으로 되어있는 건물의 앞에는 작은 공간이 있었는데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는 간이 테이블과 의자가 있었다.안 그래도 조용한 마을에 알베르게까지 마을 끝에 위치해서 그 마당은 시종일관 한적한 상태를 유지했다.
샤워와 빨래. 순례자의 일일 핵심 미션 두 가지를 완수한 후에 그곳에 앉아 식사를 했다. 오 세브레이로에 가기 전 카르푸에서 샀던 소시지와 빵 몇 조각, 그리고 사과 한 개가 일용할 양식이 되었다. 빵은 오는 길에 들렸던 한 바에서 시켰던 음식에 기본 옵션같이 나왔던 것이었는데 전체 양이 많아서 음식만 먹고 빵은 싸가지고 왔었다. 두툼한 크기의 4개 들이 소시지를 처음엔 다 먹을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매일의 활동량이 상당하고 삼시 세끼를 꽉꽉 챙겨 먹진 않고 있어서 생각과는 다르게 많이 배부르지는 않게 다 먹을 수 있었다. 사실 폰세바돈을 떠난 그날부터 자연스럽게 아침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일일일식이라는 키워드는 더 이상 사용할 수 없게 되었지만 갖춰진 식사는 주로 3시를 전후로 하는 점심 겸 저녁 한 끼였다. 일일일식보다는 필요한 만큼 먹기와 풍요로운 한 끼로 그 콘셉트가 바뀌고 있었다.식사까지 마치고 나면 잠에 들기 전까지 자기 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마을이 조금 크면 그 시간을 이용하여 시내를 둘러보았다. 아스토르가가 그랬고 폰페라다와 비야프랑카 델 비에르소도 마찬가지였다. 폰세바돈과 오 세브레이로는 워낙 작은 마을이라 둘러볼 것도 없었지만 마을에 도착하는 과정이 워낙 험난해 딱히 무언가를 하기보다 휴식을 취하기만 해도 그 시간을 충만히 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가장 큰 고비였던 오 세브레이로까지 넘어서 상대적으로 훨씬 무난한 트랙킹 끝에 도착한 이 마을은 크게 휴식을 취할 필요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 여유를 활용하여 무엇인가를 구경할만한 것도 없었다. 딱히 필요한 것도 없고 그리고 나를 매혹하는 그 어떤 것도 없는 환경 속에서 마을의 적막함은 곧 나 자신의 적막함이 되었다. 서둘러 걸어 확보하게 된 하루의 남은 시간은 알차게 사용할 자원이기보다 무료함을 견뎌내야 하는 일정분의 기간으로다가왔다.
알베르게의 바로 근처에는 마트가 있었다. 그곳에서 맥주 두 캔과 감자칩을 샀다.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해야 하는 순례자의 입장에서 맥주 두 캔은 조금 과한 듯 느껴졌지만 두 캔이 아니고서는 그 무료함과 적막함을 견뎌내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렇게 다시 마당의 테이블로 돌아가 공허함마저 느껴지는 그 시간을 사색으로 채웠다. 특별한 순간들이었던 순례길이 그 적막에 의해 다시 평범함으로 전락하고 있는 느낌마저 다가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