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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Jun 11. 2024

동물 복지

[9일 차] 오세브레이로 -> 트리야 카스테라

그 전에는 잘 느끼지 못했었는데 오 세브레이로로 가던 그 가파른 언덕에서부터 자주 마주하게 된 것이 있었다. 그건 다름아닌 개들이었다. 강아지라 표현하지 않고 약간의 좋지 않은 어감이 묻어나는 '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녀석들이 정말 개들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전형적인 진돗개나 그 보다 조금 큰 체구의 개들. 주인이 있을 것 같은 개들이 목줄도 없이 동네를 배회하곤 했다.


바닥에 배를 깔고 핵핵 거리는 개들은 크게 위협적이지 않았지만 가벼운 몸놀림으로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오는 개들로부터는 동물적인 위협이 느껴졌다. 나도 모르게 내가 발산하는 어떤 신호들이 혹여라도 녀석들을 자극시키면 어떡하나 하는 심정. 말하는 이와 듣는 이가 서로 조금 다른 감성을 느끼는 '우리 개는 물지 않아요'라는 말이 있는데 여긴 반대의 말이 필요한 것 같았다. '당신 개는 좀 물 것만 같다.' 물론 녀석들에게는 별 의도가 없어 보이긴 했다. 공포는 그저 나의 몫이었다.

한 번은 알베르게에 도착 하기 전 한 작은 마을에서 햄버거를 먹은 적이 있었다. 그 가게에는 기존의 녀석들보다 더 체구가  녀석이 테이블이 놓여있는 마당 이곳저곳을 돌아다니고 있었는데 음식이 나오자 이윽고 나에게로 다가와 내 음식을 탐하기 시작했다. 그 저돌성은 대가리거의 테이블 위까지 들이댈 정도였다. 가만두면 자신의 욕구를 끝끝내 참지 못하고 햄버거를 향해 아가리를 들이댈 것 같은 두려움에 나는 선공격의 개념으로 감자튀김을 던져 주었다. 그렇게 헌납한 감자튀김이 전체의 20프로는 되는 것 같다. 처음에는 하나를 들어 주둥이에 직접 넣어주었는데 그 때 감자 튀김을 잡고 있던 손가락을 씹힐 뻔 하여 다음부터는 바닥에다가 멀리 뿌려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리 감자튀금을 줘도 만족을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굶주림에 지친 이 개가 내 손을 물어 뜯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결코 햄버거는 뺏기지 않겠다라는 마음으로 감자튀금을 계속 던져주던 마음이 돌이켜보면 치졸하게 느껴진다.

어느 때 부터인가 마트에서 파는 식품들에 동물복지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다. 사육 과정을 가혹하게 하지 않아서 동물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고 그래서 식품의 품질이 더 좋아진다는 의미인데 이 표현을 들을 때 마다 어딘가 동물에 대한 인간의 광기가 스며들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곤 한다. 잡아먹을 놈들에게 복지라는 표현은 좀 그렇지 않은가. 어차피 죽을 목숨이긴 한데 사는 동안은 즐거워라, 그런 뉘앙스가 읽힌다. 그것도 그 복지의 목적이 당사자가 아닌 잡아먹을 사람을 위함이다. 복지는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야 한다. 복지의 결말이 도륙이라는 대목에서 서슬퍼런 광기가 느껴진다. 조금 더 적확한 표현이 필요해보인다.


개들을 양들처럼 방생하면서 키우는 것이 이곳의 전형적인 반려견 문화인 것인지. 동물권이 인권만큼 살아 숨쉬는 이러한 현장을 동물복지라고 말해야 하지 않을까. 광활한 자연을 마음먹은 만큼 뛰돌아 다니는 동물로서의 자유. 그것이 동물복지다. 그들에게서 느끼는 두려움은 나의 몫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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