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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Jun 10. 2024

Mr.Jo! You're everywhere

[9일 차] 오세브레이오 -> 트리야 카스테라

"부엔 까미노! 당신 어느 나라에서 왔나요?"


'부엔까미노'는 순례자들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마주치면서 던지는 인사말이다. 부엔은 '좋은'이라는 뜻이고 '까미노'는 길이란 뜻으로 '좋은 길'이라는 단순하고도 핵심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간혹 지나가는 한국인과 인사를 할 일이 생기면 '좋은 길 되세요'라는 한국버전의 인사말을 건네곤 했다.


세브레이로를 이제 막 출발했을 때 인사를 나눈 육중한 체격의 중년 남성은 미국인이었다. 선글라스에 모자를 쓰고 있었는데 챙이 360도로 되어있으니 영어로 Hat이라고 해야 할까. 전형적인 보완관 느낌의 외모와 외형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는 나에게 국적을 물어왔고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자신이 비즈니스 건으로 한국에 많이 방문했었다고 했다. 그는 내가 '당신은 어디서 오셨나요?'라고 되물었을 때 '유나이티드 스테이츠'라고 대답해 줬는데 그 답변을 통해 경우가 바르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제는 편견일지도 모르겠지만 미국사람들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어디 출신이냐고 물으면 '미국'이라는 국적이 아니라 캘리포니아, 뉴욕 등 내국인들끼리의 대화에 더 적합한 출신 지역을 말한다고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 한 번은 디엠지에 간 적이 있어요. 거기서 북한 군인들을 보았는데 키가 정말 작더군요. "


" 네 맞아요. 북한 사람들의 평균 키가 조금 작은 편이에요."


디엠지에 갔던 적이 있다고 한 이 남자는 나와 나란히 걸어가면서 몸집이 작았다는 북한 군인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판문점에 갔던 것인지, 어떤 비즈니스로 디엠지에 갔던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솔저?'라고 되물었을 때 수긍한 것을 보면 북한군인을 흉내 내는 것만은 맞는 것으로 보였다.


" 저도 작년에 미국에 다녀왔었어요. 로스앤젤레스, 피닉스, 라스베이거스에 갔었어요. "

그때만 해도 이 남성을 그렇게 자주 마주치게 될지는 예상하지 못했다. 그 첫 만남 이후 순례길에서 이 남성을 이래저래 10번 정도 마주쳤을 것 같은데 항상 여유 있는 걸음걸이로 누군가와 함께 걷고 있었다.


오 세브레이오의 다음 정착지인 트리야 카스텔라에서는 한 식료품 점 앞에서 그를 마주쳤는데 몇 번의 반복적인 마주침 이후에 나에게 이름을 물어보았다.


" 오 마이 코리안. 당신 이름이 무엇이죠? "


" 제 이름은 JO입니다. "


" JO! 이름이 길지 않군요 "


조민곤이라는 전체 이름을 말하지 않고 성만 말한 것은 순간적인 판단이었다. 민곤이라는 이름은 한국어로도 발음이 별로 쉽지 않은데 똑같은 받침이 연달아 나오는 음절은 외국인들이 발음하기에 쉽지 않다는 생각을 문득 했던 것 같다. 경우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예전 자전거 여행 때 벨기에의 알렉스라는 친구는 나를 계속 '미뇽'이라고 불렀었는데 MINGON이라고 연속으로 표기되어 있는 나의 이름을 어찌 발음해야 할지 몰라 떠오르는 대로 부르는 듯한 눈치였다.


" 성은 조이고 이름은 민곤인데 조라고 불러도 괜찮아요. 당신은 이름이 무엇인가요?"


" 저는 피츠입니다. "


서로 통성명을 완료한 이후로 이 남성은 나를 만날 때마다 우렁찬 목소리로 'Mr.JO'라고 부르곤 했다. 하루에도 두세 번씩 만나는 통에 언제부터는 나를 볼 때마다 "Mr.JO, You're everywhere"라고 농담을 던지곤 했는데 처음에는 당황스러워 웃고 말았다가 나중에는 "당신도요!"라고 받아치기도 했다.


의도한 지는 모르겠지만 피츠라는 이 사나이의 말은 항상 묵직하고도 간결했다. 한 번에 내뱉는 문장이 길어지면 영어를 알아듣기가 어려워지는데 그는 항상 짧고 간결한 문장을 무게감 있게 던져서 나도 간결한 답변을 이어가곤 했다. 여유가 넘치는 걸음걸이를 보면 사람 자체가 기품이 있는 것 같지만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나를 배려하기 위해서 알아듣기 쉽게 이야기해 줬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진실은 알 수가 없는 것이지만.


피츠와의 마지막 대화는 유쾌했다. 고작 하루 만에 만난 것이었지만 하루에 몇 번씩 마주치던 것에 비해 오랜만에 만났다는 뜻에서 나는 "Long time no see"라고 너스레를 떨었고 그는 오늘은 바람이 많이 불어서 추웠다는 나의 말에 "자네는 나처럼 지방이 없어서 그렇구만"이라며 셀프디스를 시전 하였다. 그게 마지막일 줄 몰랐던 나에게 그는 마지막이 된 인사를 던졌다.


"오, 내 친구를 기다려야 해서. 다음에 또 보자고 Mr.J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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