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게의 아침은 보통 분주했다. 체크아웃은 8시로 대부분 맞춰져 있었고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다음 지역으로 이동할 준비를 해야했다. 보통은 7시 내외로 많은 사람들이 알베르게를 나섰는데 몇몇은 조금 늦게까지 잠을 자기도 했다. 반면 6시 전후로 일찍 눈을 떴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출발하여 침대가 비워져 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이곳에도 보편이란 것이 있고 그 양쪽으로는 특수성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했다.
아침에 일어나 짐을 쌀때면 나도 모르게 마음이 분주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한 방에 수십명이 쓰는 알베르게에서는 각자의 시간과 속도로 짐을 싸고 사방팔방으로 왔다갔다 하는 사람들의 소리가 서라운드로 들려왔다. 그래서 누구도 재촉하지 않지만 자연스럽게 다급해지는 마음이 많이 생기고 그래서 행동이 빨라지는 경향이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참 가볍고 주변의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마음의 분주함을 알아차린 게 이 날 아침인 듯 했다. 내 밑의 1층 침대를 쓴 남자는 전날부터 꽤 부산스럽게 굴었었는데 아침에도 쿵쾅쿵쾅 이런저런 소리를 내며 마음을 흔들어 댔다. 덕분에 1층이 빨리 비워져 내 몫의 준비를 1층 침대에 걸터 앉아 할 수 있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좋은 점이기도 했는데 그래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이 참에 주변에 흔들리지 말고 나만의 속도로 천천히 준비하자는 마음이 생겼다.
순례길이란 하나의 세상과도 같았다. 3차원의 세상을 길이라는 1차원에 압축시켜 세상살이의 다양한 요소, 특성, 패턴 등이 명료하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저런 비유와 상징들이 문뜩 문뜩 피어올라 이 작은 경험 속에서 삶에 대한 다양한 통찰을 느끼게 되는 경우가 상당히 많았다.
항상 곱씹고는 하는 말이 불교의 일즉다다즉일, 하나가 모든 것에 영향을 주고 모든 것이 하나에 영향을 준다는 아주 단순한 진리이다. 한 사람도 마찬가지라 주변 환경에 영향을 받고 그래서 환경이 그 한사람을 좌지우지하고 규정하게 된다. 그래서 의지보단 환경을 구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들 한다. 독자적이고 독립적일 것 같은 인간의 마음이란 것도 바람불면 날아가는 가벼운 깃털처럼 물질과 다를 게 없다는 세상살이의 유물론적 관점이다.
하지만 그와 반대로 유심론으로 세상을 해석하기도 한다. 주변의 영향과 구속을 무시하거나 이겨내고 의지를 발휘해 자기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인간의 마음도 분명 존재한다는 생각. 그렇지 않으면 숱한 역경을 이겨내고 무엇인가를 달성하는 역사에 기록되는 그 많은 인물들이 어떻게 등장할 수 있는지를 물을 수 밖에 없다. 더불어 환경에 구속받고 마는 게 아니라 환경을 변화시키고 조성하는 의지는 그렇다면 또 어디서부터 피어오르는 지도유심론 속에 그 답이 녹아있기도 하다.
같은 길을 걷는 수 많은 사람들에 영향을 받으면서도 그 안에서 자신의 속도를 찾아가는 것이 순례길에서 느끼는 삶에 대한 하나의 통찰이지 않을까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