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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LO Jul 09. 2024

외롭고 괴롭고

[11일 차] 포르토마린 - 공립알베르게

순례증을 받을 수 있는 최소 거리인 100km. 그리고 그 기준을 충족하는 마지막 도시 사리아. 그래서인지 사리아에서 포르토마린으로 가는 구간은 순례길이 더 붐비게 느껴졌다. 순례길은 일부 갈림길을 제외하면 길이 하나이기 때문에 익숙한 얼굴들을 계속해서 마주하게 되는데 사리아를 출발하면서부터는 어딘가 낯선 느낌이 있는 사람들을 더 많이 마주치게 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이곳에서부터 트랙킹을 시작하는 사람들이 합류했기 때문이었을 것 같다. 순례자들은 산티아고 대성당이라는 같은 목표지점을 향해 각자의 속도와 무리로 그야말로 치닫고 있었다.


오 세브레이로 향하는 순례길 최고 난도의 여정을 통과한 이후에는 전반적으로 트랙킹은 무난했다. 사리아를 출발해 다음 도착지인 포르토마린으로 가는 구간도 마찬가지어서 덕분에 별로 힘들이지 않고 마을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포르토마린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미뉴강이라는 큰 강을 건너야 했는데 그 강을 가로지른 다리의 시작점에는 'LIBERTY BELL'이라는 큰 종이 있었다. 사람들은 포르토마린에 들어가기 전 이 종을 치면서 자신이 마을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였다. 넓은 강 폭에 맞게 그 위를 지나는 다리도 마을까지 꽤 길게 뻗어있었다.


오는 길이 무난했던 만큼 포르토마린에 도착한 시간도 꽤 일렀다. 공립알베르게가 문을 여는 한시가 채 되기도 전에 마을에 도착했는데 알베르게 앞에는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체크인이 시작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줄을 선 자신의 자리가 그늘 속에 가려져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그 자리를 차지하고 서 있었으며 그렇지 못해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위치에서 기다려야 했던 사람들은 자신의 배낭으로 표식을 남긴 채 어딘가로 흩어져있는 듯 보였다.


순례길을 걷는 날짜가 6월로 향해 갈수록 스페인의 태양은 이글이글 타오른다는 표현이 부족할 정도로 강렬해져 갔다. 6월은 태양이 너무 강하기 때문에 보통 오전 중에 트랙킹을 마친다는 말을 여행 전 책에서 보았었는데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온몸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그건 마치 태양볕이 아니라 뺨따귀를 한 대 맞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루는 반바지를 입고 가다가 종아리가 완전히 타들어가 버린 것을 뒤늦게 눈치챈 적이 있는데 상태가 너무 심각하여 그 자리에서 풀숲으로 들어가 긴 바지로 갈아입기도 했다. 그래서 그 뒤로는 날씨가 많이 더워도 꼭 긴 바지를 입고 순례길을 걸었다.


한시가 되자 포르토마린 공립알베르게는 문을 열었다. 순례자들은 도착한 순서대로 한 명씩 리셉션을 거쳐 안쪽으로 들어갔고 그럴 때마다 한 사람이 차지하는 공간만 큼씩 줄은 줄어갔다. 그에 따라 나의 자리는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곳에서 그늘이 처지는 곳으로 점차 이동했다. 줄어드는 줄을 따라가기 위해 벽에 기대어 둔 배낭을 몇 차례 들었다 놓았다 반복하니 곧 나의 체크인 차례가 되었다. 직원이 발급해 주는 방 이름과 침대 번호가 적혀있는 직사각형의 티켓은 몇 번의 공립알베르게를 거치면서 이제 익숙한 것이 되어있었다.


도미토리는 2층에 있었다. 파란색 매트리스와 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커다란 번호가 적힌 2층 침대의 프레임. 그리고 리셉션에서 제공한 습자지처럼 얇은 침대시트와 배게커버. 공립알베르게의 규격화된 환경은 패턴화 된 행동을 불러일으켰다. 배드버그 방지약을 베개와 침대에 뿌리고 난 후 그 얇은 침대시트와 배게커버의 포장을 뜯어서 용도에 맞게 알맞게 씌운다. 2층 침대에 시트를 씌우는 바닥에 다리를 딛고 처리할 수 있는 1층의 상황보다 조금 더 공력을 들여야 했다.


자리 정비가 완료된 후에는 입었던 옷을 갈아입는다. 처음에는 샤워를 한 후에 옷을 갈아입었지만 나중에는 샤워실까지 옷을 들고 가는 것 마저 성가신 일이 되어 먼저 갈아입고 속옷만 들고 샤워를 하러 갔다. 덥긴 하지만 우리나라와 달리 습하지 않아 땀이 금방 마르는 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사방팔방으로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군집의 환경 속에서 맨 살을 들어낸 채 옷을 갈아입는 것도 익숙해져 갔다. 매일매일 똑같은 행동이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쓸데없게 느껴지는 여러 '눈치'와 에너지를 소비하는 불필요한 행동은 점차 소거되어 갔다.


알베르게에는 주방은 있었지만 식기는 없었다. 갈라시아 지방의 공립알베르게는 그런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넓은 주방과 어울리지 않게 비치되어 있는 냉장고는 꽤 작은 사이즈였는데 순례자들은 그 작은 냉장고 안에 나름대로 자신의 음식을 보관하고 있었다. 과일과 음료 등 바로 먹을 수 있는 것들이었다. 주방기구를 따로 사용할 수 없다는 점을 미리 알고 있던 나는 순례길에서 미리 점심을 해결했었다. 햄버거와 함께 나온 감자튀김을 큰 개에게 주다가 손가락을 씹힐 뻔 한 날이 이날이었다.


식사를 미리 해결해 두었기 때문에 포르토마린에서는 샤워를 마친 후에 당일의 미션이 모두 끝나버렸다. 때때로 다가오는 귀차니즘에 이 날은 양말과 속옷 빨래도 그냥 생략해 버렸다. 총 3벌의 속옷과 4짝의 양말은 가끔씩 세탁을 생략해도 될 정도의 여유는 제공을 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잠자리에 들 때까지 꽤 많은 시간이 나에게 주어지게 되었다. 시간이라는 자원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라는 차원에서 그날의 나는 꽤 부자인 상태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날의 시간적 여유는 나에게 좋게 작용하지 못했다. 최대한 배낭을 가볍게 하고 왔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순간 허리가 뻐근해오기 시작했다. 2층 침대에서 몸을 누워보기도 하고 엎드려보기도 했지만 피로감과 통증 그 중간정도인 것 같은 작은 불편함이 신경을 사로잡았다. 뻐근함을 달래기 위해 스트레칭을 해도 불편함이 완전히 가시지는 못했다. 누워있다가 좀이 쑤시면 벽에 베개를 대고 앉았고 그러다가 다시 엎드리거나 눕기를 반복했다. 한 자세를 오래 유지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몸을 뒤척이고 있었다.


푹신한 소파에 기대어 앉아있고 싶었지만 알베르게에 그런 시설은 구비되어 있지 않았다. 1층의 주방 옆 거실 에는 몇몇 테이블 주변으로 소파가 있긴 했지만 허리가 뻐근한 사람에게 편안함을 제공하는 수준은 되지 못했다. 그 마저도 누군가들이 앉아 있으면 이용할 수가 없었고 공용공간이라 계속해서 맘 편하게 있기도 어려울 것 같았다.


차라리 동네를 조금 거닐며 돌아다니자는 마음으로 밖에도 나가봤지만 그것도 그리 오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더우면서도 추운 스페인 북부의 날씨는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해는 뜨거운데 바람은 차가운 서로 이질적인 요소가 공존하는 날씨는 사람을 이도 저도 못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었다. 해를 피하기 위해 그늘로 가면 바람이 너무 차가웠고 찬기를 피하기 위해 햇볕으로 나가면 태양이 너무 뜨거웠다. 그러한 날씨 속에서도 현지의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희희낙락 담소를 나눴다. 공원에서는 해와 바람을 즐기듯이, 지붕이 있는 가게의 야외 테이블에서는 해는 피하고 바람만 즐기는 듯했다. 그들을 보며 나는 외로운 감정을 느꼈다. 철저하게 혼자이고 싶어서 떠나온 여행길에서 그건 예상하지 못한 모순적 감정이었다. 사람은 과연 혼자일 수 있는가. 나는 '철저하게' 혼자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조금씩 자주' 혼자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발견한 지점이 그때이지 않았을까 생각을 한다.

바깥을 별로 즐기지 못하고 다시 돌아온 알베르게에서도 밝지 못한 감정은 계속되었다. 밤 10시까지도 그 기세가 꺾일 조짐이 보이지 않는 쨍쨍한 태양은 나 자신의 감정이 유쾌하지 못할 때는 반갑지가 않았다. 아직 해가 지지 않은 오후 10시를 밤이라고 표현하는 것도 어딘가 어색해 보인다. 슬픔에 사무칠 때는 슬픈 음악이 사람을 치유하는 것처럼 그때의 나에게 필요한 것은 아마도 화창한 오후가 아니라 어스름하고 처연한 저녁이었을 듯하다. 만약 자연에도 인격이 있다면 그때의 태양은 나를 공감하고 위로해 줄 수 있는 존재가 되지 못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스마트폰을 하는 것뿐이었다. 불편한 2층 침대에서 또다시 누웠다 엎드렸다 기대기를 반복하면서 유튜브를 보고 음악을 듣고 인터넷을 하는 킬링 타임을 보냈다. '킬링 타임'이라는 말의 뜻 그대로 자기 전까지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차츰차츰 죽여나갔다. 잃어버린 물건 들 중 하나였던 책은 프리드리히 니체와 관련한 것이었는데 억지로 시간을 죽여나가는 그때의 괴로움은 그 프리드리히 니체의 난해한 표현과 문장마저도 그립게 만들었다.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그 책을 읽으면서 있어 보이고 싶어 하는 인간의 허영심이란 이런 것이지 않을까 생각을 하곤 했는데 포르토마린이 내 안에 불러일으킨 두 감정인 외로움과 괴로움은 그 허영심으로라도 밀어내고 싶은 듯한 그날의 나를 규정한 두 가지 감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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