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노래방 검색 기능이 없었던 오래 전 직장생활 이야기
“지나고 나면 별것 아니라고 여기게 되지만,
정작 그 시간에 나는 남들만큼 치열하게 살았(던 것 같)다.”
나는 국내의 한 대기업(이하 ‘회사’)에서 10년+을 보냈다.
그곳은 쉽게 예상하듯, 자기만의 틀과 관습을 견고하게 쌓아 올린 조직이었다.
처음엔 그 틀 안에 발을 디디며 숨쉬기조차 어색했지만,
하루하루 지나면서 어느새 나도 그 틀 안에서 조금씩 성장의 기회를 쫓고,
경쟁하고, 때로는 (나름은 많이) 인정받던 때도 있었다.
회사에서의 ‘일’은 단지 보고서나 프로젝트가 전부가 아니었다.
정해진 시간을 일하고 퇴근하면 끝나는 단순한 구조가 아니었다.
사실, 윗사람의 비위를 잘 맞추는 회식 자리도,
주변 동료들의 평판을 잘 관리하는 과정도,
엄연히 ‘일’의 연장이었다.
나도 사회 초년생 시절엔
“이 회식을 어떻게 하면 조금 더 인상깊게 나를 각인시킬 것인가, 혹은 무탈하고 안전하게 넘길 수 있을까”
늘 고민이었다.
종종 나는 노래방 갈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화장실에 가는 척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나가곤 했다.
사실 볼일을 보러 간 게 아니라,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노래를 급히 검색하려고 한 거였다.
나는 원래 발라드만 좋아했지만,
그날만큼은 신나는 곡을 찾는 것이 ‘필수 스킬’처럼 느껴졌다.
지금은 네이버에 간단히 ‘노래방 곡 검색’ 기능을 통해 적당한 곡을 찾을 수 있지만,
당시에는 그런 기능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었다.
(이 밖에도 "젋은 직원 나와서 건배 제의 한번 해봐~"라는 지시에 대비하기 위해
항상 회식 있는 날은 건배사를 준비했었다. "의사소통! 운수대통! 만사형통! 통통통!! 건배~~!!"ㅠ)
아쉽게도 내가 어느 정도 노래방 분위기를 맞출 줄 아는
‘중견 직원’이 되었을 때야 그 기능이 생겼으니, 타이밍이 좀 엇갈렸다고나 할까.
정해진 업무 오더를 받으면,
나는 최대한 완성도 높게 해내려고 애썼다.
그런데 문제는 이 ‘완성도’가 나의 기준이 아니라 상대방의 기준에 달려있다는 점이었다.
보고서를 하나 쓸 때도, 내 생각을 자유롭게 풀어내기보다는
“이 조직이 원하는 형식, 이 상사가 좋아하는 문맥, 이 부서가 선호하는 단어”를 맞추기 위해
이전에 작성된 보고서를 뒤지고 또 뒤지는 일이 많았다.
더 골치 아픈 건,
회사 내에서도 부서마다 ‘잘 쓴 보고서’의 기준이 제각각이라는 점이었다.
업무 특성상 조금씩 다를 수밖에 없기는 하다.
하지만 상사의 성향이나 문해력 수준에 따라
“잘 쓴 보고서”가 단숨에 “쓰레기”가 되기도 하고,
반대로 “쓰레기 같던 보고서”가 “최고의 보고서”로 둔갑하기도 했다.
(물론 정말 ‘잘 쓰여진 보고서’는 어느 부서를 가도 잘 썼다고 평가를 받기 마련이다)
어쨌든 중요한건 이런 사소한 차이와 변수가
내 일하는 시간을 몇 배로 늘리곤 했다는 것이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성장한다”는 말은 멋있지만, 실제로는 무척 지난한 과정이었다.
나는 보고서를 써도, 엑셀을 다뤄도, 처음부터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그런데도 결과물은 '좋다'는 평가를 줄곧 받았다.
왜냐하면 나는 ‘어떻게든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시간을 아끼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금요일 저녁 퇴근 직전에 이슈 검토, 보고서 작성 등의 오더를 받거나
다음주 중요한 보고건이 있을 때면,
토요일 밤 10시경에 회사에 출근을 하곤 했다.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일요일 동틀 무렵까지 약 6~8시간 정도 몰입해서
과거 선배나 전임자들의 자료와 보고서를 집중적으로 탐독했다.
기본 형식을 참고하고, 표현을 흉내내면서, 필요하면 10회 이상 계속 수정하며 모방했다.
결국 이렇게 탈고된 결과물은 "회사의 일 문화를 과거로 돌려놓는 후퇴"였을 수도 있지만,
나에게는 “일머리가 좋고 손이 빠르다”는 칭찬으로 돌아왔다.
(한 때지만 이 방법이 내가 조직에서 인정받는 중요한 비결이었다는 것이 한 편으론 내 스스로가 하찮아 보일 때도 있다)
물론, 그 사이에 쌓인 내 밤샘과 피로는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고,
상사의 눈엔 일 잘하는 부하 직원으로 보일 뿐이었다.
자기 합리화로서 나는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을 매우 신뢰한다.
나는 남들보다 더 뛰어나거나 남다른 재능을 가진 사람은 아니었다.
그저 보고서 한 줄이라도 더 깔끔하게 고쳐보려 노력했고,
회식 자리에서 노래 한 곡이라도 더 신나게 불러보려 애썼을 뿐이다.
특별해 보이지 않는 이유는,
모두가 각자 다른 모습으로 비슷한 치열함을 품고 있기 때문이 아닐지.
하지만 그 ‘치열함’ 덕분에
나는 일을 배웠고, 사람을 이해했고,
무엇보다 내 한계를 조금씩 넘나드는 법을 알게 되었다.
금요일 저녁 마지막 순간에 떨어진 오더 때문에 토요일 밤 10시에 출근하고,
사람들과 노래방 가기 전엔 미리 선곡을 찾아보며,
내 몫을 어떻게든 잘 해내려 애썼다.
그 모든 과정은 "이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라는 단순한 이유였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안에 내가 성장하는 비결이 있었다.
직장생활 10년 동안, 나는 무수히 흔들렸고 매번 부딪혔다.
하지만 결국 그 흔들림이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었다는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당시엔 다소~매우 흔들리는 게 부끄러웠지만,
이제와 보니 그저 흔들리면서도 앞으로 나아간 시간이었음에 고마워진다.
이제는 예전보다 조금 덜 흔들린다.
물론 여전히 흔들리고 있지만,
그게 또 새로운 나를 만들어갈 것이란 믿음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