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승 Nov 20. 2021

"넌 바비인형 같이 되고 싶지 않니?"


2년 전 여름 한국을 방문했을 때 친정엄마는 하엘과 시온을 소위 말하는 "키 성장 센터"라는 곳에 데려가셨다. 한국에서는 영재 검사다, 성장판 검사다 해서 많은 검사들을 손쉽게 한다고 알고 있었고, 우리 엄마 또한 친구분들 손주들의 검사 얘기들을 들으시며 좋은 마음에 '우리 손주들도 한국 나오면 꼭 시켜줘야지' 하셨을 테다. 미국에서는 일부러 찾아 하기도 힘든 검사이고, 남편이나 나나 크지 않은 신장을 갖고 있어서 그럼 이왕 한국에 온 거 한번 받아나 볼까 하는 마음에 별생각 없이 센터 안으로 들어섰다.


키가 얼마나 클지 알려준다고 해서 성장판 검사나 골밀도 검사 등을 할 줄 알았는데, (물론 키도 쟀지만) 몸무게, 체지방, 그리고 전깃줄이 달린 스티커를 아이들 머리 곳곳에 붙여 놓고 뇌파 측정을 했다. 안 그래도 여기가 어딘지, 머리에 붙인 이건 뭔지 어리둥절한 아이들에게, 가뜩이나 어려운 한글로 문제를 주면서 물어보니 아이들은 불편해하고 당황스러워했다. 당연히 컴퓨터 스크린 상의 아이들의 뇌파는 위아래로 심하게 요동을 쳤다. 건조한 표정의 실험실 선생님은 "흐음.. 흐음... 쓰읍..." 하면서 모니터만 바라보셨다.


잠시 후 결과지를 들고 원장님이 들어오셨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자기들이 뭔가 잘못한 건가 약간 긴장한 아이들은 내 옆에서 눈치를 보고 있는데 원장님은 개의치 않으시고 나와 친정엄마에게 결과를 해석해주기 시작하셨다. "딸이 통통한 건 아시죠? 이렇게 계속 크면 비만이 될 수도 있어요. 그럼 키도 안 클 거구요, 성조숙증도 금방 올 거예요. 뚱뚱하면 주의력도 떨어질 거구요. 이렇게 뇌파가 요동이 심하면 엄청 산만할 텐데. 평소엔 어떤가요?"


당시 고작 8살이던 딸아이가 뻔히 옆에 있는데, 마치 얘는 귀가 없는 애인양 쏟아내는 저주의 가까운 말들을 들으며, 아이는 '내가 어디가 잘못되었다는 소리인가 보다'라는 불안한 얼굴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요즘 시대에 어디 곳이나 마찬가지이긴 하나, 특히나 타인의 외모에 대해서 "어머, 너 왜 이렇게 살쪘니?" "피부가 왜 이래?"라는 말을 인사 대신 아무렇지도 않게 면전에 하는 한국의 외모지상주의. "살 빠졌다!"가 칭찬인 그 현실에 대해서는 족히 알고 있었다. 나 또한 그 현실의 순응자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정말 아이가 걱정된다면 아이가 없는 곳에서 사적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었을 텐데. 그 어떤 배려도 없이 아이의 미래에 대해 이미 선고를 내린듯한 말투는 나로 하여금 정말 간만에 똥을 심하게 씹은 표정으로 그분을 쳐다보게 만들었다.


내가 아무런 대답을 안 하고 똑바로 쳐다보자, 그 원장님은 아이에게 시선을 돌려 말했다.

"넌 바비인형 같이 되고 싶지 않니?"


아이는 원래부터 바비인형을 갖고 논적도 없을뿐더러, 바비인형을 보고 이쁘다고 사달라고 말한 적도 없었다. 무엇보다도, 음식의 맛 자체를 기가 막히게 구별하고, 그 미묘한 차이를 너무나 창의적으로 잘 표현하는 아이. 그래서 요리하는 것을 최고로 좋아하고, 맛있는 음식에 진심인 미식가인 아이에게 "너 그렇게 먹다 뚱뚱해진다. 키도 안 크고 집중도 못하게 될 거야"라는 말은 대체 어떤 혼란을 심어주는 말이었을까.


그 결과지의 얼마만큼이 사실이었던들, 속단하고 단정하며 아이의 가슴팍에 화살처럼 꽂히는 잔인함에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이런 곳에 오잔다고 냉큼 따라온 나 자신을 쥐어박고 싶었다. 도저히 표정관리가 안될 즈음, 안절부절못하는 친정엄마를 뒤로 하고 "저희는 이곳에서 상담받을 게 없을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후 아이들의 손을 잡고 뛰쳐나왔다. 나오자마자 아이에게 넌 잘못된 게 하나도 없다고, 저 아줌마 얘기 들을 필요 없다고 다그치듯 말했지만 흰색 가운을 입고 권위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자기의 치부를 다 안다는 듯 내린 선고가 아이 안에는 이미 독약같이 퍼져 든 것 같았다. 나에게도 왠지 모를 자책감이 불청객처럼 찾아왔다. 내가 그동안 정말 뭘 잘못 먹였나? 내가 너무 영양도 생각 안 하고 아무거나 막 줬던 걸까? 내가 엄마 노릇을 잘못했나?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며, 아무리 부정하고 싶어도 우리가 뭔가 잘못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정죄의 소리에 시달렸다.


키 성장 센터에서 뛰쳐나온 날 저녁, 맛있는 걸 먹으러 가서도 좋아하는 음식 앞에서 멈칫거리며 "엄마.. 나 이거 먹으면.. 뚱뚱해지는 거 아니야? 나 또 검사받으러 가야 하면 어떡해?"라며 불안해하고 심지어 죄책감까지 느끼는 아이의 모습에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그 이후로 미국에 돌아와서도 상황에 안 맞는 "미안해.."라는 말을 수시로 한다든지, 뭐라고 한 사람도 없는데 "알아.. 나 뚱뚱해.."라며 어깨를 추욱 늘어트리는 모습을 볼 때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화도 나고 걱정도 됐다. "아니야, 아니야. 넌 지금 있는 이대로 딱 좋아. 잘못된 거 하나도 없어."라고 말을 해놓고도, 좋아하는 음식을 실컷 먹으려는 아이 앞에서 "우리... 이제 그만 먹을까?"라는 말을 나도 모르게 뱉어버리고는 진짜 내 주둥이를 때리고 싶었다. 이런 사회풍조를 향한 분노와 아이를 향한 미안함, 또 나는 나쁜 엄마라는 자책감 사이에 바람인형처럼 갈팡질팡했다. 우리가 왜 이렇게 돼야 하지? 우리는 도대체 어떤 거짓말에 속고 있는 걸까? 오래도록 질문하고 들여다보는 시간이 이어졌다.


 후로 2년의 시간 동안, 아이는 키가 자라고 몸이 자라고 마음도 자라며  대의 초입에 들어서 있다. 여전히  먹고 여전히 행복해하며 여전히 아기 같은 웃음을 지어 보이지만 어느덧 키는 바로   밑까지 컸다. 2  한국에서의 경험 이후로 아이의 식단을   건강한 쪽으로 바꾸긴 했지만, 먹을  스트레스를 준다거나 살이 오른다고 나무라지 않았다. " 그러다 살찐..."까지 말이 나온 적도 있지만, 어느  아이를 놓고 기도하다 " 아이의 사랑의 언어는 음식이야"라는 음성이 들렸다. 함께 장을 보고, 스스로 레시피를 개발하며 음식을 만들고, 플레이팅을 하고, 엄청 맛있게 먹으면서 아이는  시간 안에서 온전히 사랑받고 있다고 느낀다는 것을 깨달았다. 음식을 맛보고 만드는 행위 안에서 주도적인 사람이 되고,  음식을 나누는 관계 안에서 아이 스스로 소중한 존재로 여김을 받는다는 것을 그제야 이해하게 되었다. "하엘아, 엄마가 너를 위해 기도하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떠올랐는데, food  너의 love language 맞아?" 했더니, "엄마! 엄마는 그걸 이제 알았어? 완전 맞지!"라며 함박웃음을 짓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럽고 고마웠다.


바로 며칠 전 만 10살 첵업을 받으러 소아과에 갔다. 흰색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은 아이의 키와 몸무게, 체지방과 다른 여러 가지 수치들을 재어보시더니 "너는 네 몸을 아주 잘 돌보고 있구나.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하면 돼. 넌 지금 이대로 너무 예쁘다."라고 말씀해주셨다. 키 성장 센터에서의 기억이 트라우마로 남았던 아이는 이번에 또 무슨 안 좋은 소리를 들을까 며칠 전부터 잔뜩 긴장을 했었는데, 선생님의 이야기에 굳어져있던 얼굴이 일순간 환하게 펴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는 자기 본연의 모습이 되어 신나게 떠들었다. "엄마, 난 크면 culinary school(요리학교)에 갈 거거든. 거기서 나오면 일단 여러 레스토랑에서 일해볼 거야. 그렇게 경험을 쌓은 다음엔 있잖아, 책방이랑 베이커리를 함께 하는 비즈니스를 만들 거야. 벌써 이름도 지어놨어. 메뉴랑 웹사이트도 벌써 있어. 내가 그래서 밀리어네어가 될 거거든? 그럼 엄마 뭐 해줄까?" 하며 재잘거리는 아이에게, "그래, 너 하고 싶은 거 다해! 어우야, 엄마는 밥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싫은데, 내 딸이 요리사라니 너어무 좋다!"라며 같이 낄낄거렸다. 바비인형은 무슨? 나는 동글동글 맛있는 내 딸이 제일 좋다. 엄마까지 부자로 만들어준다니. 캬.. 더할 나위 없다.


• Soli Deo Gloria •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 누가 우리를 미워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