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
"어떻게 싱가포르 친구를 사귀었어?"를 넘어 이제는
"어떻게 그렇게 싱가포르 친구들이 많을 수 있어?"
라는 질문을 한국인은 물론 싱가포르인들에게서도 종종 듣는다.
싱가포르에 방문한 적은 총 4번.
2번은 2005년과 2013년, 호주를 가며 싱가포르 항공을 이용해 transfer로 하루 체류하였고,
1번은 2014년, 호주 교환학생이 끝나고 싱가포르 친구들의 집에 방문하기 위해 간 1주일
1번은 2017년 여름, 2개월 동안 싱가포르에서 살아보기
그리고 싱가포르 친구들은 떠오르는 이들만 세워봐도 30명이 넘는다.
이 중에는 싱가포르에서의 결혼식 날짜를 알려주면 바로 휴가를 내고 비행기표를 사서 방문할 친구가 3명, 언제든 한국에 오면 우리 집에서 재워줄 (나 또한 친구 집에서 머문 적이 많았고!) 친구가 4명, 크리스마스와 생일에 서로 선물을 보내는 친구들이 8명쯤 된다. 나머지는 종종 와츠앱, 인스타그램으로 안부를 묻고 싱가포르에 가면 연락해 번개로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정도!
싱가포르로 교환학생을 다녀온 것도 아니고, 1주일 이상 체류한 적은 2번뿐인데 30명이라는 숫자는 스스로도 꽤 많다고 생각한다. 그 이야기를 하나하나 풀어봤다:)
호주 Adelaide 대학에서 1년 동안 교환학생 생활을 했다. 어느 영미권 국가를 가든지 아시안은 정말 많다고 들었지만 호주에 아시안이 이렇게 많을 줄은 몰랐다. 대학의 전체 재학생의 30% 이상이 아시안 유학생이었다.
알고 보니,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 등 동남아시아 국가에서는 경제력이 되고 공부를 잘할수록 자국 대학보다 영국, 미국, 호주 등 영미권 국가로 대학 유학을 가는 걸 선호하고 그중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국가가 호주여서 꽤 많은 수가 호주유학을 선택한다.
싱가포르의 경우, NUS, NTU, SMU 등 세계 대학 순위 11위, 12위에 이르는 국립대학 입학을 선호하지만 서울만한 도시에 국립대학이 5개(예술대학 포함)에 불과하고 의과, 치과, 건축학과 등 1-2개 대학밖에 없는 학과가 많아 원하는 전공의 문이 매우 좁다.
한편, 호주와 싱가포르의 교육 협정으로 호주에서 의대를 졸업해도 싱가포르에서 바로 전문자격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에 Adelaide 대학의 Dentistry 학부는 거의 절반이 싱가포르인이었다. 또 교환학생으로도 홍콩, 싱가포르 대학에서 온 많은 학생들을 만날 수 있었다.
여기에 룸메이트가 프랑스 요리/제과학교인 Le Cordon Blue 호주 캠퍼스에서 Patisserie(Pastry)를 배우는 말레이시아계 차이니즈여서 자주 홈파티와 쿠킹데이를 열었고 룸메이트의 유학생 친구들(말레이시안, 인도네시안, 싱가포리안)들과 디저트, 케이크, 국가별 현지 음식, 호주의 카페와 맛집 투어를 다니며 '푸드'를 키워드로 호주와 동남아시아 문화를 동시에 접해갔다.
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호주 남부 도시의 한국인 비중은 Sydney, Melbourne에 비해 낮았고, 한 명의 동남아시아 친구를 사귀면 그 친구의 국적 무리와 자연스럽게 친해질 수 있었다. 한번 얼굴을 튼 친구들과는 수시로 열린 International party에서 만나 다시 이야기하고, 매주 월요일 Movie night (호주의 영화비는 한국보다 비싼 $15 정도였는데 매주 월요일은 $10 정도로 할인), 수요일 Torrens 호수 러닝, 일요일 Frisbee팀 경기를 다양한 무리의 친구들과 함께 하며 추억을 쌓아 갔다.
이때 만났던 친구들이 2014년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는 매년 한국에 찾아왔다.
홍콩, 싱가포르로 돌아간 교환학생 친구들은 가족 휴가, 개인여행으로 한국에 여행을 왔다. 당시 동남아시아에서는 한국에 옷과 화장품을 잔뜩 쇼핑하러 오는 붐이 일기도 해 친구들도 구매품목 리스트를 잔뜩 적어 찾아왔다.
나도 기회가 되면 1일 환승으로라도 싱가포르, 홍콩에 방문해 친구들과 시간을 꼭 가졌다. 싱가포르에서의 여행은 매일 다른 현지인 친구들과 로컬 체험을 하는 일정이었고 하루에 4명의 친구를 3시간마다 미팅 스케줄을 짜듯 보기도 했다. 한정된 시간에 보지 못한 친구는 딱 30분 얼굴을 보기 위해 공항까지 마중을 나와주기도 했다.
한 홍콩 친구는 호주대학을 졸업하고 한국 대학에 석사장학생으로 입학하기도 하고, 매해 여름 겨울 호주에서 만났던 친구들을 한국에서 다시 만나는 신기한 일이 4년 동안 이어졌다.
모교가 글로벌 캠퍼스를 지향하며 여름 겨울 계절학기 외국인 수강생 확대, 한국으로 오는 교환학생 수 증대를 제도적으로 지원했다. 또 동남아시아 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미국, 유럽보다 가까운 한국 대학으로 교환학기를 와 펑펑 놀고 쇼핑을 하는 게 유행하면서, 졸업을 앞두고 들은 여름 계절학기 수업(Leadership Communication)의 40명 수강생 중 5명이 한국인, 35명이 외국인, 그중 싱가포리안이 25명이었다.
영어도 서툴고 모든 게 낯설었던 호주에서 외국인 친구들로부터 받았던 도움이 너무나 따듯했기에, 한국에서는 내가 나서서 학교 주변 맛집을 소개하여주고, 스포츠 경기 티켓을 끊어주고, 현지인의 관점에서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한국에 관심 있어 교환학기를 온 새로운 친구들과 친해질 수 있었다.
싱글리쉬, 다인종 사회, 싱가포르 초대 총리 리콴유, 독립 역사, 현 리센룽 총리 중심의 정치구조, 말레이시아와의 관계, 주거 정책, 내셔널 데이, 화교의 성향 등 싱가포르의 모든 것이 나에겐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서울만한 작은 나라의 역사와 역동, 성장, 그 속의 행위자들인 다양한 인종과 언어의 사람들이 너무나 신기했다.
(싱가포르에 대한 호기심 가득한 발견들은 '싱가포르를 소개합니다' 매거진으로 나누고 있습니다.)
결국, 위의 시간들을 보내며 싱가포르인 인생친구들이 참 많이 생긴 건 위의 주제들에 호기심 가득하게 바라보고, 묻고, 듣고 또 한국은 어떤지 나누며 가능했던 것 같다. 스쳐가는 교환학생, 여행, 여름 학기라는 순간을 기회로 만든 건 진심으로 친구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이후 작년 7월과 올해 2월, 4월에 출장차 짧게 싱가포르에 방문하는 기회가 있었고 2-3일의 짧은 날들을 쪼개 공항에서 만나고, 식사를 같이 하고, 회사 근처에서 커피 타임이라도 가지며 특별한 친구 사이를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