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에서 만나는 많은 아시아 근대 화가들은 아시아 주변 국가와 유럽을 참 많이 여행했다. 싱가포르는 서울만한 작은 나라에 일 년 내내 무더운 여름이기에, 나라 밖 세계의 다양한 자연과 문화를 경험하고 싶은 욕구가 과거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강하다. 예술가들의 여행기가 특히 인상 깊은 이유는, 여행을 다니며 발견한 사물과 느낀 감정을 작품으로 누적하기 때문이다. 글뿐만이 아니라 회화와 조각으로 경험을 승화시키는 그들의 능력이 부럽다.
싱가포르에 살며 작년에만 서울, 교토, 랑카위, 푸켓, 빈탄, 런던, 바젤, 인터라켄, 상하이, 홍콩 등 매년 10개 도시 이상 여행을 다녔다. 이 경험 또한 흔치 않고 소중한데 좀 더 생산적으로 꾸준히 누적하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든 전시가 있었다.
싱가포르 내셔널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싱가포르계 영국인 예술가인 Kim Lim의 특별전이다.
무려 1977년에 테이트 갤러리에서 솔로 전시를 연 Kim Lim은 같은 해 런던 헤이워드 갤러리에서 첫 번째 비백인, 여성 작가로 포함되기도 했다. 그녀의 연대기에서 'Kim Lim travels to Europe'라는 문장이 눈에 들어왔다. 1980년대에도 Kim Lim travles to Turkey, Japan과 같이 그녀의 여행 여정이 작가의 연대기에 자꾸 보였다.
그녀의 조각 Naga를 보면 일본의 물과 돌이 어우러진 정원이 떠오르고, 물의 흐름이 느껴진다.
Water plays quite an important part in my work.
Ripples, leaves, marks on sand, dunes, erosion..
I would like my work to infer rather than refer.
I'd like to spark an echo in the viewer.
스핑크스라는 제목을 들으며 아! 싶은 가운데 그림. 이집트를 여행하고 이런 그림 하나를 남기면 긴 말보다 오래 남지 않을까. 이집트를 가지 않은 나에게도 피라미드 앞 스핑크스를 상상해보게 한다.
배경 지식 없이 우연히 전시를 보았다가 작품 하나하나 감탄하고 특히 인테리어에 영감을 많이 받았다.
한지를 칼로 섬세하게 잘라 공중에 걸고 조명을 설치하면 이런 분위기를 낼 수 있겠구나. 최근 인테리어 소품 중 가장 마음에 드는 조약돌 모양 리모컨과 같이 물결, 돌, 자연의 곡선을 집에 두었을 때의 아름다움을 상상했다. 그녀는 '심장 박동', '음악'과 같이 보이지 않지만 느껴지는 물리 세계에도 관심을 가졌고, 자연의 리듬을 찾으려 한다면 우리 주변의 구조적 다양성과 풍부함을 발견할 거라고 강조했다. 그녀의 눈으로, 아니 오감으로 보는 세상이 궁금하다. 그녀의 작품들은 단순하다. 동시에 특별하다. 그리고 희망을 준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자연을 따라해 보고, 감정을 표현해 보고, 여행을 다니며 본 아름다움을 표현해 보라고.
훗날, 내 연대기에 내가 다닌 여행의 기록과 함께 내가 찾은 디자인 소품들, 만들어본 조각이나 그림, 한 문장 한 문장 눌러쓴 글들이 꾸준히 누적되어 모아진다면 참 뿌듯할 것 같다. 오늘 글을 쓴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