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1. 시외버스 안에서
울산으로 가는 시외버스에 몸을 실었다.
10시 20분 차를 타려고 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한 시간은 10시 12분
얼른 표를 끊으려고 카드 전용기계에 가서 좌석을 보는데 이미 창 측은 다 매진이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약간 뒤쪽 자리인 통로 자리에 표를 끊었다.
나는 1시간 이상 버스를 탈 일이 있는 날은 작은 크로스백은 서랍에 꼭 넣어두고는 큰 가방을 꺼내 든다.
그 이유는 책을 넣어가기 위해서다.
또 이렇게 멀리 갈 때는 만나게 될 사람에게 줄 선물을 챙겨가기 위해서다.
오늘은 큰 가방 안에 책과 커피, 그리고 드디어 얼굴을 보는 언니를 위한 작은 선물을 가방에 넣었다.
시외버스에 올라타고 차가 출발하기 전에 여느 때처럼 책을 꺼내 들고 커피를 홀짝였다.
중간 버스정류장을 다 거쳐갔음에도 무슨 일인지 내 창가 좌석 사람은 오지 않았다.
편안하면서 왠지 모르게 쓸쓸했다.
내 앞자리에는 어머니 한 분이 계셨고 반대편 좌석 두 자리에는
앞자리 어머니의 작은 아이들이 앉아있었다.
어릴 적 나의 엄마는 명절에 겨우 하룻밤 정도를 가족들을 보러 친정에 갈 수 있었다.
그럴 때 엄마와 나 동생 셋이 함께 버스를 타고 가곤 했다.
우리가 아주 어릴 적에는 엄마가 혼자 앉았었고 나는 동생과 앉았었다.
이들을 보고 있으니 그 기억이 떠올랐다. 마치 나의 어릴 적 같았다.
아이들은 한참 세상 모든 게 신기해서인지
이것저것 엄마에게 물어보더니 시간이 흐르자 잠에 들었다.
가려진 좌석 너머로 어머니의 눈빛이 보였다.
어머니는 좌석 너머의 아이들을 바라보시더니 손을 뻗어 통로 쪽에 있는 딸아이의 옷을
여며주었다. 그리고 팔을 한번 쓸어내렸다.
어릴 적 나의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나의 엄마도 나를 한번 지나가셨겠지.
나이가 어느 정도 들고 나서는 버스를 탈 때 엄마와 동생이 앉았고, 나는 혼자 앉았다.
그 시절의 나는 참 걱정 많은 딸이었다.
엄마와 동생이 아플 거 내가 아프고 싶었고,
할 거 내가 다 알아서 하겠다며 뭐가 그렇게 당찼는지 모르겠다.
조금씩 크면서 나에게 처해진 냉정한 현실,
그리고 지쳐가면서도 두 아이를 키워내기 위해 악에 받쳐 살아가던 엄마에게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
그게 그렇게 모진 말들을 하게 했다.
" 나 알아서 할 수 있어, 걱정 마 "라는 말
부모는 이런 말을 들을 때 가슴이 미어진다고 한다
딸의 의도가 그녀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다는 걸 알지만, 그렇기에 마음에 흠집이 나버린다고 하더라.
당시 나는 수없이 그 말을 하고 있었다.
내 몸의 일부라고 생각했던 자식이
내 손을 계속 스쳐갔던 아이가
이제 혼자 해나가겠다고 하는 것은 내가 그 입장이 되었다고 생각해도 너무 아파 두 눈을 질끈
감아버리고 싶겠지.
그렇게 당찼으면서도 집에서 큰 소리가 넘나들 때엔 엄마 등 뒤에 숨었다.
자는 척했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것처럼
무슨 일이 있을까 잠에 들지는 못했지만
그 앞에 있지는 못 했다.
-
그 시절이 생각났다.
더 이상 이곳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등 뒤에 숨을 일은 없다.
숨을 수도 없다.
이제는 나도 내가 생각하는 시간의 흐름에 비해 빠르게 커버렸다.
숨을 수 없기에
그 시절의 엄마처럼 참다 참다 쏟아붓기도 해왔다.
주저앉다가도 그래도 놓지 않고
나로서 살아가기 위해 부딪혀본다.
청승맞다고 생각할 정도로 매일을 눈물과 함께하며 살고 있다.
버스 안에서 그 어머니와 아이들을 보면서 참 서글펐다.
그 아이의 팔을 쓸어내리는 어머니의 손을 바라보며 가만히 눈을 감고
나에게도 나의 엄마가 스쳐갔을 거라고 믿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