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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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였나.
지금 일을 시작했을 때니 한 3년 전쯤이었다.
이 책의 저자처럼 내가 서른 살에 죽겠다고 결심한 것이.
매일매일 울던 그때,
스스로에 대한 기대도, 사랑도, 무엇도 없던 때.
뭐,그때가 24살이니 그래도 스스로에게 긴 시간을 주었다.
22살에 엄마를 보내면서 유일하게 의지할 기둥이 사라졌고
내 세상은 가차 없이 무너졌다.
엄마의 투병생활을 간병하며 지켜보면서, 매일 매 순간이 희망이었고 절망이었다.
엄마를 잘 보내드리고 나니 깜깜했다.
남겨진 건 18살의 동생과 나.
사실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선 크게 두렵지도 무섭지도 않다.
몇 번의 장례식장과 적지 않게 들려오는 주위의 사고 소식들은
죽음에 대한 생각을 점점 무뎌지게 만들었다.
생이 있으면 사가 뒤따르는 것은 당연했다.
살아가다 보면 결국 죽는 것으로 끝맺는 것이 사람의 삶이고,
어떻게 살아가는지가 개인에게 주어진 기회인 것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어떻게 쓰는지는 개인의 몫인 거고.
가진 건 숨뿐인데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거지?
다행인건 가진 것이 없었기에 잃을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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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번 그만할 거라고 난리를 피웠지만, 정작 정말 끝낼 용기는 없었다.
늘 누군가에게 신호를 보냈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떴다.
그 반복을 하다 문득
그 무엇도 할 용기가 없어서,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것만이 전부인 내가 한심했다.
하지만 달라지고 싶다고 바로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곰곰이 생각하다,
"그래, 삶의 데드라인을 정하자 ."
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게 서른이었다.
그날까지는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정하고 나니 이 책의 저자처럼 나 역시
거짓말처럼 용기가 생겼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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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울을 내 디폴트 값으로 인정했다.
어릴 적에는 울다가 혼자 버거워서 내 상황을 비공개로 글을 써서 올려 얼굴도 모르는 이들의 댓글을 읽다 잠들곤 했지만,
데드라인을 정한 이후로는 공개적으로 그때그때의 감정들을 쓰고 여러 곳에 지속적으로 올리면서
나는 우울을 인정했고, 결핍과 학대, 왕따와 같은 내게는 너무 상처가 된 경험들을 하나씩 열어 뱉어냈다.
' 아픈 기억들은 옷장 속에 숨겨놓을 게 아니라
세상에 내놓고 비바람 맞게 하는 것이 좋을 거야.
그토록 선명한 것들도 언젠가는 지워질 테니까 '
황경신 - ' 생각이 나서 '의 문구처럼.
이제 내게 그것들은 더 이상 부끄러운 일도 아니었고, 예전만큼 나를 아프게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벗어날 수는 없었다.
평소 그 생각들 없이 살아갈 수는 있었지만, 한꺼번에 몰려와 내려갈 때는 끝이 없었다.
모든 게 끔찍해지는 순간이 오래 찾아오곤 했다.
그래도 그저 일부라는 것을 인정할 수 있었다.
여전히'나만 그런 삶을 살았던 게 아니야, 그러니 이렇게까지 아파할 필요 없어. 너무 약하잖아.
자기 연민은 사치야 '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와서 스스로를 위로하지는 못할망정 종종 괴롭히곤 하지만.
두번째로는 어릴 적부터 좋아했던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평가받는 게 무서워서 혼자만 그렸고 혼자만 보고 했던 그림을.
그다음으로는 내 감정에 솔직해지기로 했다.
싫다고 하면 멀어질까 봐 무조건 긍정이었던 내가,
너무 버거울 때는 나를 위한 시간을 갖는 데 집중하기 시작했다.
혼자가 무서워 힘들어도 끌고 가던 인연을 놓았다.
사실 몇 번의 위기에서 인간관계가 많이 정리되어가던 시점이었다.
내가 버거워 손을 놓는 일이 몇 번 있고 나니
그 후 상대가 비슷하게 날 놓으려 할 때에도 받아들이는 게 예전보다 쉬웠다.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인간관계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른이라는 데드라인을 정하면서
다양한 경험 속에서 내가 삶의 이유를 다시 찾을 수 있을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그렇지 못했을 경우에
슬퍼하는 사람 역시 적었으면 좋겠다는 욕심 때문이다.
여전히 내게 나는 너무 작고, 보잘것없는 존재기 때문에,
무엇보다 여전히 사람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를 믿지 못하기 때문에
멈춰보기로 했다.
어쨌든 이렇게 서른이라는 데드라인을 정해서 살아온 지 벌써 곧 4년에 접어든다.
지금까지의 후기는 딱 5글자.
'나쁘지 않다'
무슨 일을 하든 망설여질 때,
'괜찮아, 모두 끝내면 되니까 .'하는 극단적인 사고를 갖게 돼버렸지만
끝이 없는 것보다 끝이 있다고 생각하니까 할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미래를 생각하지 않기에 할 수 있는 것들.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해 해내야 하는 것들.
무기력하게 멈춰있다가도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더듬어가며
매일 오늘을 생각하고는 결국 일어선다.
데드라인은 그렇게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주었다.
사람을 만났을 때
당연하게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들 앞에서
나 역시 당연하게 입을 다물어버리지만,
그 또한 나쁘지 않다.
이 데드라인이 없었다면, 나는 조금 더 빨리 무너졌을 거라고 생각하기에
죽겠다고 정해둔 날이, 어떻게든 그날까지 살 수 있도록 내게 숨을 불어넣어 준다.
서른 살의 내가 존재할지, 아니면 스스로 삶을 완성시킬지
아직은 후자에 가깝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더욱 치열하게 살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책의 저자가 서른까지 달려가면서 치열하게 살아갔던 것처럼.
내게는 그녀가 정한 시간보다 1년 -2년이라는 시간이 더 있으니 얼마든지 나도 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지금 그녀가 겪은 변화처럼 나도 앞으로를 살고,
어떤 미래든 내게도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
더 이상 미래는 사치가 아닌 게 되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을 가진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키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