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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루미악토버 Mar 16. 2020

어느 날의 기록 200316

200316


1. 냉장고 파먹기를 진행한지 벌써 보름이 넘어간다. 비움을 시작한 건 1일부터니까 벌써 2주를 넘었고.

비움을 시작하게 된 3/1일.
우리는 남매 회의 끝에 3년 내로 거주지역을 먼 곳으로 옮기기로 결정했다.
맥시멀리스트의 삶을 살고 있는 나는 이사를 거듭했음에도 짐들이 꽤나 많은 편인데,
그만큼 쓰지 않는 물건이 많았다.
근래 들어서 가끔은 그 물건들 탓에 숨 막히기도 했고, 물건들에게 잡아먹히는 거 아냐? 하는 위기감이 느껴졌다.
-
어느 날 '아, 왜 이렇게 물건들이 끝도 없이 쌓여버린 거지?' 짜증이 났다.
답답한 마음에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했다.

21살 기숙사를 끝으로 독립 7년 차인 나는 혼자 조금씩 마련해낸 물건들이 너무나 대견해 보여서 놓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직접적인 도움 없이 이뤄낸 것들이 훈장 같아서 버리지 못하고 매달렸는지도 모른다.

반지하와 쪽방, 방 2개짜리 집에서 4명의 가족이 몇 개월을 살다 쫓겨나며 거듭 이사를 다니던 어릴 적엔 상상할 수 없는 지금의 공간.

어떤 고성과 폭력이 쉽게 허가되지 않는 온전히 안전한 내 공간이라는 것에 취해서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들을 거듭 채워 넣었는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어찌 되었든 아름다운 이유로 모인 물건들은 아니었다.
그 사실과 마주할 때 더욱더 두려워졌다. 그 물건들이 어떤 덩어리들인 것만 같아서.
두렵더라도 나는 나를 지키기 위해서 어떻게든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몇 년 전 정신적으로 힘들어 몇 번을 무너지는 스스로를 보며,
나는 내가 스스로 끈을 놓지 않도록, 서른이라는 한계선을 두고 스스로에게 기회를 주기로 했다.

그때 정했던 것은 ' 당장 죽어도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자 ' ' 포기하고 싶어도 서른까지는 기회를 주고 놓지는 말자 '  아직 스스로 부여한 시간이 꽤나 남았고, 나는 그 시간들을 위해 지금을 이겨낼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답은 단순했다.
비우면 되는 일이었다.
물건들에게 죽을 것 같으면 그 물건들을 비우고 나누면 되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결심을 했던 날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다.
스스로에게 강제성을 부여하기 위해 기록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비움을 시작한 지 2주가 넘은 지금.
서른까지 포기하지 않도록 다짐했던 과거의 나를 아낌없이 안아주고 싶을 정도로,
오래 앓고 있던 아픔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다.

비움 관련 영상을 보면
사람들이 물건을 비우면 마음을 비울 수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의아했지만, 지금은 조금 알 것도 같다.

오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오랜 시간 동안 기록하며 습관이 될 수 있도록 욕심내지 않을 예정이다.
그 시간 후엔, 부디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슬픔만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2. 공통 관심사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너무 중요하다.

3. 엄마의 6번째 기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어제 적은 글.
-
전화를 걸어도 받을 수 없고
보고 싶어도 볼 수 없고 
얼굴은 희미해져가서 사진을 보고 겨우겨우 다시 머릿속에 새겨 넣어.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라고 후회 없는 삶을 살기로 결심했는데 
못된 생각을 너무 오랫동안 해오고 있는 나를 보면서 수없이 반성을 했었어.
이마저도 모두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하면서.

그래도 요즘은 괜찮아.
몇 년 동안은 매일 울었는데 요즘은 일주일에 두 번 남짓 울어.
알지? 그렇다고 생각하지않는 건 아니라는 거 .

어릴 때부터 우리 너무 힘들어서 매일 울 때
사람에게 오는 슬럼프는 세 번인데 우리 인생은 지금이 아래인 거라고, 점점 올라갈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그 약속은 지킬 수 없게 되어버렸네.

엄마 좋아하던 여행 나 낳고 다니지 못해서 내가 열심히 다니고 있어.
왜 좋아했는지 너무 잘 알 것 같아서 가끔은 많이 아파. "엄마가 딸이 이렇게 살아가길 바라는 걸까요? "
상담하면서 많이 들었던 말이야.

엄마는 내가 울기를, 내가 갇히지 않기를, 나의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고 있을 거란 걸 
누구보다 잘 알기에 어떻게든 버텨내고 있어.

사는 게 너무 버거워서, 원망을 참 많이 했어.
운이 좋았지.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죽고싶다고 울면 달려와주던 친구가 있었고,
 힘이 되어줄 책과 음악이 있었고, 무너지지 않을 내가 있어서.

벌써 엄마를 보내고 맞는 6번째 기일이야.

엄마 딸, 후회 없이 오늘도 살아볼게.

곧 기일이네, 만나러 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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