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 아픔
아픔이라는 것은 어디서 오는 건가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던 요즘이다. 그것도 그럴 것이 스스로가 잔병을 달고 살고 있다. 흔히 말하는 잔병치레를 많이 하는 스타일로 어릴 적부터 항생제 알약을 많이 먹었고 그와 함께 다른 약들도 늘 함께였다. 그러다 보니 십 대 때엔 약을 너무 싫어했고 아파도 자가 치유될 거라고 말하며 버티는 편이었다. 조금씩 나이가 들어가면서 약을 필요로 할 때가 많아서 요즘은 비상약을 늘 구비해둔다. 아직 병원을 끔찍하게 싫어하는 터라 잘 가진 않지만 유행하는 독감에 덜컥 걸려버리거나 할 때에 피부에 두드러기가 온몸에 번질 때에는 싫어하는 마음을 한 수 접고 아침 일찍 누구보다 빨리 병원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내게는 큰 아픔이 있다. 엄마가 백혈병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 몸 상태가 너무 좋지 않으셔서 갔던 병원에서는 그저 감기라고 했었다. 그러다 그 후에 아무래도 이상해서 다른 병원에 갔더니 얼굴의 색을 보고는 큰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했고 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후 엄마의 병명을 알 수 있었다. 병원 가는 것도 돈이라고 가지 않던 엄마가 그래도 당신의 몸을 위해 한번 더 가준 덕분에 자신의 병을 알 수 있었다. 지독하게 고통스럽다고 하는 항암의 시간들이었지만 그래도 이겨내기 위해 시도할 순 있었다. 병간호했었던 100여 일이 넘는 시간 동안 희망에 가득 찬 내 다이어리는 그 일기 속의 내가 너무 안쓰러워서 찢어버리고 없지만 말이다. 수치가 떨어지고 음식을 먹지 못하고 혈압이 떨어지는 그 순간의 날에 담당교수가 일이 있어 다른 교수님으로 변경되었었다. 모두가 전문가라는 사실은 알지만 그래도 계속 꾸준히 봐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날의 결과는 달랐지 않을까?
그 날은 그렇게 밤새 동생과 엄마의 손을 번갈아 잡으며 꼬박 밤을 보냈다. 엄마의 침대 주위에는 병원 기구들이 점점 가득해져 갔고 , 마음은 서서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서히 준비를 하는 나를 보며 몇 번을 타박했다. 왜 벌써 포기하느냐고 말이다. 100여 일이 넘는 병간호 시간 동안 불규칙적으로 잠을 자고 하루를 보내고 엄마 혼자 몸을 움직이면 안 됬기에 언제나 예민한 상태였다. 발작을 일으키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목격한 날 이후로는 3년이 지난 지금도 눈을 감으면 한 번씩 떠올라서 눈물이 차오른다. 결국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라는 말을 들었다. 펑펑 울며 주위 가족들에게 연락을 돌렸다. 배에 복수가 차오르는 순간부터는 마음의 준비를 했던 것 같다. 먼저 병으로 떠나신 할머니와 큰아버지가 그러셨으니까.
아침이 되던 날 엄마를 보냈다. 간호실습을 한창 하던 친구가 그 병동에 실습을 갔었는데 , 그때 당시 수간호사님에게 날 물었을 때 나를 떠올리면 정말 많이 울었다고 친구에게 말했다고 한다. 그 정도로 보내는 날 펑펑 울었다. 생전에 잘 하지 못했던 날들에 대한 갚음을 병간호로 조금이나마 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보아도 , 결국 기억나는 건 후회다. 곧 아픔이다. 이 아픔들은 흉터가 되어 머물러있다. 시간이 지나 딱지를 만들어내지만 어느 정도 굳었다 싶을 때 살짝 딱지를 뜯어내면 다시 피가 흘러나오듯 그렇게 다시 머물러있다.
조금은 단단해진 사람이 되었지만, 아직도 병원이라는 말 자체는 그저 두렵다. 모든 걸 다 떨쳐내는 일은 어렵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걸 안다.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해 한 구석에 묻어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