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1cm 가까워진 우리

손등, 손목, 손

by 박지선

트럭은 생각보다 좁았다. 두 남자 사이에 낀 하나는 지렁이처럼 몸을 꿈틀거렸다.

은근슬쩍 움직였을 뿐인데— 좁은 공간에선 작은 동작조차 크게 울렸다.

라디오에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하나의 아빠는 팔을 창틀에 걸치고, 고개를 느릿하게 까딱이며 박자에 맞지 않는 리듬을 탔다.

뚝딱거리긴 했지만, 이상하게 잘 어울렸다. 그 덕분일까. 호수는 이 상황이 이상하게 편안하게 느껴졌다.

약간 습기를 머금은 숲의 공기, 그 공기를 마신 듯 흐물거리는 라디오 소리.

그리고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하나의 작은 뒤척임.

그 모든 것들이 서로 다른 타이밍으로 움직이면서도 묘하게 하나의 리듬을 만들고 있었다.



트럭이 주차장에 진입하자, 하나는 어서 내리고 싶은 마음에 호수 쪽으로 0.5센티미터만큼 가까워졌다.

손등이 닿았다. 호수는 순간 놀랐지만,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아마 하나는 벗어나고 싶은 마음에 닿은 줄도 몰랐을 것이다.


“아빠는 공업사에 좀 들러야 해서, 사람도 많고 하니까 분담하자.”

“이러려고 끌고 온 거잖아요…”


하나는 트럭에서 내려 기지개를 쭉 켜며 투덜거렸다. 호수도 따라 눌린 허리를 슬쩍 펴봤다.


“그러니까 우리는 환상의 팀이잖아. 너만 한 조수가 없어. 아빠는.”

“아, 진짜. 마음대로 조수라고 부르지 마요.”

“너나 나나 엄마 조수지. 그럼, 조수 2번. 너는 시장 가서 장 보고, 여기로 돌아오기!”

“진짜 짜증 나…”


하나는 아빠가 건넨 쪽지를 홱 낚아채며 샐쭉한 얼굴로 목록을 훑어봤다.

그 사이, 호수는 혹시라도 자기도 뭔가 할 수 있기를 내심 바랐다.

그들 사이에 끼고 싶었다. 하나의 아빠는 그 마음을 놓치지 않았다.


“여기 짐꾼 하나 옆에 붙여줬으니까, 그만 투덜대고— 시장으로 출발!”


그 말과 함께 호수의 어깨를 툭, 가볍게 쳐주곤 아빠는 혼자 공업사 쪽으로 걸어갔다.

둘은 멀뚱히 그 뒷모습을 보다가— 하나의 한숨을 신호 삼아 같은 쪽으로 발을 뗐다.


시장 안은 과일 장사, 생선 장사, 고무신, 장화 같은 농업용품을 파는 사람들.

그리고 원래도 저렴한 물건을 조금이라도 더 싸게 사기 위해 목청을 높이는 손님들로 가득했다.

수많은 몸과 소리가 뒤엉켜 하나의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호수는 하나에게서 두 걸음 정도 떨어져 걸었다. 정신없는 사람들 틈에서 하나의 동그란 뒤통수를 내비게이션 삼아 열심히 따라가고 있는데— 갑자기, 하나가 멈춰 서더니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호수도 따라 고개를 돌려봤다. 뭘 찾는지는 모르겠지만, 꽤 중요한 것 같았다.


그러더니— 하나가 휙 돌아서 호수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자기 쪽으로 확 끌어당기며 말했다.


“없어진 줄 알았잖아. 여기서 서로 놓치면 진짜 끝이야. 보면 모르겠어? 옆에서 걸어.”

“아, 응. 미안.”

“미안할 건 아니고. 여기서 다음 골목에 정육점 있고, 다시 나와서 이 길 끝으로 가면 은행이니까…”


하나는 ‘꼭 사 와야 할 것’이라 적힌 종이와 거리를 번갈아 보며 짧고 정확하게 가야 할 동선을 설명했다.

호수는 그 말을 따라가려 애썼지만, 계속해서 자신의 손목을 감싸고 있는 온기에 마음이 자꾸만 벗어났다.

따뜻한 감각에, 그저 가야 할 길을 또 잃고 말았다.


하나 말대로, 다음 골목을 돌자마자 정육점이 나타났다.

큰길과는 달리 이 골목은 어쩐지 시간이 다르게 흐르는 것 같았다.

조금 느리고, 조금 낡고, 조금 조용하게.


“아까 오는 길에도 정육점 있었는데.”

“엄마는 여기만 와. 여기 아저씨가 울산바위처럼 생겨선 손이 크다던데.”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들어선 가게 안엔

정말, 정육점을 꽉 채운 듯한 체구의 아저씨가 도마 위에 칼을 ‘턱, 턱’ 내려치고 있었다.

고기 결이 따라 벌어질 때마다, 공기가 진해졌다.


아저씨는 슬쩍 하나와 호수를 흘끗 보고는, 다시 고기 손질에 집중했다.

하나는 그 모습에 놀란 듯, 목울대가 한번 위아래로 움직였다.

그걸 본 호수는 자연스레 그녀 손에 든 쪽지를 빼 들었다. 종이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삼겹살 2kg, 수육용.’


호수는 조심스레 입을 뗐다.


“삼겹살…2kg, 수육용 주세요.”


아저씨는 말없이 안쪽 냉장고로 들어가더니, 큰 판자처럼 묵직한 삼겹살 덩어리를 한 손으로 들고 와

도마 위에 툭— 내려놓고 서걱서걱 칼질을 시작했다. 잘 모르는 아이들이 봐도 2kg은 훌쩍 넘는 양이었다.

아저씨는 고기를 몇 덩이로 나눠 비닐봉지에 담고, 무게도 재지 않고 말했다.


“이만 원.”


하나는 주머니에서 5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건넸고, 두 사람은 봉투를 들고 나왔다.

뒤에선 잠시 멈췄던 칼 소리가 들렸다.


무게가 제법 나가는 듯, 하나는 봉투를 한 손에서 다른 손으로 옮겨 들며 투덜댔다.


“뭔지 몰라도 이거…2kg 넘는 거 같아. 옆집 할머니네 강아지랑 무게 비슷할걸?”


참고로, 하나네 ‘옆집’—이라지만 걸어서 20분쯤 걸리는 감나무집 할머니는 얼마 전 새끼 누렁이를 들였다.

그 강아지는 무럭무럭 자라 지금은 호수 팔뚝만 해졌다.


“이리 줘.”

“에? 괜찮은데?”

“아니야. 아저씨가 나 짐꾼이라며. 내가 네 조수 할게.”

“어? 아, 아… 그, 그건…”


호수의 ‘조수 발언’에 하나는 잠깐 당황했다.

뭐라고 대꾸할 말을 머릿속에서 찾는 사이, 호수는 하나 손에 들린 봉투를 자연스럽게 받아 들고 골목 입구로 걸어갔다. 후다닥— 뒤에서 달려오는 소리에 호수는 웃음이 새어 나왔다.

보지 않아도 그 모습이 꼭, 강아지 같다.


“혼자 가지 말랬지. 길도 모르면서. 따라오슈.”


은행 앞. 하나는 엄마가 시킨 대로 ATM 앞에 섰고, 호수는 유리문 너머 거리 풍경을 바라봤다.

손에 옥수수 같은 주전부리를 들고 가는 아이들. 큰 소리로 전화통화를 하며 걸어가는 어른들.

그 모든 모습이 초록도 파랑도 아닌 색유리 너머로 소리 없이 흘러갔다.

물결 같았다. 가까이 와닿는 듯하다가, 결국은 다시 돌아간다.


그때— 토독. 유리창에 물방울이 떨어졌다.


“비다.”

“뭐라고?”


마침 다가오던 하나가 그 말을 듣자 화들짝 놀라 밖으로 나갔다.


“헐, 비다. 헐… 진짜 비네.”

“비 좋아해?”

“아니?”

“아…”


호수는 괜히 민망해졌다. 비를 맞으며 뛰어나간 걸 보고, 좋아하나 보다 했다.

보통은… 안에서 창밖을 보면 알 수 있지 않나. 그런데 하나는, 늘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다.


“우산 없는데… 어떡하지.”

“아저씨한테 전화해 볼까.”

“아, 아… 나 핸드폰 두고 왔어.”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하나는 문을 닫고 다시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털썩 앉았다.

호수도 그 옆에 조용히 앉아 둘은 나란히 창밖을 바라봤다.


갑작스러운 소나기에 거리의 사람들은 어디론가 쏙— 숨어들었다. 일사불란한 그 모습이 왠지 웃겼다.

개미굴에 들어가는 개미 같달까.


그리고, 사람들이 사라진 사이— 방금 전까지 가려져 보이지 않던 간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이화다방’


어, 전화는 저기 가서 하면 되겠다. 호수는 조심스레 하나를 바라보았다.

빗소리에 눈꺼풀이 자꾸 내려앉았다. 하지만 마치 무언가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부릅뜬 눈으로 창밖을 매섭게 노려보는 그 표정에 호수는 괜히 말 걸기가 어려워 슬며시 말을 꺼냈다.


“저기... 건너편 다방에 가서… 아저씨한테 전화해보면—”

“와, 천재!”


하나는 호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벌떡 일어나 문을 박차고 뛰어나갔다.

호수는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조용히 따라 뛰었다.

빗물이 옷에 스미듯—입가에 작은 웃음이 번졌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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