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라클 모닝 부작용을 겪고 있어요
퇴사하여 무직백수가 된 후로 초반 2주를 제외하고는 오전 시간에 잠에서 깨어 본 적이 없다.
불안해서 혹은 마음이 풀어져서 늦잠을 자는 거라 생각할 수 있지만, 단순 늦잠이라기엔 취침 시간이 아예 뒤로 미뤄졌다. 새벽 내내 말똥 한 눈을 빛내다가 아침 해가 창문을 두드릴 때가 되어야 비로소 졸음이 쏟아졌다. 그리고 매일 아침 6시쯤 잠에 들면 오후 2시에 눈에 번쩍 떠졌다. 현대인들에게 그 어렵다는 8시간 통잠을 아침해가 떠오르면서 이루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직장인 시절에도 밤에 잠드는 게 참 힘들었다. 종종 새벽을 꼴딱 세우고 새벽 5시쯤 쪽잠을 자고 일어났다. 당연히 그 여파로 피곤하고 늦잠 자기 일쑤였다. 생체 리듬을 아침형 인간에 맞추려고 아예 밤을 지새우고 출근한 적도 있지만 어쩐지 아무리 피곤해도 밤에 잠들기 어려웠다. 방 안의 모든 불을 차단하고 핸드폰을 감금(?)해서 멀리 두어도 정신이 쉽게 잠들지 못했다. 그러다가 어떤 날 모처럼 일찍 잠에 들어서 아침 시간에 일어나도 왠지 몸은 자기 활동 시간이 아니라는 건지, 에너지 발산을 최소화했고 이에 따라 유독 차분한 저속 모드였다고 스스로도 느꼈다.
이렇게 대충 잠과 타협하면서 살아도 별 문제없을 것 같지만, 웃기게도 나는 아침형 인간을 동경하면서 아침형 인간이 되고 싶은 사람이었다. 수많은 자기 계발서를 읽은 탓인지도 모르겠는데 세상에서 성공을 거둔 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한 성격이란다. '나도 성공하고 싶은데 그러면 일단 일찍 일어나야 하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또 다른 생각은 '세상이 깨어나 움직이는 시간에 나도 동참하고 싶다.'는 거였다.
앞서 말했듯이 8시간을 자고 오후 2시에 일어나도 어쨌든 통잠을 잔 거니까 상쾌(?)하긴 하다. 피로는 없다. 그런데 뭐랄까, 그 시간에 일과를 시작하는 건 내가 '뭐 해~?'라며 똑똑 두드리고 관심을 보여도 다들 너무 바빠서 '응~ 지금 뭐 하고 있어.'라고 하던 일에서 눈을 계속 고정한 채 대답을 받는 기분이다.
언제부터 잠과의 지겨운 스파링이 시작되었나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미라클 모닝을 했던 게 떠오른다. 그 '기적의 아침'을 시도한 건 여러 번이었는데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아니 딱 한 번 잠에 들었다가 5시에 일어난 적이 있었는데 기상 직후의 그 시간은 너무 춥고 조용했다. (...?) '아침 기적'은 직장을 다니는 때에도 계속한 시도였다. 현재에 안주하지 말아야겠다는, 좋게 보면 자기 성장 욕구이지만 다르게 보면 불안감으로 아침을 계속 괴롭혔다. 잠에 들기 전 '내일 아침 00시에 일어나서 뭐뭐 해야지.'라는 생각으로 알람 수십 개를 맞췄던 게 아침부터 무거운 부담을 지게 한 거였나 보다. 이렇게 잠을 과하게 통제하려고 해서 지금 같은 수면 장애가 생긴 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침형 인간, 저녁형 인간 이런 말이 있듯이 그냥 아침에 일어나기 쉬운 사람이 있다. (아는 동생은 소위 아침형 인간인데, 아침이 되면 눈이 번쩍 떠진단다. 그냥 그렇게 된단다.) 새벽에 일어나는 게 아무런 부담이 없는 사람, 그냥 쉽게 되는 사람 말이다. 근데 적어도 나는 그게 쉽지 않았다.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할지 계획하지 않으면 멍하게 있다가 다시 잠들었고 계획을 이것저것 세우다 보니 아침 자체가 부담이 됐다. 수년간 시도해 봤지만 이제는 안다. 내가 지쳐있다고.
나는 그냥 평범하게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사람이었는데 현실에 안주하지 않아야 한다는 불안감으로 시작한 미라클 모닝은 나에게 아침을 매우 부담스럽고 무거운, 해야 할 일이 많은 시간으로 바꿔놓았다. 게다가 아무래도 습관까지 편을 들어 2대 1로 대치하고 있어 더 어려운 듯하다. 난 싸우기 싫다. 우리 원만하게 합의하면 안 될까? 수년간 괴롭혀서 미안해. 화해하자.
아무튼 유럽인 생체 리듬에서 다시 대한민국 시간으로 생체 리듬을 회복하는 그때까지, 꾸준히 화해를 시도하겠다. 너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자고 싶을 때 자고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 백순데 뭐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