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힘든 사람

by 소은

왜 그런 날 있지 않은가요?

괜히 기분이 가라앉고 에너지가 아무리 충전해도 방전되는 날이요.

저는 비 오는 날이 그렇습니다.


창 밖이 어두컴컴하니 비가 오면 확신이 든다. ‘아, 오늘은 못 나가겠구나. 집에 있는 날이네.’


백수 생활 약 40여 일째, 오랜만에 비 오는 하늘을 본 것 같다. 나는 비 오는 날이면 에너지가 방전된다. 아무리 충전하려 꽂아놔도 잘 되지 않는다. 그럼 뭘 하느냐, 그냥 집에 있는다. 오늘 비축하는 에너지는 이제 오늘이 아니라 내일을 위한 거다. 오늘은 아무래도 안된다. 없는 날이나 마찬가지다. 전에는 마냥 집에 틀어박혀 누워서 무기력한 인간의 본분을 다했지만 요샌 조금 성장(?)했는지 나를 위해 맛있는 것도 만들어 먹고 청소도 하고 뽈뽈 거리며 이것저것 하는 수준까지는 이르렀다.


정확히는 떨어지는 빗방울보다는 하늘색에 영향을 받는 것 같다. 비가 오다가도 하늘이 맑게 개면 동시에 몸에 기운이 찬다. 그러나 하루종일 어두컴컴한 먹색인 날은 '오늘은 죽었다'하고 집에만 있는다.


비 오는 날은 일단 춥다. 그러면 집에 있어야 가장 안전하다. 그리고 빗물이 옷과 가방, 신발 등에 튄다. 그게 얼마나 위험한데. 물론 출근해야 한다거나, 절대 미룰 수 없는 약속이 있는 경우 모든 걸 감안하고 집 밖으로 나선다. 그럴 땐 마음을 많이 내려놓는다. 좀 젖어도, 좀 추워도 그러려니 한다. 갔다 오면 꼭 따뜻하게 보상해줘야 한다.


비가 오면 왠지 SNS도 잘 안 하게 된다. 물론 필요한 연락은 꼭 하지만 비 온다고 와이파이가 끊어지는 것도 아닌데 괜히 가라앉아서 세상과의 가장 가느다란 연결만 남겨 놓는다. (지인분들 죄송합니다) 이렇게 그냥 먹고 마시고 누워 쉬면서 내일을 준비한다.


살면서 비 오는 날이 싫다고 어찌 피할 수 있으랴, 아무리 내가 개인적으로 불편하고 무드가 좀 떨어진다고 해도 빗물을 마음대로 막을 수 없듯이 살면서 갑자기 마주하는 문제들도 비 오는 날과 같다. 호기로웠던(?) 시절에는 당면한 문제를 어떻게든 내 힘으로 풀거나 극복하거나 돌파하려고 했다. 물론 그간 해왔던 노력들이 효과가 없지는 않았지만 잠깐의 효능감이 지나면 근본 문제는 다른 옷을 입고 다시 생기곤 했다. 그랬던 시절보다는 조금 배워서 호승심이 떨어진 지금은 문제를 그냥 둔다. 어차피 통제할 수 없는 게 대부분이니까. 이렇게 문제와 싸우지 않으니 다칠 일도 적었고 무엇보다 문제를 받아들인 후부터는 문제가 더 이상 문제가 아니게 됐다. 항상 투쟁하는 듯한 마음으로 삶이 갖다 주는 문제를 풀면서 헉헉 대며 살았는데 이제는 조금 편해진 것 같다.


하늘도 때로는 맑을 때가 있고 어쩌다 보면 비도 홀딱 맞는 날이 있다. 하늘이 그런 건 내 잘못이 아니다. 피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비 오는 날 밖에 나가야 할 때도 있다. 그저 주어지는 하늘에 저항하지 않고 받아들이며 살고자 한다. 그래도 왜 내 맘대로 안되냐고 성질을 부릴 때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단디 챙겨 입고 맞이하리라. 물론 최대한 안락하고 편안한 따뜻한 집에 있으려고 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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