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은 두려운 거예요
혹시 변화하려고 많은 시간을 들이고 여러 가지 방법도 써봤지만 왠지 제자리인 것 같고 변하지 않은 나를 보며 절망한 적이 있다면, 그건 본인의 잘못이 아닙니다.
나는 변화를 성장과 동일시했다. 그래서 항상 현재 모습보다 더 나아진 내가 되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집착이었구나 싶을 만큼이었다. 무엇이든 새로운 게 있으면 배우고 실행에 옮겨 실천하려고 했다. 자기 계발서를 수십 권 사서 읽은 것도 그러한 맥락이었다. 간단히 몇 가지 예를 들면 그냥 평범한 수면 패턴을 가졌던 내가 미라클모닝을 하겠다며 새벽에 일어나서 운동하고 일기 쓰고 명상하고 독서하려고 했고, 운동엔 흥미가 없지만 그저 보기 좋은 몸을 만들려고 무작정 PT를 끊었다(두 번이나!). 게다가 단단하고 건강한 멘털이 되고 싶어서 심리학과 관련한 강의, 개론서, 상담심리학을 섭렵했고(전공이 아니다), 나아가 마음과 믿음의 뿌리를 바꾸고 싶어서 종교도 가져보는 등 생소하고 어려울 것 같은 것들에도 도전했다.
그런데 어느 날 참 이상했다. 난 분명 숨이 턱까지 오를 만큼 힘들게 앞만 보며 달려왔는데, 계속 똑같은 자리였다. 오르려고 애를 썼는데 여전히 바닥에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한없는 절망감이 찾아왔다. '나는 결코 바뀔 수 없는 사람인가' 싶었고 '나는 이대로 살아야만 하는가'라는 패배감에 너무 괴로웠다.
당시엔 몰랐지만 지금은 알게 된 것으로, 나는 그저 변화가 아니라 그 당시 내 모습을 부정하고 싶었던 거였다. 그러면서 사실은 변화를 무척 두려워하고 있었다. 애벌레가 고치에서 나비로 변태(變態) 하기 위해 엄청난 고통을 수반하듯이, 모든 변화에는 고통이 따르는데 그 아픔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무서웠다. 나는 나도 모르는 새 고통을 슬쩍 피하기도 하고 최대한 아프지 않기 위해서 요령을 피웠다. 머리로는 변화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도 진짜 마음으로는 변화를 위한 대가를 치르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던 거다. 당연하게도 머리로만 하는 말과 행동은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변화는 앞으로 나아가는, 전진하고 성장하는 변화였는데 죽어도 고치에서 나가려고 하지 않았으니 나비가 될 수 없었다. 고집이 제자리를 빙빙 돌게 했던 것이다.
그러니 뻔하게도 시도하고 도전한 행동은 길게 하지 못했다. 작심삼일의 원인을 의지박약 한 탓이라고 자책만 했는데 그게 아니라 변하기 무서웠던 마음을 몰라줬던 거였다. 정확한 이유를 모른 채 헛다리 짚으며 자책만 하니 나중엔 ‘난 결국 안돼. 난 아무것도 안돼. 어차피 해봤자 안돼.’라는 패배감만 짙어지고 무기력해졌다. 더 이상 변화하고 싶지 않았다. 어차피 안되니까.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니, 두려움을 알고 나도 좀 충격이었다.
변화를 두려워한다는 건 어떻게 알았냐면 퇴사를 하고 나서 내 시간이 비로소 생겼을 때(진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는 하루가 생겼을 때) 카페에 앉아 천천히 생각을 글로 정리하면서 점차 알게 되었다. 며칠씩 쌓여가는 글을 보면서, 그리고 과거에 썼던 글을 보면서 비슷한 패턴을 발견했다. 글에는 썼던 당시의 감정이 전해지는데 내가 느꼈던 건 '변화하지 못할 두려움'이었다. 그리고 현재 상태가 계속될까 봐 또 무서워하고 있었다. (글이 이렇게나 좋다) 두려움에 의해 내 생각과 행동은 유연하지 않았고 따라서 삶도 유연하지 않았던 거다.
변화를 원하면서 정작 현실에는 발붙이고 살아가지 못했다. 내 인생은 틀렸고 이렇게 사는 건 틀렸다고 생각하면서 현실적인 척했지만 실은 두려워서 현실을 따라가지 못했다.
가장 최고 버전의 내 모습 또는 나에게 가장 맞는 최고 수준의 인생이 뭔가를 이루어서 어딘가에 도달하면 있을 거라고, 게임처럼 나 자신도 레벨업을 하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미 나에게 가장 적합한 현실은 눈앞에 있었고 지금 현재의 모습도 가장 최선이었다. 어떤 모습이든 그냥 이걸 받아들이기만 하면 됐다. 부정적인 것도 받아들이니 더 이상 부정적이기만 하지는 않았다. 행복하려고 긍정만 추구했는데 마음 한 편의 찝찝함이 뭐였는지 이제는 알겠다.
이걸 알고 인정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던지. 언제든 또 두려움에 휘청일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받아들이려고 한다. 휘어지는 것도 나라고, '아 좀 무섭고 아프구나'라고. 아픔을 없애고 싶어서 완벽하려고 했지만 그냥 있는 대로 두기로 했다. 그러자 안개가 걷혔다. 아픔에서 도망치기 위해 바쁘게 페달을 밟았던 에너지를 현재에 뿌리내리는 데에 썼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냥 내가 많이 변했네 싶었다. 바쁜 생각도 없었고 지난한 애씀도 없었지만 전보다 훨씬 적은 힘으로 그렇게 됐다.
아픈 걸 인정한다고 영원히 평생 아픈 게 아니다. 좀 무서워해도 괜찮다. 멈춰도 괜찮고. 내가 진짜 싫은 것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진정한 나'로 '진심을 다해' 사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