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구하기만 한 야매 비건
한때 채식을 했던 적이 있었다. 그냥 자발적으로 비건식을 해보고 싶었다.
특별한 이유가 있던 건 아니었고 그냥 살면서 옳다고 생각한 일을 하나쯤은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인간의 음식이 되기 위해서 하루 수만 마리의 동물이 죽는 데다가 그 동물들을 키우기 위해 지구 오존층이 파괴되는 등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영향력이 미미하겠지만 나라도 고기를 먹지 말아보자 싶었다. 그리고 솔직히 호기심도 컸다. '과연 고기를 먹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고기를 끊고 오로지 비건 채식을 하면 몸이 어떻게 될까? 어떤 삶이 펼쳐질까?' 하고 궁금하기도 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비건 레시피 북을 사서 만들어 먹고 비건 식당에 일부러 찾아가 보기도 했다. 배달음식을 시켜야 할 때는(쓰레기..ㅜ) 비건 음식점을 찾아서 가격이 좀 비싸도 시켜 먹었다. 하지만 융통성을 잃을 수는 없었다(내가 원한 건 사회적 왕따가 아니었으니까). 회식이 잡히거나 약속이 있을 때는 상대에 따라 비건식을 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하고 말하지 않고 상대에 맞춰 먹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사실상 내 비건 라이프는 야매였다.
그리고 야매 비건 라이프는 미적지근하게 최후를 맞았다. 당시엔 많은 회식과 개인적인 약속을 뿌리치기 어려웠고 그때마다 채식을 지키지 못했다. 무른 각오로 그냥 시작해 버린 비건 라이프는 쉽게 허물어졌다. 채식주의자의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 시작했는데 반만(?) 채식주의자였으니 애매하게 용기를 내지 못했던 것이 아쉽다.
야매였긴 해도 채식을 나름 찍먹 해본 사람으로서, 아직 한국에서 채식주의자의 삶은 인간관계나 편의의 부분에서 불편과 희생을 각오하고 해야 하는 것 같다. 가볍게 하면 나처럼 이도저도 아니게 된다. 그래서 여러 이유를 막론하고 채식하는 분들(꼭 비건이 아니라도)을 존경하게 되었다. 아픔에 공감해서든 아니든, 쉬운 희생이든 아니든 그것을 감내하고자 하는 용기와 노력과 그 인간성을 찬사 하고 싶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났고 지금은 정리된 인간관계와 환경으로 언제든 채식을 다시 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지만, 세상사 마음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다. 왜 비건의 꿈(?)을 접어야 했는지는 다음 2편에 작성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