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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행하는 여선생 Oct 08. 2023

이것은 촛대바위인가 나인가

삼모녀 여행기-사진 찍는 엄마

여행지에서의 시간과 일상의 시간은 엄연히 다르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습관적으로 흐르는 시간이 아닌, 책임이 부여된 시간이다. 사소하지만 특별한 선택들로 채워진, 조금 더 무겁고 조금 더 두터운 질감의 시간 분자들이 모여있는 순간이다.


의미를 찾는 존재인 사람들은, 필연적으로 그 시간들을 소유하고 싶어 한다. 글로, 사진으로, 영상으로, 혹은 그림으로..


나에게 행의 순간을 소유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언제나 쉽게 꺼내서 순간을 기록할 수 있는 핸드폰 카메라이다. 특별히 그림에 재능이 있지도 않고, 전문 작가처럼 글을 잘 쓰지도 못하니...  시간을 잡으려면 사진을 찍어야지.




삼모녀 여행에 있어서 사진 주로 두 딸내미 당이다. 찍을 것이 있으니 찍기도 하지만, 남겨야 한다는 강박으로 찍어대는 딸들과 다르게,


엄마의 셔터는 정직하다.


동받는 그 순간에만 카메라를 꺼낸다. 엄마가 핸드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면, 그 장소는 특별한 장소이고, 특별해진 장소가 된다.


엄청나게 대단한 무언가를 찍는 것은 아니다. 그저 골목, 꽃, 유적의 일부분, 때로는 나. 예측할 수 없는 순간이지만 극히 드문 엄마의 셔터음은 함께 하는 여행자인 두 딸들에게도 특별한 순간을 만든다.


몇백 장 사진을 찍어대어 특별함이 사라진 우리의 사진과 다르게, 정직한 엄마의 사진 몇 장은 초점이 맞지 않아도, 구도가 일반적이지 않더라도, 순간의 울림을 오래 간직하고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 여름궁전 커튼과 황금빛 벽지, 그림에 감동한 어머니.


정직한 엄마의 셔터가 필사적인 열심히 바뀌는 순간이 있으니, 바로 함께하는 여행자를 찍어야만 할 때이다.


삼모녀 여행에서 만족스러운 '나'의 사진을 건지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없는 비율도 있게 만들어주길 바라는 까다로운 딸의 사진을 엄마는 열심히 찍지만, 사진을 확인한 딸내미의 잔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촛대바위

이것은 촛대바위인가, 나인가.


광활한 미 서부 적색 땅 위에서, 엄마의 사진 속 나는 바위보다 중요한 인물이자, 사진의 중심이 되었다. 역시나, 사진을 받아본 의뢰인은 경악과 잔소리 공격을 시전 한다.

원래는 이런 곳이다.

언젠가, 카메라 구도와 위치까지 지정해 놓고 포즈를 잡으러 가는 순간, 목소리가 들렸다.


"사진 찍는 게 무서워"


엄마의 말이다. 사진을 찍어달라기에 찍어주면 매번 불평불만이니, 마음이 불안하시단다.


"푸핫, 하하하 하하.. 하... 내가 언제 그랬어."


웃으며 넘겼지만, 가 언제 그랬는지는 스스로가 더 잘 알고있다. 그동안 여행지에서 흡족한 사진을 내놓으라며 타박한 나의 모습들이 스멀스멀 부끄러움으로 떠오른다.



엄마의 사진_호치민 책방거리. 호치민 사진 중 가장 좋아하는 사진♡

"어?! 이 사진,  엄마가 찍은 거야?난 왜 못봤지?"


"응, 책방거리에서 멋있더라고, 잘 찍었지?"


책에 대한 이상한 로망과 작가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있는 나는, 호찌민 여행 중 책방거리를 1순위 방문 장소로 정했다. 책거리에서 마음에 드는 사진을 찍기 위해 분주하게 다녔다.


분주한 마음, 분주한 걸음인 여행자의 시선은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 조급한 딸과 다르게, 엄마의 시선은 책거리를 온전히 바라보았나 보다.




정직한 사진을 존중하겠다. 엄마만의 아방가르드한 사진을 포스트모더니즘 작품이라 인정하겠다고 다짐한다.


* 모녀여행 혹은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떠나는 동지들이여, 무의식으로 찍은, 다시는 안 보게 될 재미없는 사진이 아니라, 사진 속에 담긴 이야기까지 맛깔스러운 엄마의 사진을 믿어보시길,


내가 보지 못하는 곳까지 따뜻한 시선이 닿은 사진을, 보물처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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