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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비련씨 Sep 03. 2023

박경리 '토지'

독립운동가 2023.9.3

이사하고도 나는 원래 다니던 피트니스센터에 간다. 아침에 45-50분 걸려 도착하는데 그 사이 책을 듣는다. 윌라 오디오북이다. 윌라의 장점은 성우들이 라디오 극장처럼 읽어주는 것이다. '밀리의 서재'는 다양한 책이 많아서 좋았으나 자동 글 읽기 시스템이 작동하여 페이지와 각주 혹은 목차까지도 죽 읽어버린다. 보통은 운전하면서 듣기 때문에 조작이 불가하여 귀에 걸리는 소리를 계속 들어야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윌라 오디오북의 단점도 있다. 책이 다양하지 않고 베스트셀러 위주로 구성돼 있다.

요즘은 '토지'를 듣고 있다. 8권까지 들었다. 운전하면서 박경리 선생의 아름다운 은유에 퍼뜩 놀라면서 이 페이지 저장해야 하는데 하다가도 운전 중 조작이 불가하고 저장 기능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수요일 서초동에 미팅이 있어 운전하며 가다가 '토지'에서 애끓는 사랑을 했던 용이와 월선의 이별장면을 들었다. 운전하며 엉엉 울었다. 용이가 죽어가는 월선이를 바로 찾아가지 않고 논을 다 갈아두고 벌목하러 산일까지 마치고 죽기 바로 직전 당도한다. 둘은 일생을 두고 용서하고 사랑하고 기다리고 애달파하였다.  많은 그리움과 사랑이 응축된 평생 연인은 죽음이 둘을 갈라놓기 바로 직전, 그 시점에서 나누는 대화는 더없이 가슴 아프고 눈물이 펑펑 솟았다.

토지를 읽으면서 박경리 선생의 글에 감동을 받았고, 더 놀라운 것은 깊숙이 이해하고 있는 인간의 본성과 세상살이의 해안이다. 등장인물 하나하나의 성정과 그들의 일생을 통해 일어나는 일들이 망국의 조국과 함께 끈끈하게 얽혀 펼쳐졌다. 조국을 잃은 백성에게는 아직 조선왕조 500년 동안의 계급 사회가 존재했으며, 빼앗긴 조국을 위해 너무 아무것도 아닌 백성과 가진 것 없는 사람들이 양반이 내어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단 하나 가진 목숨을 내놓았다.

조국을 잃은 백성들은 여기저기에서 아무에게나 두들겨 맞고 죽임을 당했다. 모두 다 너무나 가난했으며 견딜 수 없는 여름과 그 보다 어찌할 수 없는 추운 겨울이 삶을 더욱 절망에 가깝다고 느끼게 했을 것이다. 쫓겨가다시피 한 북방의 겨울은 얼마나 더 추웠을까? 강이 얼어 그 강을 건너 적을 토벌하러 가는 독립운동가들의 결연한 의지가 뼛속까지 시려왔다.

토지의 수많은 등장인물 중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냈을까? 내가 일제강점기에 살았더라면?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가을이다. 9월 1일부터 제법 가을 같다. 가난한 사람도 얼마간은 날씨 덕에 행복할 수 있는 며칠 안 되는 가을이 왔다. 난 토지를 끝까지 다 읽을 생각이다. 열심히 운동 가야겠다 마음먹었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면 지금 일제강점기에 일본에 대항해 싸우는 독립운동가들의 마음에도 며칠간 따뜻하고 희망찬 가을을 느끼길 바라는 마음이다.

#위대한조상 #독립운동가 #박경리선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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