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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비련씨 Jul 27. 2023

엄마

문득 그리운 이름.. 엄마

나의 친구 중에서 범인은 범접할 수 없을 만큼 단단한 사람이 있다. 나이를 먹어 어른이 되는 건 아닌 것 같고, 그 친구는 어른으로 태어난 것 같다.

나에겐 항상 선생이다. 그 단단하고 찔러도 피 한 방울 절대 볼 수 없을 것 같은 사람의 입에서 엄마라는 그리움을 들었다.

어린 시절 나의 엄마는 절대자였고, 절대자의 눈에 합당한 행복을 주지 못했던 난 찌질한 아이였다. 엄마와 갈등은 엄마 기대에 못 미치는 모든 것에서 시작됐었다. 왜 나에게 그런 큰 기대를 갖고 살았는지는 나중에 나중에 알게 됐다. 지금도 나에게 일어난 모든 일에 나보다 더 기뻐해 주는 사람은 엄마다. ‘자랑은 공짜로 하면 안 된다’는 철학 갖고 있는 엄마는 친구들과 이모에게 밥 사주며 자랑을 한다. 뭐 큰 자랑이 있겠냐만…

엄마가 언제 안쓰러운지 생각해보면, 나와 동갑의 엄마를 바라볼 때다. 혹은 자식을 기르는 엄마의 모습(경험)을 겹쳐보았을 때다.

세상이 다 그랬어.. 그땐 그랬어.. 이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 개별적인 삶의 모습이다.

지금도 옛날에도 그리고 16세기에도 그 어느 시대를 살더라도 모든 사람들은 같은 삶을 살지 못한다.

23살에 첫 아이를 낳은 엄마가 안쓰럽다. 41세 때 대학에 떨어진 딸을 가진 엄마가 안쓰럽다. 50살에 병수발을 1년 반했던 엄마의 삶이 가슴 아프다. 솔이를 기르기 시작했던 55살의 엄마에게 무한하게 죄송하다.

나는 아직도 꿈을 꾸며 미래라는 것을 설계하며 살아간다. 뜻대로 다 돼진 않더라도 적어도 나의 삶의 궤적을 만들어 가고 있다.

아픈 아빠를 돌보는 엄마가 참 안 됐다.

얼마 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심판’을 읽었다(밀리의 서재에서 들었다). 천재의 설정으로 끄덕이게 되는 책이다. 책 대로라면… 엄마는 ‘심판’을 받으며 다시는 환생하지 않으려고 이 많은 벌점을 수행하고 있는 것일까? ‘심판’에서처럼 벌점을 다 채우고 더 이상 환생하지 않고 천국으로 갈 상황이라면 다행일 거란 말도 안 되는 위안을 생각해본다.

내 친구의 엄마는 어떤 모습이길래 늦은 밤 태연이 부르는 ‘만약에’를 듣고 눈문을 흘리는 것일까?

우리들의 엄마는 다 슬픈 것일까?

엄마에게 전화해야겠다. 내가 할 수 있는 효도는 몇 개 안되고 힘들지도 않은 것인데.. 그걸 못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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