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로운 Sep 12. 2022

여수 바닷물로 치킨을 튀겨줘

개도에서의 어느 날

개도 막걸리를 세 병이나 까먹은 그날 밤, 

나는 새벽 4시까지 잠을 자지 못했어.


우리가 함께한 밤이 얼마나 많은데 난 그날 왜 그리 유난스러웠을까?





그 곳은 서울에서 5시간 거리, 

여수 백야도에서도 배를 타고 20분은 들어와야 도착하는 섬 중의 섬이었어.

 

낮에는 

오래된 건물 사이 애옹대는 고양이 소리, 

우우웅 바다를 울리며 멀리서 들어오는 뱃소리, 

선착장 근처 개도 주민들의 말소리가 들리는 곳이었지만.


밤이면

어디가 바다고 어디가 육지인지 모르도록 시커멓게 변해서

누군가 이 민박집 문을 따고 들어와 나를 바다에 던져버린다고 해도 모를,

오직 풀벌레 소리 뿐인 곳이었지. 


백패커들의 성지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는 섬.

우리가 방문한 날은 8월 한여름이라 그랬는지, 낮에도 마을사람들 뿐이었어. 

다들 이미 그 유명한 스팟을 찾아서 노지 캠핑을 하고 있는건 아닐까? 


운전을 시작한지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전국 오만군데를 다 다녀본 너는,

개도의 꼬불꼬불한 길을 신나게 타고 올라서 백패킹 성지라는 그 해수욕장을 찾아갔어.

이상하게도 가는 길에 차도 사람도 아무도 없었지만 말이야. 




개도의 남쪽, 

골짜기 사이에 요새같은 곳에 자리하는 청석포.

아틀란티스소녀 뮤비에서나 봤을 법한 깎아지른 절벽이 바다와 접해 있었어.

여수의 바다색은 새파란 동해와 달리 초록빛이 감도는 푸른색이었는데, 

이 곳은 달랐어. 

무시무시할 정도로 깊어보이는, 짙은 남색이었지. 


백패킹을 한다는 그 절벽으로 네 손에 이끌려 올라갔어. 

분명 사진으로 봤을 땐 이 절벽 위 빼곡히 텐트로 가득했는데. 

성지? 사람이 있는 텐트라곤 단 두 개 뿐, 아주 휑하던걸. 

인스타에서 유행이 지난걸까? 


놀랍도록 평평한 바위들이 계단처럼 깎인 모습이 신기한 것은 잠시.

수 많은 텐트를 고정시켰을 돌이 여기저기 흩뿌려져 있었고, 

부탄가스부터 먹고 버린 쌈장통, 컵라면 쓰레기들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던 곳.

곳곳에 남아있는 웅덩이가 라면국물인지, 오물인지 모를 시꺼먼 색으로 고여있었어. 


참 안타깝다, 이 좋은 곳을. 쯧쯧. 


혀를 차던 너는 바위 위에 올라 앉아서 

천둥 소리를 내며 절벽을 때리는 파도를 가만히 바라봤어. 

그 짙푸른색이 이 높은 절벽 위까지 타고 올라서 하얀 거품까지 튀기는 건 순식간이었어.


텅! 


그 소리가 문을 때려부수는 소리같다고 생각했어. 

전쟁영화 속에 나오는 중세 성의 거대한 바위 문 같은 것 말이야. 


나는 그 소리가 무서웠어. 

금방이라도 세찬 파도가 치면 네가 앉은 곳이 우르르 무너져 내릴것 같았거든. 




그날 밤.

나보다 먼저 잠든 너는 우뢰와 같은 소리를 냈어.

아니, 이 사람의 코골이가 이 정도였나? 

오늘 낮에 만난 그 무시무시한 절벽과 파도보다 더 무섭게 코를 골더라고.

누워있는 민박집 바닥이 진동하고 가구 몇 개 없는 온 집안이 울려서 

마치 코골이를 연주하는 거대한 축음기 안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어!


서울의 밤. 

너의 코콜이는 말이야, 

크르릉 소리내며 언덕을 오르는 배민 라이더의 오토바이 소리, 

험난한 인생을 목전에 두고도 굳이 끔찍한 내일의 숙취를 겪어야겠다는 젊은이의 쩌렁쩌렁한 목소리, 

새벽을 가르고 터질듯 말듯 사람들을 이고 가는 나이트버스 출발하는 소리에 

묻혔었단다. 

너의 지친 하루와 나의 지친 하루가 만나서, 

나도 너를 토닥토닥 하는 새 잠에 들었지. 


서울의 밤 너의 코골이는 그저 도시의 소음이었을 뿐인데.

이 조용한 섬에선 나를 잠못들게 하는 무시무시한 파도와 같구나. 

이걸 이제야 알았네!




안좋은 표정의 나를 데리고 너는 해수욕장으로 내려갔어. 

개도 청석포는 해수욕장하면 떠오르는 그런 백사장이 아니라 몽돌밭이야. 

나는 이런 바닷가엔 처음 와본 것 같아. 


너와 나란히 몽돌 위에 앉았고,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 

물만 보면 뛰어드는 너도 이 바다는 조금 무섭다고 했어. 

파도가 거세게 몰려와서 몽돌밭 위를 덮쳤거든. 


그렇게 가만히 앉아있자니, 

아니, 어디서 들어본 소리가 들리더라고?


해변을 가득 덮은 자잘자잘 몽돌들 사이로 빠져가나는 파도 소리.

빠져나가는 바닷물과 함께 미끄러져 서로 걀걀걀걀 부딪히는 몽돌소리.


이거 치킨 튀기는 소리 아니야?


배달의 민족 광고에서 봤던 그 소리, 전국민이 사랑하는 소리, 우리가 좋아하는 소리.

저 무서운 바다가 돌 가지고 치킨튀기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니.

이걸 이제야 알았네!


우린 여기서 한참을 깔깔 웃었어!




개도를 생각하면 나는 이제 그 소리들이 생각나. 

그 조용하던 섬은 뭐 하나에 몸서리가 쳐질 정도로, 

무섭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던 곳이었지. 


서울로 돌아온 지금.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그 다음, 어떤 계단을 밟아야 할지 나는 모르겠어.

여기는 소리가 너무 많아. 

말, 말, 말. 사람들, 사람들, 사람들. 


조금 더 조용해지면, 들리지 않던 것이 들리고, 

내가 느끼는 게 더 명확해지는 순간이 오지 않을까?

그때 그 섬에서처럼 말이야. 

매거진의 이전글 상괭아 보고싶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