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백야도에는 상괭이가 살아서
갑자기 웬 상괭이냐고?
왼편으로는 저 멀리 여수의 섬과 섬 사이를 잇는 다리들이 장난감처럼 작게 보였고, 오른편으로는 해무 사이에 겹쳐진 섬들이 흐릿하게 실루엣만 드러내고 있었다. 그 뒤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작은 배 위에서 작업을 하는 어부들이 떠있는, 잔잔한 백야도의 바다.
상괭아아-
또 소심하게 한번 불러봤다. 저쪽에서 낚시하는 아저씨도 안 들릴 그런 조그마한 소리로. 그러나 이 짧은 순간 부끄러움 많이 탄다는 그 친구를 본다는 것은 사실 막연한 소원일 뿐.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나는 이제 상괭이가 아니라 이 아름다운 바다 자체에 마음을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잔물결 위로 햇빛이 비쳐서 반짝이는 것을 윤슬이라고 했던가. 해가 떨어지는 시간, 그 반짝이는 물빛을 보면서 생각했다. 다이아몬드 오십만 개가 있어도 여기, 이곳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겠다. 아니 다이아몬드 오십만 개를 준다고 해도 바꾸지 않을 순간이다, 생각했다.
백야도의 바다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해가 넘어가며 하늘부터 바다까지 온통 주홍빛에서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칵테일이라도 탄 듯 그곳은 온 세상 색깔이 하염없이 바뀌었다. 고개를 돌리면 또 다른 색으로 물든 하늘이 그라데이션을 이루었다. 마법 같은 순간은 찰나이면서도 영원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다. 상괭이를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눈앞에 꿈에서도 보지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참, 이렇게 온 바다가 반짝이는데 0.5초 볼록 올라오는 상괭이를 어떻게 포착한담 - 생각했던 순간으로부터, 눈앞의 광경에 눈물이 핑 돌 정도쯤이 되니 반짝이는 모든 것들이 상괭이처럼 보였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날, 서울역 인파에 치여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와서, 몸살을 앓았다. 온몸이 춥고 열이 났다. 코로나도 음성인데 몸이 심상치가 않았다. 열이 내리고 난 후엔 손발에 붉은 발진이 퍼지기 시작하더니 손을 닿는 것, 걸을 때 발을 딛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안 되겠어. 다시 여수행을 결심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가, 그러고 나서 발진이 싸악 가라앉았다. 무슨 서울 알레르기인 걸까?
퇴사하고 한 달. 이쯤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대책을 세우면서 살아야 되는 것 아닐까? 돈? 미래? 어떤 계획을 세우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불안하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갈팡질팡한다. 진짜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하는 내 머릿속엔 아직 아무 답도 떠오르지 않는다. 마음이 가지 않는다.
그저 백야도가 그립다.
상괭이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