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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화로운 Sep 13. 2022

상괭아 보고싶어

여수 백야도에는 상괭이가 살아서

웃는 고래라고 불리는 상괭이. 영어로 Finless Porpoise, 돌고래와는 또 다른 고래류다. 돌고래보다 주둥이가 짧고, 크기도 2미터 이내로 작고, 지느러미도 없다. 우리나라 토종 고래. 수줍은 성격 때문에 제주의 돌고래들처럼 자주 목격되지도 않는다고. 대신 물 위로 살짝 등을 내밀었다가 들어가는 그 순간, 물빛에 반들반들하게 광택이 난다고 상괭이라고 불린다고 한다. (네이버 캐스트 참고)


갑자기 웬 상괭이냐고?

내가 상괭이를 알게 된 이유는 한참 유행하던 드라마 우영우 때문도 아니고, 여수 백야도 선착장으로 들어오는 배에 걸린 '상괭이 출몰지역' 안내판 때문이었다. 그것 하나만 보고 여수 섬들 사이 쪽빛 바다 위에서 나는 소심하게 상괭이를 불렀다.

상괭아아... 한 번만 나타나 줘...



상괭이는 육지와 가까운 연안에 두 마리 정도가 짝을 지어 다닌다고 했다. 이 지역에서 사는 사람들은 종종 만난다는 상괭이. 최근엔 상괭이 사체가 발견되기도 하고, 남획으로 멸종위기종이 되었을 만큼 보기 어려워졌다고도 했다. 그 와중에 상괭이만 검색하면 볼 수 있는 사진. 어렵게 찍었다는 이 수줍은 생명체, 미소천사 상괭이의 얼굴은 세상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그날 이후 내 머릿속에 여수, 백야도와 상괭이는 하나가 되었다. 백야도에 가면 그 미스터리하고 아름다운 생명체를 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해안가에서나마 저 멀리 볼록 올라오는 광택을 볼 수 있다면 로또 당첨보다 더 큰 행운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서울 집에 돌아가서도 계속 입에 상괭이 상괭이를 달고 살았다. 입으로 불러보면 그 귀여운 얼굴이 머릿속에 동그랗게 떠올랐다.




모두가 유행하는 드라마 때문에 돌고래에 관심을 가졌다면 나는 오로지 상괭이 때문이었다. 유튜브에 때맞춰 유독 더 많아지던 돌고래 영상들을 돌려보았다. 그때쯤 내 유튜브 피드는 돌고래 영상으로 가득 찼다. 그중에 최재천 교수님의 유튜브를 보고 알았다. 돌고래 쇼뿐만 아니라 배를 타고 돌고래를 보러 간다는 것, 관광상품으로 가까이하는 것 자체가 문제가 된다는 사실을.


그렇게 다시 여수 백야도를 찾았다. 상괭이 출몰지역이 붙은 포인트를 하나 더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을 잘 아는 낚시꾼들만 간다는 그 비밀스러운 포인트는 사실 더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라고 만들어둔 해안가 데크길이었다. 조용한 곳이었다. 다도해 사이 바다는 강물처럼 잠잠해서 파도소리 조차도 없었다. 이따금씩 저 멀리 지나가는 배 소리만 들리던 곳.


왼편으로는 저 멀리 여수의 섬과 섬 사이를 잇는 다리들이 장난감처럼 작게 보였고, 오른편으로는 해무 사이에 겹쳐진 섬들이 흐릿하게 실루엣만 드러내고 있었다. 그 뒤로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작은 배 위에서 작업을 하는 어부들이 떠있는, 잔잔한 백야도의 바다. 




상괭아아-

또 소심하게 한번 불러봤다. 저쪽에서 낚시하는 아저씨도 안 들릴 그런 조그마한 소리로. 그러나 이 짧은 순간 부끄러움 많이 탄다는 그 친구를 본다는 것은 사실 막연한 소원일 뿐. 일렁이는 물결을 바라보고 있는 사이, 나는 이제 상괭이가 아니라 이 아름다운 바다 자체에 마음을 빼앗겨버리고 말았다. 


잔물결 위로 햇빛이 비쳐서 반짝이는 것을 윤슬이라고 했던가. 해가 떨어지는 시간, 그 반짝이는 물빛을 보면서 생각했다. 다이아몬드 오십만 개가 있어도 여기, 이곳보다 아름다울 수는 없겠다. 아니 다이아몬드 오십만 개를 준다고 해도 바꾸지 않을 순간이다, 생각했다. 


백야도의 바다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해가 넘어가며 하늘부터 바다까지 온통 주홍빛에서 핑크빛으로 물들었다. 칵테일이라도 탄 듯 그곳은 온 세상 색깔이 하염없이 바뀌었다. 고개를 돌리면 또 다른 색으로 물든 하늘이 그라데이션을 이루었다. 마법 같은 순간은 찰나이면서도 영원했다. 눈물이 날 정도로 행복했다. 상괭이를 따라 여기까지 왔는데, 눈앞에 꿈에서도 보지 못한 광경이 펼쳐졌다. 


참, 이렇게 온 바다가 반짝이는데 0.5초 볼록 올라오는 상괭이를 어떻게 포착한담 - 생각했던 순간으로부터, 눈앞의 광경에 눈물이 핑 돌 정도쯤이 되니 반짝이는 모든 것들이 상괭이처럼 보였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날, 서울역 인파에 치여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와서, 몸살을 앓았다. 온몸이 춥고 열이 났다. 코로나도 음성인데 몸이 심상치가 않았다. 열이 내리고 난 후엔 손발에 붉은 발진이 퍼지기 시작하더니 손을 닿는 것, 걸을 때 발을 딛는 것 자체가 너무 고통스러웠다. 


안 되겠어. 다시 여수행을 결심했다.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일인가, 그러고 나서 발진이 싸악 가라앉았다. 무슨 서울 알레르기인 걸까? 


퇴사하고 한 달. 이쯤 되면 어떻게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하지 않을까? 대책을 세우면서 살아야 되는 것 아닐까? 돈? 미래? 어떤 계획을 세우고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지금 이 상황 자체가 불안하면서도 나는 계속해서 갈팡질팡한다. 진짜 원하는 게 뭘까 생각하는 내 머릿속엔 아직 아무 답도 떠오르지 않는다. 마음이 가지 않는다. 


그저 백야도가 그립다. 

상괭이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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