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7일 기록
어젯 밤 자기 전에 마지막으로 본 유튜브 영상은 히스토리 채널의 위기의 지구 - 규모 9.0의 동일본 대지진 다큐영상이었다. 평소에는 잘 눌러보지도 않던 재난 다큐멘터리 영상을 홀린듯이 보다가 잠이 들었다. 아무리 내진설계가 잘 되어 있는 일본이었지만 처참하게 도시가 망가지는 9.0 지진의 위력. 뒤이어 무시무시하게 밀려드는 쓰나미. 해운대 영화에서 처럼 파도가 일어나서 덮치는 게 쓰나미인 줄 알았더니, 무서운 속도로 스멀스멀 땅 위의 모든 것들을 쓸고 가버리는 것이 쓰나미였다.
재난 영상을 보고 잠들었으니 꿈자리가 좋을 리가 없다. 무슨 꿈이었는지 기억이 안나지만 무언가에 쫒기는 기분으로 일어났다. 햇살이 참 좋았던 주말이 지나고 그 자리에 월요일이 들이닥쳤다. 그저 다행인 점은 재택근무라는 것? 이번 주에는 하루 정도 쉬는 날이 있다는 것? 위안을 삼으며 출근을 한다.
평화롭게 노트북을 켜는 순간 일상이 전쟁이 된다. 분명 나는 표정 변화 없이 같은 자리에 앉아 컴퓨터 화면만 보고 있을 뿐인데, 전쟁이 따로 없다.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긴급한 요청들, 전화와 다가온 마감기한, 급한 업무를 하느라 놓쳤던 업무 등. 빠르게 일을 처리하려고 보니 방법을 모른다. 그 사이에 또 급하게 이것좀 해달라며 요청이 들어온다. 오늘 해야할 업무의 리스트를 쭉 세워놓고 이렇게 하나하나 처리해야지, 라고 세웠던 계획은 매일매일 그렇게 물거품이 된다. 나는 슈퍼 J 라서 계획이 갑자기 바뀌고 엉망이 되고 해야 할 일이 쌓여버리면 스트레스가 어마어마해지는 것 같다. 그런것 같다. 그런거겠지? 그래서 이렇게 힘든걸거야. 그래서 이렇게 매일이 끔찍한 전쟁같은 거겠지.
해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나?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었나? 자신이 있었나? 무언가를 잘할 줄은 아는 사람이었나? 나에 대한 믿음도 자신감도 완전히 떨어졌다. 못하겠어. 정말 못하겠어. 이 말이 매일 목구멍을 가득 메운다. 그러고 나면 눈물이 철철 나버리는 것이다.
스물 아홉의 나는 젊어서 그만뒀다. 이거 말고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을거야 하면서. 나는 어디서든 잘 할 수 있을거야 라는 말 그대로 근거 없는 자신감이 가득했다. 패기로 넘쳤다. 그때의 우울은 그래서 약을 먹으면 해결되는 것이었다. 잠시 일을 그만 두고 다른 일을 하면 그만이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몇년 후, 이렇게 숨이 턱턱 막히는 느낌은 그때와 비슷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나이가 들었고, 난 몰라 도망가기엔 세상이 뭐 하나 쉬운 게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돈을 포기할 수 없다. 그래. 다른 것 아니고 정말 돈을 포기할 수가 없다. 오로지 돈 때문이다. 그래봤자 억대 연봉을 버는 것도 아니지만.
거의 매일 겪는 일이 반복된다. 컴퓨터 앞에 앉고, 노트북 화면 위 고요한 전쟁 속으로 나를 내던지면 하루에 몇 번은 와르르 무너진다. 마치 영상 속 9.0 지진 현장처럼, 마음속에 내가 지은 마을이 있다면 그게 다 내려앉고 떠내려간다. 무너진 곳이 너무 고통스러워서 목놓아서 엉엉 울고 나서야 조금 안정을 되찾는다.
뭐가 문제일까? 원인을 알면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부서진 잔해 아래에서 웅크려있는 동안 나는 말이 없어지고 생각은 뭉뚝해진다. 지진이 오고 있다고 알림이라도 받고 내진설계라도 해야할텐데, 이렇게 있을 수는 없는데. 말로 하는 게 그렇게나 어려우니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무슨 말이든 내 안에서 나오는 말을 써내려가 보자고 생각했다. 그러다보면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있지 않을까? 어디서 멈춰야 할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그때는 해결책이 보이지 않을까? 도망가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은 갔고, 이런 나를 보는 누군가가 말하듯 인생이 다 이런거라면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을 것 같아서, 뭐라도 해보기로 했다. 그저 지금은 지진이 좀 잦아들길 바라면서. 강도가 점점 더 약해지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