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화로운 May 30. 2023

연봉 올리기가 이렇게 어렵다니

다들 어떻게 살고 있길래


서울에서 문과를 졸업했다. 외국계 회사에 취업을 했다. 초봉은 대기업 정도는 아니어도 나쁘지 않게 시작했다.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동료들이 해고되고 연봉이 동결되는 순간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이직도 성공했다. 지금은 개고생이라고 이르지만 그때에는 하얗게 불태운 성과를 이뤄 연봉을 올렸다. 주식 바람도, 코인 바람도 탔지만 잠시 짭조름하게 치킨값 좀 벌었던 것은 그때뿐, 지나 보니 얻고 잃은 돈을 생각하면 이건 번 것도 잃은 것도 아니다. 어차피 미혼이고 부양가족도 없으니 그냥저냥 비교하지 않으면 만족하면서 살 수 있는 월급. 나름 잘 지켜지는 워라밸. 야금야금 도토리처럼 쌓으려고 노력하는 소중한 내 통장 잔고. 특별할 것 없는 회사원이 된 오늘을 가지고 온전히 나만 보자면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도 부족하다고 한다. 떨어졌다는 서울 집값은 아직도 내 통장 잔고로 다가가기엔 한참 멀었다. 그 비싸다는 서울의 아파트들은 밤이 되면 불빛이 가득히 켜진다. 도로 위에는 어마무시한 외제차들이 굴러다닌다.  다들 어떻게 먹고 사는 걸까? 다들 어떻게 그렇게 사는 걸까? 억대 연봉을 받아서? 사업과 투자에 성공해서? 금수저라서? 로또에 당첨돼서? 그냥 내가 내 시간과 노력을 들여 그만큼의 공정한 대가를 받아 잘~ 살 수는 없는 걸까? 


그래서 또다시 이직에 도전했다. 연봉이라도 열심히 올려야지. 이름 거창한 글로벌 회사에 서류를 냈다. 운 좋게도 세 단계의 면접을 통과했다. 알아볼수록 좋은 회사였다. 최종면접까지 끝냈고, 이제 마지막이다. 연봉협상만 끝나면 나는 타이틀도 바꾸고 연봉까지 올릴 수 있겠구나. 희망 연봉을 전달하고 회신을 기다렸다. 가끔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힘겹게 이루어지는 일들이 있다면 어떤 것들은 물 흐르듯 착착 진행되는 일도 있다. 운명이란 이런 건가보다,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 같은 기분에 빠져있을 때. 회신이 왔다. 


누가 냉동실에 던져 넣은 것처럼 나는 얼어붙었다. 지금 받는 연봉에도 못 미치는, 말 그대로 후려친 금액이었다. 연봉 올리기는 실패다. 그렇다면 지금의 연봉이라도 사수해야지. 타이틀이라도 바뀌는 것이 어디냐. 이건 연봉 통보가 아니라 연봉 협상이니까, 나를 한 번 더 어필하면서 협상을 시도했다. 지금의 연봉이라도 지켜달라. 그러나 답변은 칼 같았다. 협상이라고 생각한 나의 착각이다. 나에게 던져둔 금액에서 점심값정도의 금액만을 추가했다. 더는 안된단다. 나보다 경력이 더 많은 사람도 이 금액을 받기 때문에 더 이상은 어렵다고 했다. 연봉 협상이 아니라 연봉 통보가 맞았나 보다. 그래, 인사팀의 이유도 납득이 간다. 직원들 사이에 연봉 수준을 잘 맞추는 그런 회사인가 보지. 허탈해진 마음으로 마지막 이메일을 보냈다. 


"해당 포지션 지원을 포기합니다."


짜잔- 나 이렇게 한 스텝 올라갔어! 하고 기분 좋게 가족들과 저녁식사를 하려던 계획이 무너졌다. 이 회사에서 하던 일 다 던지고 새로운 일을 할 생각에도 들뜬 것도 있었다. 마음속으로 세워 보았던 새로운 저축 플랜도 다시 현재로 되돌려야 했다. 다 김칫국이었구나. 


내가 무슨 대단한 억대 연봉을 바란 것도 아니다. 지금보다 더 크고 좋은 회사임에도, 이 정도도 인상이 어렵다니, 아니 유지도 어렵다니. 새삼 충격을 받았다. 문과라서 죄송합니다, 그런 말에 그냥 허허하고 웃으며 넘겼었는데, 이렇게나 뼈아프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니. 그렇게 잠시 붕 떴던 기분을 가라앉히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그래도 지켜낸 지금의 연봉에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 


아니, 연봉 올리기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나. 


그러면서도 국가에서 지원하는 저금리의 청년을 위한 대출이나 주택을 찾아보면 또 애매하게 기준에 걸려서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을 보면 허탈하다. 백만장자 부자가 되고 싶다는 것도 아니다. 그냥 조금 더 나은 평범한 내가 되고 싶다. 집 같은 집에 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월세가 들고, 대출금을 갚아야겠지. 그러니까 열심히만 살아서는 내 한 몸 건사하는 것 외에는 불가하다는 걸까? 서울의 아파트 불빛 중 하나가 되기가 이렇게나 멀어 보이는 걸까. 다들 어떻게 먹고 사는 건지 모르겠다. 책임져야 할 가족까지 만들면서 어떻게 그렇게 사는 걸까. 요즘은 주변의 모두가, 지하철에서 오고 가는 회색의 사람들까지 하나하나 다 대단해 보인다. 


어느 영상을 보니 외국에서는 행복의 기준이 가족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행복의 기준은 경제적인 풍요라고 하고. 남보다 더 가지려는 데에 혈안이고, 이렇게 살지 않으면 무언가 잘못된 것 같이 내몰리는 것, 끊임없는 주변과의 비교, 경쟁... 의식의 흐름대로 사고가 흘러가다 보면 여기까지 온다. 


돌아 돌아 지하철에 앉았다가 일어섰다가 터덜터덜 집으로 가는 동안, 나는 또다시 생각한다. 다들 어떻게 사는 것일까? 내 생각은 그저 게으른 한탄에 불과한 걸까? 게으른 내 뺨을 때려야 하는 순간이었으면 좋았을 것을. 자꾸만 의욕을 잃고 동굴로 숨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꾹 참고 출근하다 보면 시간이 지나고 해낸 프로젝트가 쌓이겠지. 무언가 새로운 것에 도전해서 끊임없이 스펙을 쌓아야겠지. 그렇게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긍정적인 생각으로 마무리하는 날. 그러다 커리어 전환의 기회를 맞이하길, 또다시 물 흐르듯 착착 진행되어 이 길이 내 길이 구나! 하는 순간이 오길 기다려본다. 뭘 해야 하나 찾아보고, 링크드인 한 번 더 들여다보면서. 이직으로 연봉 올리기에 도전한 이야기가 또다시 한탄으로 끝나는 글이 되어버리니, 그저 씁쓸하다. 

매거진의 이전글 이것은 케이크가 아닙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