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3일 마포 새우젓 축제 후기
바야흐로 축제의 계절이다. 청명한 아침부터 선선하고 쌀랑한 바람이 부는 저녁까지, 여기저기 축제로 들썩이는 계절. 지역축제가 이렇게나 많았었나? 내가 관심이 없었던 걸까 아니면 코로나 이후 지역 축제가 더 많아진 걸까? 몇 년 전만 해도 서울의 축제란 여의도 불꽃축제뿐인 줄 알았다. 퇴근길 9호선 급행 같은 인파를 뚫고 틈새 낭만을 꿈꿨다. 그러나 앞자리가 바뀐 올해, 뭔가 다른 재미를 알고 말았다. 머리 바글거리는 한강 근처에는 얼씬도 않던 내가, 뜬금없이 마포에서 열리는 새우젓 축제에서 흥이 나고 만 것이다.
웬 서울에서 새우젓 축제?
육로가 좋지 않던 시절, 마포나루는 배가 남부의 물건을 실어 나르던 창구였다고 한다. 젓갈과 곡식이 이 나루터를 통해 들어왔다고. 육로가 뚫리고 나서는 더 이상 마포나루가 그 역할을 하지는 않지만, 그 전통을 이어 마포에서는 매년 새우젓 축제를 열고 있다고 한다. 10월의 세 번째 주 주말이니까, 딱 젓갈 많이 필요한 김장철 전이다.
월드컵경기장에서 걸어서 월드컵공원 평화광장 일대에 들어서자 바로 알 수 있었다. 이 축제의 연령대. 거의 대분 50대 이상. 형형색색의 K-등산복 차림의 어르신들이 가득한 축제!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다!
우리가 이 축제를 찾은 목적은 세 가지다. 첫째, 장터에서 맛있는 것을 먹는다. 둘째, 새우젓을 산다(수육 해 먹을 것임). 셋째, 불꽃축제를 감상한다. 결론만 얘기하자면 목적은 모두 달성했다. 그 과정을 한번 풀어보자.
1. 장터에서 맛있는 것을 먹는다. *난이도 하
먹거리 장터 존이 대단했다. 입구부터 불 위에 올려진 가을 전어구이가 세상의 모든 며느리와 시어머니들을 불러 세울 기세다. 여기에 동네 가득 막걸리 향이 은은하게 풍겼다. 부스마다 눈 돌아가는 음식들이 가득가득.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 나오는 음식 가득한 식당들 같았고. 놀랍게도 가격도 착했다. 대하튀김 7개에 만원, 전어구이 9마리에 만원. 대부분의 음식이 한 그릇 가득해서 만원 이하. 또 놀랍게도 일회용품을 전혀 사용하지 않았다. 모두 리유저블 그릇과 젓가락을 사용하고 어느 구역에 반납하는 축제...!
한 바퀴 빙 둘러보고 우리는 5천 원짜리 잔치국수 한 그릇을 샀다. 잔치에는 잔치국수! 앉을자리가 없어서 대충 바닥에 앉아서 먹었는데, 거 참 맛났다. 전어구이도 한 그릇 가득 샀다. 이번엔 식탁은 있지만 의자가 없어서 서서 생선을 발라먹었다. 아... 쪼금 아쉬웠으나 가성비는 좋았다. 언제 전어구이를 흥겨운 어르신들 사이에서 스탠딩으로 가시 발라 먹어볼까?
2. 새우젓을 산다. ***난이도 상
새우젓 부스는 입구부터 쭈우욱 늘어서있다. 전국팔도에서 온 젓갈들을 먹어보고 살 수 있는 구간! 우리는 저녁에 수육을 해 먹을 심산으로 새우젓을 사기로 결심했다.
새우젓. 그냥 엄마가 줘서 먹었거나, 엄마 집에 있는 것을 보았거나. 내가 구매해 본 적은 거의 없다. 여기서부터 일단 난이도가 올라간다. 전국 팔도에서 온 젓갈이 널려있으면 뭘 하나. 나는 어떤 물건이 좋은 것인지 모른다. 그래서 그냥 하나 찍어서 사기로 결정.
부스에 다가섰다. 그런데. "새우젓"이라고 안 써져 있고 다른 이름들이 붙어있다. 이름마다 가격도 다르다. '오젓' '육젓' '추젓' 그래서... 뭐가 다른 거죠? 육안으로 보기엔 육젓은 크고 오젓이 그다음으로 크고 추젓은 우리가 늘 보는 그 새우젓 크기 같다. 대충 아는 것을 사자. 추젓을 사기로 마음먹었다. 1kg에 단돈 만원. 싼 지 비싼지도 모르겠고 그냥 일단 사 보기로 마음먹음.
여기서 또 난이도가 올라간다. 판매하시는 분께 다가서는 것 자체가 어렵다. 이 새우젓 장터에는 '줄'이라는 것이 없다. 그냥 밀고 들어가야 한다. 줄처럼 보이는 곳에 서있어도 어디선가 누군가 럭비선수처럼 치고 들어오면 나는 구매하지 못한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럼 맨 앞줄에서 구매를 하고 있는가? 아니다. 그냥 시식하고 물어보고 서로 얘기하고 계심. 여기에 오신 어르신들은 얼마나 많은 요리의 지혜를 머리와 손에 담고 계실까. 난 새우젓을 보면 '수육 먹고 싶다' 밖에 떠오르지 않는걸!
럭비선수들처럼 단단한 어르신들의 어깨 사이로 만원을 들고 '추젓 1kg 주세요!'라고 말하고 나서야 새우젓을 구매할 수 있었다. 다음 날 하나로마트에서 보니 1kg 추젓은 2만 9천 원이었다. 새우젓축제에서 본의 아니게 엄청 싸게 산 것이었다.
3. 불꽃축제를 감상한다. **난이도 중
새우젓축제의 폐막식에는 불꽃축제가 펼쳐진다고 했다. 불꽃놀이 시간은 저녁 8시 20분, 시간 맞춰 총총 평화의 광장으로 갔는데... 먹거리장터와 새우젓 장터에서 본 인파는 그저 새발의 피였다. 여느 콘서트 못지않은 인파가 그득한 야외 공연장!
공연날이 꽤 추워져서 어르신들은 들어가시지 않을까 했는데, 웬걸. 마지막 무대에 유명한 트로트 가수가 올랐다. 노란색 옷을 입고 별모양 봉을 든 그의 팬들이 물결을 이뤘다. 그저 그들의 연령대만 높을 뿐, KPOP 콘서트장의 10대 20대들의 표정, 상기된 목소리와 다를게 하나 없었다. 놀라운 장면이었다... 열정과 설렘으로 가득한 현장. 나는 그 가수도, 이 사람들도 몰랐지만 함께 들떴다. 누군가는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고 누구는 신나게 따라 부르고 누구는 춤을 추고.
오, 트로트 공연에는 특이점이 있었다. 조금이라도 멘트가 길어지면 관객석에서 빨리 노래하라고 아우성을 쳤다. 그래서일까? 이 날의 트로트 가수는 짧은 멘트들과 함께 연속으로 몇 곡을 메들리로 완창 했다...! 그 젊은 가수의 열정과 에너지. 뜬금없이 이런 느낌을 느낄 수가 있나? 나는 충격을 받았다. 아,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나는 그 때 그렇게 생각했다.
마침내 화려한 불꽃이 하늘에 펑펑 터졌다. 여의도 불꽃축제라면 빽빽했을 공연장인데, 내 앞에서 신나게 봉을 흔들고 노래를 하던 인파들은 이미 반 이상 사라지고 없었다. 아, 이곳을 찾는 분들의 메인은 트로트 공연이었고, 불꽃놀이보다 빨리 집에 가는 것이 중요하구나.
4. (추가) 청국장을 구매한다. **난이도 중
추가. 계획에 없었으나 진행한 일. 어릴 적 엄마가 청국장을 끓이면 이게 뭐냐며 코나 부여잡았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나가다 시식 한 번 해본 청국장에 홀딱 마음을 빼앗긴 짝꿍이 청국장을 결국 구매했다. 집 냄새는 환기해서 빼면 그만이다... 생각하며.
청국장 4 덩이에 만 원! 우리가 청국장을 사다니? 갑자기 어른이 된 기분이다. 퇴근하자마자 청국장을 끓여서 냠냠 먹었다. 편안한 속으로 보내는 저녁시간. 마트에서 보니 청국장은 2개에 만 원이다. 싸게 잘 샀다. 이것도 본의 아니게!
흥미로운 경험의 연속이었던 마포 새우젓 축제 방문기. 재방문 의사 매우 있음. 연령대 높은 축제를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진국이다. 1만 원 4개 청국장과 1만 원 1kg 새우젓같은 축제. 저렴하게 좋은 물건을 겟하는 가운데 즐거움이 있다. 이런 지역 축제라면 찾아다니고 싶을 정도, 내년에 또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