릴스 볼 시간에 글을 쓰자 생산적으로
11월 7일 목요일 4시간 왕복 출퇴근일기
출퇴근 시간이 왕복 4시간으로 증가했습니다.
그동안 교통비는 매월 5만 8천 원, 출퇴근 왕복 80분이었습니다. 달콤했어요. 기후동행카드 그 절약의 맛, 지옥철이어도 밉지 않던 9호선 급행의 맛은 말이죠. 한 시간 반이 조금 안 되는 로맨틱 코미디 영화급 달달함이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저는 광역버스와 마을버스, 지하철을 하루 두 번씩 풀로 이용하며 출근을 하게 됐습니다. 왕복 4시간이면 로맨틱 코미디 러닝타임이 급 대하서사가 됩니다. 반지의 제왕 시리즈를 하루 하나씩 끝낼 수 있죠.
이건 아니다 싶어 구직사이트도 뒤져보고 부동산 앱을 켜고 근처로 이사할까 고민도 해보지만 딱히 이렇다 할 답이 안 나옵니다. 이루고자 한 목표를 하루아침에 던지기도 어렵고, 사는 곳을 쉽게 옮기기도 어려운 상황입니다.
결국 이동 없이 이 삶에 익숙해져 보기로 합니다. 그렇게 4시간의 이동에 피곤함만 쌓여가던 중, 결국 무의식은 가장 쉬운 선택을 합니다. 손가락이 거의 자동으로 시작하는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이죠. 머리도 손가락에 동조합니다. 생각을 멈추겠다며 숏츠와 릴스를 쉴 새 없이 돌리는 거예요. 뭘 본 건지 돌이켜보면 기억도 안나는 영상들이 휘리릭 지나가고, 녹초가 된 몸으로 집에 도착하면 그대로 쓰러집니다. 그리고 나면 또 아침이더라고요. 집에 가서 해야겠다고 생각한 일들이 이루지 못한 무엇처럼 쌓여만 갑니다. 일상의 나를 위한 일들이 이루지 못한 것들이 되어갑니다.
그게 얼마나 아깝고 안타깝던지. 불평만 하고 앉아있기에는 바뀌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 출퇴근 시간에 적응하고 사는 것을 선택했다면 무언가는 바꿀 수 있지 않을까, 고민을 해봅니다. 대단한 것을 거창하게 시작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고, 가장 하고 싶던 것을 생각해 봤어요. 회사의 톱니바퀴처럼 사는 동안 레버리지 당하는 삶, 남이 만들어놓은 콘텐츠에 끌려다니는 뇌, 지나면 내가 뭘 하고 살았나 기억이 나지 않는 매일. 그 중심을 다시 나에게 가져와야겠다고 말이지요.
그때 돌아오라고 돌아오라고 주는 알림을 애써 방치하던 브런치가 떠올랐습니다. 매일 쓰겠다고 다짐만 하고 미뤄지기만 하던 브런치. 왕복 네 시간이면 지나가는 생각들을 붙잡아놓고 나에 대한 글 한 편 기록할 수 있겠다, 생각했습니다.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뭘 먹고 뭘 느끼며 어떻게 사는지, 좀 들여다봐야겠습니다. 힘들다 힘들다 뇌 빼고 텅 빈 듯이 살다 보니 정말 텅텅 비어버리게 생겼더라니까요. 그래서 오늘부터 기록해 봅니다. 소비가 아니라 생산을 해보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이 출퇴근 길이 조금은 즐거워지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