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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한 죽음

세상은 커다란 저수지와 비슷하다

by 송윤환

나이 50을 목전에 두고 몸에 아픈데가 하나둘 늘어난다. 가장 먼저 찾아온 것은 오십견. 겉으로봐서는 멀쩡하지만, 통증에 밤잠을 설친다. 한달에 한번씩 찾아오는 금요휴무일(회사에서는 happy friday라는 제도로 운영함)에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여기저기 병원 방문에 평소보다 더 바쁘다. 운동도 하고, 식단도 챙기면서 건강한 몸을 유지할려고 애쓰겠지만, 인생의 후반전이 시작되었고, 언젠가 이 게임도 종료 될 것임은 부인할 수 없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삶의 끝, ‘존엄한 죽음’에 대한 담론은 우리 사회에서 여전히 조심스럽다. 그러나, 누구나 맞이해야 할 마지막 여정인 만큼, 우리는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움이나 금기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죽음을 하나의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인간다운 품위와 자유를 지키려는 시도가 ‘존엄한 죽음’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세상의 중심에 서고 있다.


세상은 커다란 저수지와 유사하다. 위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유입되고, 아래로는 죽음이 흘러나간다. 이 자연스러운 순환 속에서 죽음은 결코 비정상적이거나 비극적인 사건만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일부로, 누구에게나 언젠가 도달할 마지막 물줄기다. 그렇기에 우리는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종착점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인간으로서의 권리와 품위를 지킬 수 있는 ‘선택지’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river-6954041_1280.jpg 세상은 저수지다. 위에서는 새로운 물이 유입되고 아래로는 흘러서 떠난다.

죽음은 삶의 모든 국면에서 찾아든다. 갑작스러운 사고, 예고 없는 질병, 또는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선택되는 자살 등 다양한 방식으로 우리 곁을 스친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인간은 자신의 삶을 마무리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 단지 생명을 연장하는 데에 집중하기보다는, 고통 없이, 스스로의 방식으로 삶의 끝을 맞이할 자유가 존중되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 추구하는 가치들, 한때는 기쁨과 의미를 주었던 모든 것들과 스스로 선택한 방식으로 작별인사하는 것은 누구도 막아서는 안 되는 자유이며 존엄한 권리다. 이는 죽음을 대하는 태도의 전환을 의미하며, 타인의 죽음을 지켜보는 우리 모두의 인식도 함께 변화해야 한다. 존엄한 죽음은 단순히 죽음의 권리를 넘어, 마지막까지 나다운 삶을 이어가는 과정이다.


더불어,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유언장’을 미리 작성해두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남겨둘 재산이 없어도 유언장은 미리 작성해두는 것이 좋다. 그것은 단지 물질을 분배하는 문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마무리하고 싶은지, 남겨진 이들에게 어떤 마음을 전하고 싶은지를 담는 마지막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의 삶을 더욱 충실히 살겠다는 의지이기도 하다.

존엄한 죽음은 단지 의료적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삶의 철학이며,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존중의 표현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준비하며, 자신의 마지막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사회야말로 진정한 생명 존중의 사회일 것이다. 저수지처럼 흐르는 생과 사의 물결 속에서, 우리는 모두 언젠가 그 흐름을 따라가게 된다. 그 여정의 끝에서도 우리는 ‘존엄’을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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