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워야 보이는 것들

인생의 여백을 채워가는 몇몇의 담담한 방법

by 송윤환

오래 다니던 회사를 마지막으로 나서던 날을 떠올려 보라. 그 뒤에 찾아오는 이상한 조용함. 바쁠 때는 그토록 원하던 시간인데, 막상 주어지고 나면 낯설고 무겁다. 비어 있다는 느낌이, 자유롭다는 느낌보다 먼저 온다.

이것이 인생의 여백이다.


"서양화는 캔버스를 가득 채운다. 동양화는 비운다. 그 비움이 오히려 보는 사람의 숨을 트이게 한다."


인생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늘 무언가로 가득 채워진 삶을 살아왔다. 직장, 가족, 의무, 약속. 빈칸이 생기면 곧바로 다른 무언가로 덮었다. 그것이 삶을 사는 방식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어느 날 문득, 더 이상 채울 것이 없는 날이 온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묻게 된다. 나는 무엇을 좋아했던가?


"놀아라"는 말이 왜 고문인가?


주변을 보면 은퇴 후 갑자기 골프를 시작하거나, 문화센터 강좌를 닥치는 대로 등록하거나, 해외여행 일정을 빽빽하게 채우는 사람들이 있다. 겉으로는 바빠 보이지만, 무언가 조급해 보인다. 쉬고 싶어서 쉬는 것이 아니라, 쉬어야 한다는 강박으로 쉬는 것처럼.

사실 이것은 당연한 일이다. 한 번도 제대로 놀아본 적 없는 사람에게 "이제 마음껏 놀아"라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고문이다. 수십년간 성과와 효율의 언어로 살아온 사람에게 무목적의 시간은 낯설고, 때로는 두렵기까지 하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죄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어야 한다. 노는 법을 배우는 데에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 처음부터 잘하지 않아도 된다. 서툴러도 된다. 심지어 지루해도 된다. 그것이 시작이다.


몸을 쓰는 것과 마음을 쓰는 것 — 봉사와 등산


돈이 들지 않으면서도 삶에 깊이를 더하는 방법이 있다. 복지관 봉사와 등산이 그것이다. 얼핏 보면 아무 관련이 없어 보이는 두 가지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이야기를 한다.


봉사는 자신이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확인하게 해준다. 직함이 사라지고 역할이 모호해진 시기에, 봉사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존재 이유를 준다. 그것이 밥을 나르는 일이든, 말동무가 되어 주는 일이든.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서 더 깊은 충족이 온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다만 잊고 있었을 뿐이다.


등산은 다르게 작동한다. 등산은 자신을 자연 앞에 세운다. 정상에 오를 때의 성취감보다, 걸으면서 쏟아지는 생각들, 땀 흘리며 비워지는 머릿속, 능선 위에서 맞는 바람이 사람을 낫게 한다. 비용도 들지 않고, 예약도 필요 없고, 특별한 기술도 요구하지 않는다. 그저 신발 끈을 묶고 걷기 시작하면 된다. 오래 걸어온 사람이 산을 오를 줄 모를 리 없다.


"몸을 쓰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마음이 고요해지면 생각이 맑아진다."


게으른 완벽주의자의 함정


무언가를 시작하려 마음먹었을 때 찾아오는 또 다른 적이 있다. 바로 완벽주의다. 등산을 하려면 제대로 된 등산화와 스틱이 있어야 할 것 같고, 봉사를 하려면 어떤 교육을 먼저 받아야 할 것 같고, 독서를 하려면 책상과 독서 환경을 먼저 갖춰야 할 것 같다. 그래서 시작을 계속 미룬다.

이것을 게으른 완벽주의라 부른다. 하지 않으면서 준비하는 척하는 것. 시작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다는 무의식적인 보호 기제. 하지만 이 함정에 빠지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는다. 완벽한 조건은 영원히 오지 않는다.

오늘의 등산화가 낡았어도 괜찮다. 복지관에 전화 한 통 해보는 것으로 충분하다. 처음부터 잘하지 않아도 된다.


중요한 것은 시작의 질이 아니라 시작 자체다.


일주일에 딱 10쪽


마지막으로, 가장 작은 실천 하나를 제안한다. 일주일에 한 번, 책 10쪽을 읽는 것.

10쪽이다. 많지 않다. 하루도 아니고 일주일에 한 번이다. 억지로 완독하려 들지 말고, 밑줄 치며 요약하려 들지도 말고, 그냥 읽는다. 10쪽 안에서 딱 한 문장이라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 한 문장이 며칠 동안 머릿속에서 천천히 익어간다.


독서는 지식을 쌓는 행위이기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고독한 내면과 대화하는 행위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기 자신의 생각을 만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여백이 가득 찼던 불안이 조금씩 잔잔해진다.

10쪽. 부담 없는 숫자다. 하지만 이 작은 습관이 1년이 되면 520쪽이고, 그것은 두꺼운 책 한 권이 넘는다. 무엇보다, 매주 한 번 의자에 앉아 책을 펼치는 그 행위 자체가 자신을 대우하는 방식이 된다.


여백은 결핍이 아니다.

인생의 후반부에 생기는 빈자리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완성의 다른 형태다. 동양화의 여백처럼, 비어 있음이 오히려 전체를 살아있게 만든다.


거창하게 시작하지 않아도 된다. 복지관 전화번호를 검색해보는 것, 집 근처 낮은 산 하나를 알아두는 것, 꽂아 두었던 책을 꺼내 10쪽만 읽는 것. 이 세 가지만으로 충분히 시작할 수 있다.


그리고 언젠가 돌아보면 알게 될 것이다.

"비어 있는 것이 가장 쓸모 있다." — 노자, 도덕경 1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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