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아이의 사랑을 먹고 자란다
우리는 서로의 사랑을 먹고 함께 자란다
평일 저녁 산타를 씻기고 옷을 입히고 있는데 TV 속에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어! 리나 언니다!" 전 직장에서 알던 언니가 셰프가 되어 TV에 출연을 한 것이다. 셰프가 됐다는 얘기는 전해 들었었는데, 전혀 다른 직종에서 이렇게 빨리 자리를 잡아 TV에도 나오다니 너무 놀랍고 신기한 마음에 한참 동안 TV를 들여다봤다.
유명 개그우먼인 박나래 옆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다. '맞아, 저 언닌 예전에도 자기 일 하나는 똑 부러지게 잘했지', 핸드폰으로 언니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요리 학교인 르 꼬르동 블루에서 교육을 받고, 본인 이름으로 된 브랜드로 론칭하고, 책도 여러 권 내며 활발히 활동 중이었다. 취미를 직업으로 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까란 생각에 대단하기도 하고 부러운 마음도 들었다.
내 마음을 눈치챈 남편은 "셰프는 대단한 것도 아니야, 내 동기 형은 국회의원이 됐어"라며 자신의 상황을 빗대어 날 위로하려 했지만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TV 화면 밖에 비친 내 모습이 TV 속 화려하게 차려입은 언니의 모습과 비교돼 더욱 초라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내가 TV에서 눈을 못 떼고 있을 때 무언가 내 손을 툭 치고 지나갔다. 산타의 발이었다. 옷을 반쯤 걸쳐 입은 우리 딸 산타가 환하게 웃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으~' 소리밖에 낼 줄 모르는 산타인데, 환한 미소와 눈빛으로 '엄마는 제게 최고 멋진 사람이에요'라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눈물이 왈칵 날 것 같았다. '그래, 난 산타에게 우주이자 세상 전부인데 무슨 생각을 했던 거지'라는 생각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난 그날 이후 다른 사람과 나를 비교하지 않게 됐다. 비록 부스스한 머리에 목 늘어난 옷을 입고 있지만, 난 그녀에게 슈퍼스타이기 때문이다. 사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엄마의 시간과 젊음을 먹고 아이가 크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이를 낳아서 키우는 건 엄마의 희생만 뒤따른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내가 엄마가 되어보니 아이 역시 엄마를 키우고 있었다. 아이를 낳는다고 바로 엄마가 되는 게 아니었다. 내게 절대적인 사랑을 주는 이 작은 생명체가 날 무엇이든 할 수 있게 하는 강한 엄마로 만들어 주는 것이었다. 그날도 타인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겼던 나를 끄집어 밝게 비춰준 것도 산타였다. 아이는 엄마의 사랑을 먹고 자존감의 뿌리를 내린다. 그리고 엄마 역시 아이의 사랑으로 자존감이 단단한 진짜 어른이 되어간다. 오늘도 날 키워준 작은 생명체에게 뽀뽀를 한다. 그리고 그녀의 옷을 마저 입히고, 원숭이 흉내를 내며 나의 열혈 팬인 그녀만을 위한 쇼를 펼친다. 우끼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