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엄마의 모습을 꿈꾸는가. 아마 목이 늘어난 티셔츠에 머리는 후줄근한 채로 아이가 남긴 밥을 먹는다던가 하는 엄마를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 손에는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한 손은 유모차를 끌며 싱긋한 꽃내음을 맡으며 산책을 즐기는 엄마, 아이를 낳은 후에도 몸매는 여전한 채 예쁜 옷을 입고 단장을 하고 하이힐을 신은 후 출근하는 워킹맘, 퇴근 후에는 아이와 둘러앉아 오늘 있었던 일들에 대해 소소한 대화를 나누며 하하호호 식사를 하는 행복하고 여유로운 가족의 모습.
적어도 내가 꿈꾸는 삶은 이런 모습이었고, 또 그런 삶은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불가능하지는 않겠지. 내가 필요할 때마다 아이를 케어해주는 사람이 있거나, 내가 아이를 케어하는 동안 집안일을 맡아서 해줄 사람이 있거나. 우리가 집에서 해야 하는 많은 일들을 분담하여 도와줄 사람이 있다면 엄마들은 좀 더 여유롭게 마미 라이프를 즐길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내가 좀 더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사람이었다면, 하고 나를 탓해볼 수도 있겠다.
바쁜 아침 나를 꾸미는 시간은 사치이고, 보기 흉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치장한 후 출근한다.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아이와 같이 다니려면 하이힐과 예쁘지만 짧거나 불편한 옷들은 피해야 한다. 아이의 간식과 물을 간단하게라도 챙겨 다니려면 가벼운 에코백이 제일이고 무겁거나 색이 밝은 비싼 가방은 장롱 속에 고이 넣어둔다.
퇴근하면서 아이를 하원 시켜 집으로 와서 아수라장이었던 아침의 현장을 정리하고 저녁을 준비한 후 식사를 한다. 5살인 아이는 끊임없이 궁금한 게 많고 질문을 던진다. 숫자에 부쩍 흥미가 많아진 아이는 본인이 마시는 요구르트는 몇 미리인지 묻고, 한 모금 먹고는 몇 미리 남았는지 묻고, 또 먹고 묻고를 반복한다. 생선살을 발라주거나, 아이 주변에 흘린 음식물을 닦아주기도 하고, 아이 말에 응하면서 먹다 보면 어느새 나는 기계적으로 숟가락을 입 속으로 가져가고 있다. 사실 어떤 날에는 아이에게 질문 그만하라고, 엄마도 밥 좀 먹자고 격앙돼서 얘기할 때도 있다.
요즘 SNS를 보고 있으면 정말 대단한 슈퍼맘들이 많다. 물감놀이나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아이의 오감을 자극하는 엄마표 미술놀이 사진들, 5첩은 기본이고 각종 진수성찬들이 담겨 나오는 엄마표 유아식 사진 등. 그런 사진들을 보면서 정보를 얻기도 하지만 어떤 날에는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일까, 우리 아이는 이대로 괜찮은 것일까. 어떤 날에는 대충 김에 밥을 싸서 먹이는 날도 있고, 어떤 날은 생선 한 마리만 구워 단출한 밥상을 차려주기도 한다. 또 어떤 날에는 텔레비전 보는 것으로 시간을 때우기도 한다. 나의 열정, 나의 체력이 부족해서 우리 아이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하고 지나가는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들로 마음이 복잡해지고 심지어 죄책감까지 들 때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직장에서는 완벽한가. 아이가 열이 난다고 어린이집에서 급하게 연락이 오는 날이 아주 가끔 생긴다. 급히 조퇴를 내고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날이면 늘 누군가에게 무언가는 부탁을 해야 하고, 양해의 말을 구해야 한다.
하루는 아이가 아파서 급히 조퇴해야 한 적이 있다. 오후에 남은 수업들을 교체해놓고는 부서의 부장에게 말하니 부장은 미간에 주름이 진 채로 말했다.
- 아이 아빠는 뭐해요?
그날, 아이와 병원을 가며 차 안에서 혼자 숨죽여 울었다. 열이 나는 줄도 모르고 어린이집에 보냈던 것도 미안하고, 아이가 아프다는 소식을 들어도 우선 근무상황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걱정부터 해야 하는 엄마인 것도 미안하고, 나 대신 학급을 봐줄 다른 선생님에게 부탁드리는 것도 미안했다. 미안함보다 서러움이 먼저였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최선을 다하는데 왜 늘 미안해야 하는지에 대한 억울함과 서러움.
아마 남편이 급히 가야 하는 상황이었다면 아이 엄마는 뭐하냐는 볼멘소리를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결혼 전에는 나도 제법 똑순이 소리를 들으며 직장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눈치를 자주 보게 되는 듯하다. 전보 시기가 되면 혹시 애 엄마가 같은 부서라서 자신들에게 뭐라도 부탁할까 봐, 회식은 늘 빠질까 봐 사람들이 싫어하면 어쩌나, 관리자가 좀 더 젊고 유능한 사람을 원할 텐데 내가 발령받은 것을 싫어하면 어쩌나 등등.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어도 눈치를 받는 요상한 버릇이 생겼다.
나는 직장에서도, 가정에서도 완벽할 수 없다. 늘 누군가에게는 미안해하며 살게 된 것 같다. 늘 지치고 피곤할 만큼 내가 쓸 수 있는 에너지의 120%를 쓰면서 최선을 다하지만, 늘 내가 부족한 것 같다고 느끼는 삶.
이 세상에 슈퍼맘은 있을까.
나는 오늘도 슈퍼맘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나를 비롯해 슈퍼맘이 아닌 모든 엄마들은 슈퍼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