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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나의 비타민

오늘도 엄마는 힘을 냅니다

by Nancy

내가 꾸린 가족 중 가장 사랑해 마지않고, 사랑한다는 말로도 부족할 만큼 아끼는 사람은 역시 나의 아들이다. 사실, 아이 웃는 것만 봐도 피곤이 풀린다는 말은 살짝 과장된 표현이라고 느끼기는 한다. 종일 일하고 퇴근해서 아이를 맞이하고 저녁시간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는 너무 피곤해서 시계를 보며 언제 자려나 기다리기도 하고 주말 아침에는 늦잠 자고 싶은 마음에 일어나서 놀아달라는 아이의 말을 못 들은 척, 자는 척하기도 해 본다. 노는 모습도 예쁘지만 자는 모습은 더 예쁘게 보이는 묘한 마음. 그렇지만 아이가 깔깔거리고 웃는 모습을 보거나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면 그 어떤 말로는 표현하기 힘든 행복감과 충만함이 내 마음에 번진다. 늘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여유로운 식사나 티타임은 그림의 떡이 되어 버린 일상이지만, 이 아이가 나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태어난 것만 같을 때도 있다.


특히 5살인 아들은 꽤나 수다스러운 편인데 때로는 엉뚱한 말로, 때로는 너무나 스윗한 말로 나에게 재미와 감동을 준다. 마음속에 저장해 두고 싶은 말들이 참 많았지만 매번 지나치고 결국 잊어버리게 된다. 다행히 놓치지 않고 기록해둔 일화들을 몇 가지 정리해본다.


2021. 9. 12

엄마의 사랑이 담긴 동화책을 읽어주는 나에게 "엄마, 잘 키워줘서 고마워요. "라고 말한 날.


2021. 9. 18

언제가 가장 행복하냐는 나의 질문에 달콤한 초콜릿이나 사탕을 먹는 일이나 재밌는 놀이를 할 때라고 답할 줄 알았던 나의 예상을 깨고 "엄마랑 살면 나는 언제나 행복해요. "라고 말한 날.


2021. 9. 25

월화수목금토일, 요일을 새로 익힌 아이에게 무슨 요일이 제일 좋으냐고 물으니 토요일이 제일 좋다고 한다. 어린이집을 가지 않고 엄마 아빠와 하루 종일 놀 수 있어서 좋다고 한다.

때로는 아이와 함께 있는 시간을 피곤하게 생각하고 주말을 버틴다고 생각했던, 월요일에 탈출하는 기분으로 출근하곤 했던 내가 부끄럽고 한없이 아이에게 미안했던 날.


2021. 11. 3

아이에게 눈싸움을 알려주고 같이 눈싸움을 해보았다. 눈을 먼저 감는 사람이 지는 거라는 룰을 알려주고 눈을 감은 아이에게 엄마가 이겼다고 얘기하자, 이건 깜박거린 거지 감은 게 아니라는 나름의 논리적인 주장을 하며 이번엔 눈을 먼저 감는 사람이 이기는 것으로 룰을 바꾸자는 제안까지 한다.

어린 시절 오빠와 보드게임이나 바둑, 장기를 하면서 지기라도 하면 분을 못 참고 씩씩대다가 이길 때까지 게임을 하자고 조르던 나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이에게 어린 나의 모습을 보았던 날.


2021. 11. 24

일주일에 하루 저녁은 취미활동으로 공방에서 재봉틀을 배우는 관계로 늘 그날은 아빠와 잠자리에 든다. 다음날 아침잠에서 깼을 때, 옆에 내가 누워있자 아이는 눈도 덜 뜬 채로 싱긋 웃으며 말한다.

"엄마 언제 온 거예요? 내가 얼마나 기다렸는데요. "

언제나 이 아이의 곁에 있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한 날.


2022. 3. 20

가끔 남편이 동생이 있으면 어떨까, 하고 묻는 질문에 질겁하며 싫다고, 동생 생기면 발로 뻥 차 버릴 거라고 발차기 시늉까지 보이는 아이. 엄마 아빠가 동생을 보살피면 자기는 누가 보살펴주냐고 절대 싫다고 한다. 남편은 일부러 아이를 놀리느라 한 번씩 묻곤 하는데 이날 역시 질겁하며 싫다고, 그럼 자신이 다 크고 95살이 되면 동생을 낳으라는 아이.

그 말에 깔깔 웃으며 "그때는 엄마, 아빠는 죽고 없겠다. "라고 했다. 그러자 왜 죽고 없냐고 묻기에 장난감 건전지도 오래 쓰다 보면 배터리가 다 닳아서 작동하지 않고 멈추지 않냐고, 사람도 나이가 들면 그렇게 늙고, 병들고, 죽게 된다고 말해주었다. 삶의 이치를 알려주는 거라 스스로 나의 설명에 감명받으며 말을 마치니, 아이의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아, 동심 파괴의 현장.

황급히 엄마는 언제나 네 곁에 있을 거라고 수습해보았지만 종일 마음이 쓰렸다. 아이에게 세상의 전부일 엄마 아빠의 부재를 웃으며 얘기하다니 아이가 느꼈을 불안과 공포감이 얼마나 컸을지, 무심한 엄마는 반성했다.

언제나 건강한 모습으로 네 곁에 있어주마, 하고 다시 한번 다짐했던 날.


물론 아이의 끝없이 반복되는 질문세례가 때로는 지겹게도 느껴지고 피로감이 몰려와 엄마 좀 고요 속에 있어보자,라고 말을 건네본다. 그럼 다시 돌아오는 질문.

- 엄마, 고요가 뭐예요?


그럼에도 나는 아이를 바라보며 세상을 순수하게 보는 법을 익히고, 사랑새긴다. 엄마는 오늘도 힘을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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