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다섯 살이 된 아들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요즘 유치원의 선정방식은 추첨이다. 원서접수 기간 동안 자녀를 보내고 싶은 유치원을 골라 3 지망까지 적어서 낼 수 있고 내가 희망한 유치원이 선발인원보다 더 많은 인원이 지원했을 경우에는 추첨을 통해 정해진다. 원서를 접수하기 전에 미리 꼽아두었던 유치원의 입학설명회에 가서 정보를 꼼꼼하게 비교해보고, 원서를 접수했다. 내가 보내고 싶은 유치원은 15명을 선발하는데 250명이 지원했다고 했다. 이런. 명문대학교를 보내는 것도 아닌데 유치원부터 이렇게 보내기가 쉽지 않다니. 사실 어느 유치원이나 크게 차이가 나지 않고 아이가 즐겁게 다닐 수 있는 곳이면 그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이왕이면 내 아이가 좀 더 나은 환경에서 놀이하고 학습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든다. 다행히 아들은 내가 1 지망에 썼던 유치원에 추첨이 되었고 입학 전 학부모 설문조사에 응하게 되었다. 건강상태나 식습관 등 참고사항들을 쓰고 난 후 마지막 설문지의 문항은 ‘자녀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나요?’였다.
많은 엄마들의 육아 멘토로 여겨지는 오은영 박사가 TV 프로그램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아이를 키우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잘 키워내서 독립시키는 것이라고. 아이가 자신의 인생에서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스스로 자신의 삶을 독립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설문지에 적었다. ‘스스로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결정하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고. 제출하고 나서 유치원 입학서류에 적을 말로는 너무 거창했나, 하며 머쓱하기도 했지만.
억지스럽지만 오은영 박사님의 이 말을 듣기 전에도 나는 늘 이 생각을 하면서 살았던 것 같다. 나는 평생 내 품에서 아이를 끼우고 키우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사회에 내보내야 하니, 그 사회 속에서 큰 문제(어떤 의미로든) 없이 잘 살아갈 수 있도록, 혹시나 문제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현명하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나의 역할이라 생각했다.
자신의 인생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려면 우선 자신에 대해 잘 알아야 한다. 자신을 들여다보고, 또 자신이 속한 집단과 사회를 둘러볼 줄 알고, 그 안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협동하고, 갈등하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며 살아야 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착한 아들, 착한 딸로 살기 위해서는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않아야 하는 일이 너무나 많다. 선택의 순간에는 내가 원하는 것보다 부모님이, 다른 어른들이 나에게 어떤 모습을 바라는 가를 우선적으로 생각해본 후 답을 결정한다.
굿 보이, 굿 걸들은 정말 자신이 바라는 것은 무엇인지 모르고 살아갈 수 있다. 나는 어렸을 때 바이올린이 배우고 싶었지만 몸이 자라면 바이올린도 큰 것으로 바꿔야 하니 좀 더 커서 배워보지 않겠냐는 엄마의 말에 알았다고 했고, 사범대를 가라는 부모님과 담임 선생님의 권유에 큰 반항 없이 사범대로 진학하였다. 고향인 부산을 떠나 타지에 발령받아 생활할 때 몸이 아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도 전화로는 괜찮다고 하며 살았다.
나의 남편도 나와 성향이 비슷하다. 한 번씩 어린이집이 코로나 상황으로 급하게 휴원하거나 아이가 아플 때 우리는 어떻게든 부모님을 호출하지 않으려 애쓴다. 조금이라도 도움을 청하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는 것을 못 익힌 모양이다. 한 번씩 본가에 갈 때 엄마가 해주는, 먹고 싶은 메뉴는 없냐고 물어보면 모르겠다, 없다고 얘기하는 남편이다. 본인 낚시 갈 때 엄마에게 김밥 도시락을 싸 달라고 요청하는 나의 오빠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식사할 때 시아버님이 김치나 다른 장류를 찾으실 때가 있다. 그럼 나의 남편은 엄마가 힘들게 식사 준비하는데 귀찮게 이것저것 달라고 한다며, 그냥 먹자고 나무란다. 남편의 입에서 듣는 엄마의 마음. 아주 사소한 상황이지만 나의 남편은 본인의 마음을 솔직하게 얘기하는 일이 잘 없다고 느낀다. 가까이서 내가 보기에, 나의 남편은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보다 엄마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시간이 더 많다. 남편에게서 보이는 나의 모습.
그렇게 30년을 살아보니 부질없게 느껴지는 날이 왔다. 힘든 것은 솔직하게 힘들다 표현하고 도움을 청하고, 필요한 것은 요청을 하면 훨씬 여유롭고 즐겁게 살 수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괜찮아요,라고 나의 진짜 마음을 들여다봐주지 않고 씩씩한 캔디처럼 사는 생활은 점점 나의 몸과 마음을 병들게 했다. 그래서 나의 아들은 나와 남편의 이런 성향은 닮지 않기를 원했다. 나는 아들에게 그래야 착한 아이지, 등의 말은 하지 않는다.
어린 나이에는 어린 나이에 맞게 철없이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기를 바랐다. 다행히 나의 간절한 바람이 하늘에 닿았는지 우리 아이는 철이 없고 살짝은 눈치도 없는 듯하다. 5살에 어울리도록 지나치게 철없고 솔직하며 자신을 위할 줄 안다. 어떤 날에는 나는 안 이랬는데 얘는 왜 이러나, 싶어 버겁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그런 모습이 사랑스럽고 안심이 된다.
아들아, 너를 가장 먼저 생각하고 너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며 살아라. 어떤 것을 좋아하고, 어떤 것은 싫어하는지, 어떤 것을 잘할 수 있고, 어떻게 사는 것이 행복한지 스스로 물음을 던지고 스스로 답을 찾으며 살아나가기를 바란다. 답을 찾아나가는 길에 필요한 것이 있다면 언제든지 엄마에게 얘기해주면 아주 기쁠 것 같다.
아차, 다른 사람은 배려하지 않고 이기적인 독불장군으로 살아란 말은 아닌데 잘못 이해하면 어쩌나. 나는 황급히 ‘예의 바르고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란다’는 문구도 설문지에 추가해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