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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cy Nov 15. 2022

적당한 거리가 필요한 모녀 사이

밥, 밥, 밥이 문제

“강 프로, 식사는 잡쉈어?”

      

 한 때 아주 이슈가 되었던 시리즈물에 자주 나오는 대사이다. 통화할 때마다, 만날 때마다 식사 여부를 묻는 인사말을 꼭 하던 주인공.

 친구나 부모님과 통화할 때면 습관적으로 날씨 얘기나 식사 여부를 묻곤 한다. 정말 밥을 먹었는지 궁금하다기보다 상대의 안위를 묻는, 한국의 정서와 문화가 담겨있는 한국식의 표현이다.

     

 얼마 전 근무 중 점심시간, 오랜만에 엄마가 생각나서 안부전화를 걸었다.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머쓱한 듯, 농담이라는 듯, 꺼내는 엄마의 진심 어린 말.

     

- 너희 부부는 선생이라 그런지 참 인정머리가 없는 것 같아. 얼마 전에 엄마가 너희 집에 갔을 때도 엄마가 종일 집에 혼자 있는데 하루 종일 밥 먹었냐는 전화 한 통 없고 말이지. 그날 엄마가 시장 갔다 와서 집에서 이것저것 하는데 이모한테 전화가 와서 밥은 먹었냐고 묻더라고. 그래서 생각해보니 너는 그런 전화도 없고.


 친정엄마가 이전 주말에 집에 와서 3일을 머무르다 가셨다. 목요일 오후쯤 오셔서 토요일에 다 같이 점심을 먹고 가셨으니 아마 혼자 있었다는 날은 금요일을 말씀하시는 듯하다. 두어 달에 한 번쯤 오시면 반찬도 해주시고 화장실이며 주방이며 여기저기 묵은 때를 벗겨내고 가시기도 한다. 엄마가 있는 덕에 아이가 잠든 후 오랜만에 남편과 단둘이 나가서 맥주나 차를 한잔 마시고 오기도 한다.      

 엄마가 꽉 채워놓은 냉장고 덕분에 며칠간은 퇴근 후 부랴부랴 주방으로 가지 않아도 되었고, 아이도 오랜만에 가지는 할머니와의 시간을 아주 즐거워했다. 나는 이렇게 좋은 기억들만 갖고 엄마에게 전화를 했던 건데, 엄마는 그렇지 않았나 보다.      


 나는 머리가 멍해졌다. 일단 선생이라는 직업과 인정머리가 없는 것과의 상관관계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게다가 휴가 중에 오셨을 때는 같이 숲에 가서 산책도 하고 엄마가 좋아하는 식당에서 외식도 했다. 떠나실 때는 감사하단 말과 함께 용돈도 챙겨드리곤 했다.     


 이번에는 학기 중이라 출근해서 일하다 보니 사실 미처 그럴 생각은 못했던 것 같다. 다만 가실 때 고맙다고 말씀드리고 용돈을 챙겨드렸다. 


내가 부족했구나.      


 멍하게 듣고 있는 내 귀 너머로 계속 엄마의 잔소리가 흘러 들어왔다.    

 

- 그래서 내가 가만히 생각해보니, 예전에 너희 신혼집 이사하는 날. 그날도 너희는 일정 있다고 서울 가서 엄마 혼자 이사해서 정리하고 있는데 엄마한테 그런 전화 한 통 안 하더라.

      

 5년 전 그날은 내가 전화를 했는지, 안 했는지, 전화를 했는데 밥 먹었냐는 인사를 안 한 건지, 기억이 전혀 나지 않았다.     

 순간 내 머릿속을 스쳐가는 생각들. 아 참, 나 결혼 준비하는 그 기간에 참 바빴지.


 혼자 시장과 상점들을 들르며 소고기, 과일, 예단 이불, 문어 한 박스 포장해서 싣고 3시간을 달려간 기억, 일요일 저녁까지 웨딩촬영 후 다음날 출근을 위해 졸음을 겨우 쫓아가며 새벽 운전을 했던 기억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때 엄마는 어린 첫째 조카를 전담해서 돌보느라 나의 결혼 준비는 신경 쓸 여력이 없으셨다. 마침 신혼집에 이사 들어가는 날이 본식 드레스 초이스와 서울에서의 셀프축가 녹음 일정이 잡혀 있어서 엄마에게 부탁드렸다. 다행히 이왕이면 좋은 날 이사 가는 게 좋다며 그대로 이사를 진행하라고 도와주셨던 기억이 난다.

   

- 엄마. 내가 그때는 워낙 바빴잖아. 사실 자세한 건 잘 기억도 안나.     


 멈추지 않고 폭포처럼 쏟아지는 엄마의 원망과 서운함 가득 담은 잔소리.      

 머리가 어지러웠다.

     

- 사실 김서방도 평소에 전화 한 통이나 하나 어디?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정이 없는지. 너한테는 잘하는지 걱정이다.     


 엄마에게 칭찬받을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누가 있을까.     


 아이가 아주 어릴 때 내가 감기가 너무 심해 엄마에게 좀 와줄 수 있냐고 물었을 때, 엄마는 첫째 조카의 어린이집 학예회가 있다며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임신 중에도 혹시 먹고 싶은 것 없냐며 택배로 보내주겠다는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엄마의 잔소리를 들으며 치졸하게 나 역시 엄마에게 서운한 것 없는 줄 아냐며 마음속에서 소리치고 있었다.

 내가 엄마한테 어떻게 했는데 엄마는 나에게 이러는지, 엄마는 그렇게 인정이 넘치기만 했냐며 목구멍까지 소리가 차올랐다. 그러나 내 입에서는 다른 말이 나왔다.     

- 내가 잘못했네, 미처 생각 못했네. 미안.     


 그러자 전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엄마의 환한 목소리. 깔깔 웃으시며 그래, 네가 잘못했지, 하시며 덧붙이신다.

- 이런 건 말해줘야 안다고 하더라고. 

 아마 그 말을 한 건 이모 일거라고 짐작했다. 엄마는 이모 가게에서 함께 일하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나누신다. 친구나 지인과의 모임은 거의 없다.  

  

 어릴 때(아마 8-9살이었던 것 같다.) 아주 독한 감기에 걸려서 며칠을 열이 펄펄 끓어 누워 지낸 적이 있다. 그때 티비에서 나오던 바비인형 인어공주 시리즈가 얼마나 예뻐 보이던지. 엄마에게 엄마, 저거 사줘.라고 어린 나는 말했고, 엄마는 수건으로 내 이마를 닦으시며 그래그래, 나으면 다 사줄게.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 인형을 받지 못했다.

 몇 년이 지나 가족 식사 자리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고 얘기했더니 갑자기 엄마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시며 "엄마가 너한테 약속을 안 지키긴 뭘 안 지켜? 내가 너한테 어떻게 했는데 그렇게 말해? "

라고 화를 내셨다.


 그리고는 며칠 간 나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도 섞지 않으셨다.


 그 뒤로 나는 엄마에게 서운한 걸 말한 적이 없다.


 엄마는 나에게 늘 작은 것에도 고마워할 줄 안다며, 이러니 더 해주고 싶다며 칭찬하곤 하셨다.   


  이런 건 말해줘야 안다고? 그래 그럼 나도 말해보자, 하며 그동안의 서운한 감정들이 차올랐지만 며칠간이나 침묵으로 어린 나를 대했던 엄마의 눈빛이 생각났다. 나의 감정들은 다시 마음속에 묻어놓았다.

     

- 그래 미안하네 엄마. 나는 엄마 얘기 무슨 말인지 알겠고 더 잘할 수 있는데 김서방한테는 기대하지 마. 김서방도 나한테 시부모님께 전화드리라던지 어떻게 하라던지, 부탁이든, 강요든, 그런 건 안 하거든. 그리고 나도 시댁에 전화 잘 안 드려. 나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도 안 하시고.      

미안함과 동시에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전했다.  

   

 그 후로 크게 의미 없는 말 몇 마디가 오갔지만 나도 업무 시간이다 보니 길게 이어나가지 못하고 전화를 끊었다.     


 속상한 마음에 몇몇의 지인들에게 얘기를 했다. 좀 더 나의 속상한 마음을 이해해주고 위로해주는 친구도 있었고, 어머님이 나이 드셔서 사소한 것도 서운하실 수 있다고 잘 챙겨드리라고 엄마의 입장을 잘 풀어서 말해주는 언니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위로와 조언을 듣다 보니 여전히 그럴 수도 있겠다는 마음 반, 억울한 마음 반이었지만 내 서운한 마음들을 지르지 않은 것은 잘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언니들의 조언대로 엄마에게 미안함과 고마운 마음을 가득 담은 문자메시지를 전송했고, 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저녁, 넌지시 남편에게 엄마가 나에게 서운하다고 털어놓은 얘기들을 들려주었다.(사위에게도 서운하다는 얘기를 한 건 말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편은      

- 내가 전화를 한 통 할 걸 그랬네, 생각해보니 너무 편하게만 생각한 것 같다. 어머님 오시고 마음도 편하고 몸도 편하고 우리는 너무 좋았는데 어머님은 서운했을 수도 있겠다. 다음에 오시면 내가 전화 한 통 할게.     

 남편은 꼭 누가 미리 귀띔이라도 한 듯이 모범정답을 줄줄 읊었다.     


 가족이란 건 정말 이상한 집단이다.   

   

 내가 했던 생각처럼 우리가 어떻게 했는데 장모님은 그러시냐, 또는 이럴 거면 차라리 안 오시는 게 낫겠다 등등의 원망 섞인 마음들을 쏟아내었다면 나와 같은 생각이더라도 남편에게 서운해하며 엄마 편을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남편의 말을 듣고는 그날 저녁 왜 그렇게 하염없이 울었는지 알 수 없다.

     

 이제 나는 엄마가 우리 집에 오겠다고 전화를 한다면 뭐라고 답해야 할지 자신이 없다. 


 가족 간에도 적당한 거리가 나에게 안정감을 주고, 조금 가까워질 만하면 부대끼는 일이 생기는 걸 보면 엄마 말대로 나는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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